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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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잃은 부처님 “복장 터져”

절도 매매 잇따라… 문화재적 가치 높아 도굴범들 집중 표적

  • 입력2006-05-19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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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 잃은 부처님 “복장 터져”
    지난 1월 중순 밤 8시경 경북 영주시 영주서부초등학교 앞. 주차해 있는 전상호씨(가명·58·상업)의 승용차로 문화재매매업을 하는 이명남씨(가명·53)와 정기준씨(가명·60)가 다가왔다. 이씨는 정씨에게 전씨가 갖고 있는 ‘감지은니묘법연화경(감색종이에 은글씨로 쓴 묘법연화경) 제4권’을 보여주며 8000만원에 살 것을 권유했다. 이미 이씨로부터 복사본을 받아 봤던 정씨는 그 자리에서 전씨에게 8000만원을 지불했고, 이씨에게도 소개비조로 3000만원을 줬다. 국보급 복장유물(불상을 만들면서 불상 안에 넣는 사리 등의 유물·상자기사 참조)이 밀매되는 순간이었다.

    정씨는 매입 가격의 10배가 넘는 10억원에 이 문화재를 팔아넘기려 했다. 첩보를 입수하고 은밀히 추적작업을 벌인 전주지검 수사팀(주임검사 최순용)이 아니었으면 그의 시도는 성공했을 것이다. 정씨 등 세 명은 지난 3월28일 전주지검에 구속됐다.

    전씨는 어떻게 국보급 복장유물을 갖고 있었을까.

    지난 83년부터 경북 영주 흑석사 신도회장을 지낸 전씨는 87년 10월21일부터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4권(가로 12.2cm, 세로 36.7cm, 두께 3.2cm)을 보관해 왔다. 사찰측에서 “어제 도난당한 부처님 복장을 채워 넣으려고 하다가 머리 부분에서 새로 발견한 것이니 신도회장님이 잘 보관하고 있으라”며 백지금니변상도(가로 약 44.2cm, 세로 약 30.7cm)와 함께 전씨에게 건네주었던 것. 전씨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10년 이상 보관해온 이들 문화재를 팔아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복장유물이 수난을 당한 또 한 가지 사례가 있다. 전주지검은 같은 날 문화재관리법 위반혐의로 경북 모대학 남모 교수(44)를 불구속했다. 남교수는 일본에서 한국문화재를 전시한다는 명목으로 경남 하동 쌍계사 사천왕상에서 도난된 복장문화재 등을 일본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됐다.



    검찰이 전씨와 남교수로부터 압수한 문화재는 사천왕상복장 발원문 28점과 출처가 명확치 않은 대혜보각 선사서, 통도사 사적약록 등 복장유물 70여점 등 100여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출처가 확인된 것은 30여점. 나머지 70여점은 언제 어디서 도난당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쌍계사의 경우 사천왕상 한 분의 높이가 4m에 이르고 복장유물 분량이 트럭 여러 대에 실을 정도로 많은데도 네 분의 사천왕상이 모두 도굴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전씨와 남교수 등이 빼돌리려고 한 문화재에는 11세기말 고려시대 작품인 초조대장경 1점과 비단 만다라 1점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도 많이 포함돼 있다. 수사 관계자는 “시가로 치면 3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조계종 문화부 이상규과장은 “99년부터 복장유물 도난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조계종 자체 조사에 따르면 복장유물 도난사건은 △96년 1건(서울 개운사) △97년 3건(경북 기림사, 전북 실상사`-`백장암, 전북 심곡사) △99년 6건(경북 광흥사-두 차례, 전북 개암사, 경북 환성사, 경북 직지사, 경기 보광사) 등으로 증가해왔다. 조계종은 복장유물 도난사건이 잇따르자 작년부터 올해까지 14개 사찰을 대상으로 조사작업을 벌였다. 이 가운데 복장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불과 3개 사찰밖에 안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완전히 도난당한 곳은 4개 사찰, 일부가 도난당한 곳이 7개 사찰이었다(도표 참조).

    그렇다면 왜 복장유물이 도난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복장유물의 수난은 돈 되는 것을 찾아 헤매는 문화재 도난-도굴의 변천사와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조선왕조 말기에 고려시대 왕릉을 대상으로 시작된 문화재 도난-도굴은 무덤 석탑 탱화 등을 거쳐 최근에는 무인석과 문인석 등 석조물과 복장유물로 이어지고 있다. 어지간히 돈 되는 것은 다 털어가 이제 부처님 복장까지 뒤지는 상황”이라는 것.

    복장유물을 털어가는 형태도 여러 가지다. 피해를 당한 쌍계사 사천왕상의 경우 공구를 사용해 사천왕상 뒷부분에 있는 나무뚜껑(가로 25cm, 세로 30cm)을 뜯어내고 훔쳐갔다. 불상의 경우 개금불사(불상에 금색을 새로 입히는 것) 과정이나 내부자와의 결탁에 의해 복장유물이 도난당하기도 한다. 사찰측은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문책받을 것이 두려워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복장유물의 도난에는 일부 승려와의 결탁의혹도 제기된다. 전주지검 최순용검사는 “도굴범들은 어느 사찰 불상이 얼마나 오래됐고 만들어진 경위는 어떻다는 것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계와 문화재청은 문화재 도난을 막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조계종 문화부 이상규과장은 “복장유물 조사 필요성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신앙적인 문제 등이 있어 여러가지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해 어떤 식으로든 대처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불교계는 4월 초 문화관광부 등에 “(복장유물 등) 비지정문화재 도난범에 대해서도 지정문화재 도난범과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 또 도난을 사유로 문화재 지정을 해제해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강신태씨는 “종단 차원에서 조치가 있으면 몰라도 부처님 복장이어서 문화재청으로서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처님 복장을 뒤지는 사람들의 ‘검은 손’을 막아낼 묘안은 과연 무엇일까.

    불상에 넣는 사리·불경 등 유물

    1200년경 개운사 대웅전 부처님 最古


    복장유물은 사리신앙의 한 형태다. 탑 안에 사리를 넣던 것이 불상 안에 넣는 형태로 발전한 것. 복장유물 연구가인 동국대 문명대교수는 “중국에서는 사람의 내장 모형을 만들어 불상 복장에 넣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하나의 생명체이자 신성성이 있는 신앙의 대상으로 불상을 바라봤던 것.

    복장유물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형태가 다양해졌다. 사리뿐 아니라 오색실, 불경과 의복, 만다라, 불상 조성기 등을 함께 넣었던 것. 때문에 복장유물은 불상 조성시대와 당시의 사회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언제부터 불상에 복장유물을 넣기 시작했는지는 정확치 않다. 그러나 중국 당나라 때 불상에서도 복장유물이 발견되고 있어 역사가 오래됐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복장유물이 발견된 불상은 1200년경 만들어진 서울 개운사 대웅전 부처님이다. 경기 남양주에 있는 용주사의 한 말사 불상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복장유물이 발견됐다. 신라시대 불상 중 복장유물이 발견된 것은 없다.

    복장유물을 불상에 봉안할 때는 ‘조성경’이라는 불경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 봉안한다. 복장유물을 꺼낼 때도 이 경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식을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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