충청북도 진천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 사는 김판욱씨(33)의 조립식 주택에는 모두 세 식구가 함께 산다. 동갑내기 부인 강오영화씨와 세살배기 아들 해인이. 그러나 이들 세 식구는 단순히 한집에 함께 살고 있을 뿐 주민등록상 주소는 제각각이다.
남편 김씨의 주소는 지금 살고 있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부인 강씨의 주소는 결혼 전 주소인 강동구 천호동. 아들 해인이도 엄마 주소를 따라간 덕분에 주민등록상 주소는 서울. 당연히 주민등록등본을 떼려면 남편과 부인이 각기 다른 곳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아들 해인이의 호주(戶主) 문제로 들어가면 사정이 좀더 복잡해진다. 해인이의 세대주는 어머니 강씨이지만 호주는 아버지 김씨의 부친, 그러니까 해인이의 할아버지가 된다.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없는 호적법상의 조항 때문이다. 주민등록상 해인이의 이름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모두 딴 ‘김강해인’이다.
달랑 세 식구뿐인 한가족에게서 이런 복잡한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동거부부’다. 97년 결혼한 이들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부인 강씨가 결혼 후 현행 호주제도에 반대하면서 혼인신고를 거부했기 때문. 결혼과 동시에 여자의 호적을 ‘파내서’ 남편 집안으로 옮기는 현행 호주제를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것이 강씨의 주장이다.
남편 김씨도 흔쾌히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묵시적으로 이를 용인하고 있는 상태다. 김씨는 “혼인신고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면서도 이런 일로 언론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눈치가 역력했다. 김씨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부인 도장을 몰래 파서라도 혼인 신고를 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번거로움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런 길을 선택한 부인 강오영화씨에게 결혼생활의 의미는 이렇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습니다. 공동체적 삶을 만들어 가는 데, 그 대상이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면 되지요.”
‘동거부부’.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세태에서 결혼보다 동거를 선택하는 사례가 강씨의 경우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율의 급속한 증가와 결혼관의 변화로 인해 법적-사회적 구속이 따르는 결혼 대신 차라리 동거를 선택하는 커플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동거의 의미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전통적 가족의식에 따르자면 동거는 ‘불순한’ 동시에 ‘문란한’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동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후미진 자취방과 때묻은 이불, 국물이 말라붙어 있는 라면 냄비 몇 개 따위의 것들이었다.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독립을 이뤄낼 수 없는 미성년들이 남의 눈을 피해 함께 사는 것이 동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껏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았자 결혼 전 예행연습으로서의 동거 정도가 고작이었다. ‘눈이 맞았으니 우선 같이 살고 보자’는 수준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최근 들어 젊은층에 불고 있는 동거 바람은 결혼으로 가는 ‘임시 정거장’으로서의 동거가 아니다. 아예 결혼을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차원에서 ‘적극적 동거’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런 동거에 결혼 이상의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징을 보인다.
지난 4월 PC통신 하이텔에서는 혼전동거에 관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 토론방에서는 의외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혼전동거에 찬성하는 글을 올려 변화된 실상을 보여주었다. 당시 토론방에 올랐던 글 중에는 ‘결혼은 모험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평생을 약속하는 건 어리석다. 데이트의 마지막 단계로서 혼전동거를 해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도 있었다.
몇 년 후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할 계획이라는 고려대생 정혜선씨(22)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이중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결혼과 달리 동거 이후에도 자아 실현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 동거 생활의 가장 큰 이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동거’하면 무조건 성적인 파트너를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다는 한양대생 박은희씨(가명·22)도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돌아오는 것은 쓸데없는 가부장적 책임뿐이다. 동거로도 기성세대들이 결혼을 통해 누리는 모든 혜택을 얻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동거에 대한 주변의 비난이나 손가락질에서도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는 경향도 나타난다. 정신과 전문의 전지홍씨는 “동거로 인한 상담건수가 최근 크게 늘어났을 뿐더러 상담을 원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혀 거리낌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동거 상황을 진술하는 바람에 오히려 의사가 당황할 정도”라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이후 서울 소재 대학교들의 지방 분교와 새로운 지방 대학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에 일부 지방 대학가를 중심으로 외지에서 몰려든 대학생들 사이에 동거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시절의 ‘반짝 동거’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상명대와 호서대, 천안대, 천안 외국어전문대 등 4개 대학이 밀집해 있는 천안시 안서동 일대. 경부고속도로변에 위치한 이 지역은 어림잡아 2만∼3만명의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최근에는 임시 동거 커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안서동에서 만난 한 부동산 업자는 “지방대생들의 동거가 확산되면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학부모들이 신학기가 되면 직접 집을 보러 다니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서동 일대에서 만난 하숙집 주인들도 한결같이 “요즘은 지방생활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로 인해 ‘철부지 동거’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적극적인 ‘집안의 단속’으로 동거가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경제적 이유나 한때의 충동으로 인해 선택하는 ‘반짝 동거’보다 아예 결혼의 대안으로 동거를 선호하는 ‘본격 동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덕성여대 박민자교수(사회학)는 이러한 동거혼(同居婚)을 서구 사회에 만연한 동거 문화와 비교해 해석하기도 했다.
“최근의 동거 형태는 본인들이 합의한 것은 물론 양쪽 부모의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구 사회에서 선호되고 있는 결혼 전단계로서의 동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완전히 성숙한 상태에서 서로를 시험해보기 위한 동거라야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사회학자인 박교수도 최근의 동거문화 현상에 대해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 주변에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동거 커플이 얼마나 되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최근의 세태를 귀동냥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게다가 결혼을 거부하고 동거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에 따르는 사회적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 중의 하나이다. 7년 연애 끝에 97년 결혼에 성공한 신상호씨(32)와 이윤상씨(31). 이들이 3년 동안 결혼 상태가 아닌 동거 상태를 유지하다가 최근 ‘법적’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출산에 대비해서였다. 남들과 똑같이 살면서도 법적으로 미혼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남편 신씨가 가족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연말정산시 배우자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쯤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자 문제가 달라졌다. 부인 이씨는 “지금 상태에서 아이를 호적에 올리려면 미혼모나 편부 슬하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 출산 전에는 기존 제도에 편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동거의 대상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전북 전주에 사는 30대 후반의 한도환씨는 현재 한집에 살고 있는 자신의 부인을 ‘파트너‘라고 부른다. ‘파트너’라는 의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말이다. 한씨 자신도 “나는 아직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동거생활 2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한씨는 “동거 형태에서는 언제든지 원한다면 다른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혼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앞으로 얼마든지 없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씨는 “다른 ‘파트너’가 생기면 언제든지 그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데에 현재의 ‘파트너’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씨처럼 아예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일반적’ 동거 커플들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여전하다.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마쳐도 이혼율이 급증하는 터에 동거는 더욱 위험한 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거야말로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가족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거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법적으로 두 사람을 꽁꽁 묶어 놓아도 이혼율이 급증하는 마당에 결혼 신고 자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동거가 위험성을 줄이는 또다른 대안일지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최대의 걸림돌은 역시 아이 문제.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상담소 안혜성 사무국장은 “일단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이를 낳게 되면 동거를 시작할 당시에 설정했던 관계가 망가지게 마련이다. 동거를 시작하려면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동거는 이제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함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어 가는 만큼, 동거도 다양한 선택 사항 중의 하나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남편 김씨의 주소는 지금 살고 있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부인 강씨의 주소는 결혼 전 주소인 강동구 천호동. 아들 해인이도 엄마 주소를 따라간 덕분에 주민등록상 주소는 서울. 당연히 주민등록등본을 떼려면 남편과 부인이 각기 다른 곳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아들 해인이의 호주(戶主) 문제로 들어가면 사정이 좀더 복잡해진다. 해인이의 세대주는 어머니 강씨이지만 호주는 아버지 김씨의 부친, 그러니까 해인이의 할아버지가 된다.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없는 호적법상의 조항 때문이다. 주민등록상 해인이의 이름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모두 딴 ‘김강해인’이다.
달랑 세 식구뿐인 한가족에게서 이런 복잡한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동거부부’다. 97년 결혼한 이들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부인 강씨가 결혼 후 현행 호주제도에 반대하면서 혼인신고를 거부했기 때문. 결혼과 동시에 여자의 호적을 ‘파내서’ 남편 집안으로 옮기는 현행 호주제를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것이 강씨의 주장이다.
남편 김씨도 흔쾌히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묵시적으로 이를 용인하고 있는 상태다. 김씨는 “혼인신고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면서도 이런 일로 언론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눈치가 역력했다. 김씨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부인 도장을 몰래 파서라도 혼인 신고를 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번거로움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런 길을 선택한 부인 강오영화씨에게 결혼생활의 의미는 이렇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습니다. 공동체적 삶을 만들어 가는 데, 그 대상이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면 되지요.”
‘동거부부’.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세태에서 결혼보다 동거를 선택하는 사례가 강씨의 경우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율의 급속한 증가와 결혼관의 변화로 인해 법적-사회적 구속이 따르는 결혼 대신 차라리 동거를 선택하는 커플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동거의 의미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전통적 가족의식에 따르자면 동거는 ‘불순한’ 동시에 ‘문란한’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동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후미진 자취방과 때묻은 이불, 국물이 말라붙어 있는 라면 냄비 몇 개 따위의 것들이었다.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독립을 이뤄낼 수 없는 미성년들이 남의 눈을 피해 함께 사는 것이 동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껏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았자 결혼 전 예행연습으로서의 동거 정도가 고작이었다. ‘눈이 맞았으니 우선 같이 살고 보자’는 수준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최근 들어 젊은층에 불고 있는 동거 바람은 결혼으로 가는 ‘임시 정거장’으로서의 동거가 아니다. 아예 결혼을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차원에서 ‘적극적 동거’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런 동거에 결혼 이상의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징을 보인다.
지난 4월 PC통신 하이텔에서는 혼전동거에 관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 토론방에서는 의외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혼전동거에 찬성하는 글을 올려 변화된 실상을 보여주었다. 당시 토론방에 올랐던 글 중에는 ‘결혼은 모험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평생을 약속하는 건 어리석다. 데이트의 마지막 단계로서 혼전동거를 해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도 있었다.
몇 년 후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할 계획이라는 고려대생 정혜선씨(22)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이중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결혼과 달리 동거 이후에도 자아 실현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 동거 생활의 가장 큰 이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동거’하면 무조건 성적인 파트너를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다는 한양대생 박은희씨(가명·22)도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돌아오는 것은 쓸데없는 가부장적 책임뿐이다. 동거로도 기성세대들이 결혼을 통해 누리는 모든 혜택을 얻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동거에 대한 주변의 비난이나 손가락질에서도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는 경향도 나타난다. 정신과 전문의 전지홍씨는 “동거로 인한 상담건수가 최근 크게 늘어났을 뿐더러 상담을 원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혀 거리낌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동거 상황을 진술하는 바람에 오히려 의사가 당황할 정도”라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이후 서울 소재 대학교들의 지방 분교와 새로운 지방 대학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에 일부 지방 대학가를 중심으로 외지에서 몰려든 대학생들 사이에 동거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시절의 ‘반짝 동거’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상명대와 호서대, 천안대, 천안 외국어전문대 등 4개 대학이 밀집해 있는 천안시 안서동 일대. 경부고속도로변에 위치한 이 지역은 어림잡아 2만∼3만명의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최근에는 임시 동거 커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안서동에서 만난 한 부동산 업자는 “지방대생들의 동거가 확산되면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학부모들이 신학기가 되면 직접 집을 보러 다니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서동 일대에서 만난 하숙집 주인들도 한결같이 “요즘은 지방생활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로 인해 ‘철부지 동거’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적극적인 ‘집안의 단속’으로 동거가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경제적 이유나 한때의 충동으로 인해 선택하는 ‘반짝 동거’보다 아예 결혼의 대안으로 동거를 선호하는 ‘본격 동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덕성여대 박민자교수(사회학)는 이러한 동거혼(同居婚)을 서구 사회에 만연한 동거 문화와 비교해 해석하기도 했다.
“최근의 동거 형태는 본인들이 합의한 것은 물론 양쪽 부모의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구 사회에서 선호되고 있는 결혼 전단계로서의 동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완전히 성숙한 상태에서 서로를 시험해보기 위한 동거라야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사회학자인 박교수도 최근의 동거문화 현상에 대해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 주변에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동거 커플이 얼마나 되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최근의 세태를 귀동냥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게다가 결혼을 거부하고 동거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에 따르는 사회적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 중의 하나이다. 7년 연애 끝에 97년 결혼에 성공한 신상호씨(32)와 이윤상씨(31). 이들이 3년 동안 결혼 상태가 아닌 동거 상태를 유지하다가 최근 ‘법적’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출산에 대비해서였다. 남들과 똑같이 살면서도 법적으로 미혼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남편 신씨가 가족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연말정산시 배우자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쯤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자 문제가 달라졌다. 부인 이씨는 “지금 상태에서 아이를 호적에 올리려면 미혼모나 편부 슬하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 출산 전에는 기존 제도에 편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동거의 대상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전북 전주에 사는 30대 후반의 한도환씨는 현재 한집에 살고 있는 자신의 부인을 ‘파트너‘라고 부른다. ‘파트너’라는 의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말이다. 한씨 자신도 “나는 아직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동거생활 2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한씨는 “동거 형태에서는 언제든지 원한다면 다른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혼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앞으로 얼마든지 없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씨는 “다른 ‘파트너’가 생기면 언제든지 그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데에 현재의 ‘파트너’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씨처럼 아예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일반적’ 동거 커플들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여전하다.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마쳐도 이혼율이 급증하는 터에 동거는 더욱 위험한 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거야말로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가족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거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법적으로 두 사람을 꽁꽁 묶어 놓아도 이혼율이 급증하는 마당에 결혼 신고 자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동거가 위험성을 줄이는 또다른 대안일지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최대의 걸림돌은 역시 아이 문제.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상담소 안혜성 사무국장은 “일단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이를 낳게 되면 동거를 시작할 당시에 설정했던 관계가 망가지게 마련이다. 동거를 시작하려면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동거는 이제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함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어 가는 만큼, 동거도 다양한 선택 사항 중의 하나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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