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경제 기사’가 하나 있다. 바로 물가 기사다. 총선 때 돈이 너무 많이 풀려 물가인상 요인이 되고, 총선이 끝나면 물가가 오를까 걱정된다는 관계자들의 코멘트가 꼭 곁들여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1월25일 김대중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도 물가관리 대책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이번 총선 역시 ‘돈선거’로 치러지면 자칫 회복세에 접어든 국내 경제에 커다란 주름살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총선 후의 경제가 어떻게 되든 말든 우선은 많은 사람을 당선시켜 놓고 보는 것이 ‘장땡’이다. ‘돈 놓고 표 먹기’의 사생결단은 이번 총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총선을 3개월 앞둔 지난해 12월말까지 중앙선관위가 적발한 사전선거운동 사례만 634건. 대부분이 돈과 연관된 것들이다. 이는 15대 총선 당시 같은 기간의 63건에 비해 10배가 넘고, 15대 총선 기간을 통틀어 적발된 100건을 이미 넘어섰다. 이 때문에 중앙선관위는 이번 총선의 불법 혼탁 과열 양상이 사상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에서 시민단체의 선거혁명이 진행되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16대 대통령선거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총선 비용으로 얼마나 풀릴까
이번 선거가 사상 최대의 금권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는 중앙선관위의 대략적 예상치는 ‘1조원 이상’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경합지역 후보자는 최소 10억원, 일반적인 경우는 5억원 이상을 기본적인 선거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 따라서 후보자 1인당 평균 예상액을 6억원으로 잡을 때, 1500여명이 출마할 것으로 가정하면 9000억원이 간단하게 나온다. 여기에 중앙당의 선거지원비를 합하면 1조원이 훌쩍 넘어서는 것.
그러나 여기에는 또 선거보조금이 가산되어야 한다. 선거공영제의 취지에 따라 실시되고 있는 선거보조금 지원은 만성적인 정치부패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선거 관련 비용을 일정 부분 국가와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거 벽보 및 공보 제작비’ ‘소형 인쇄물 제작비’ 등을 국고로 보전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합의한 선거보조금 50% 인상안의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 명세에는 △선거사무소 등의 임차료 △전화 설치비 및 통화료 △방송연설 비용 △거리유세 비용 △후보 한 사람당 매일 45명 선거 사무원의 수당과 식비, 교통비 등의 지원이 포함돼 있다. 선거사무소를 얻는 비용은 물론 선거운동원 밥값과 용돈까지 국민의 세금에서 내놓으라는 소리다.
중앙선관위는 이에 대해 “개인 선거비용을 지나치게 국가에 전가하는 처사”라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국가 부담만 늘린다고 깨끗한 선거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얘기다. 현재 분위기로 이 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 그러나 만약 이 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입법화한다면, 4월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일정 비율 이상 득표할 경우에 1인당 평균 1억원 가까운 현금 보상을 받게 돼 모두 700억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국민 혈세에서 빠져나가게 된다(253개 선거구당 평균 3명의 선거비용 보전 대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이번 총선에서 선거공영제를 위해 정부가 국고에서 부담하는 선거비용 보전액은 약 636억127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만해도 15대 총선 때 84억5636만원(1인당 2085만원)의 7.5배에 달하는 규모. 그런데 여기에 700억원이 추가로 부담된다면 15대보다 무려 15.8배나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 외에 비례대표 공천헌금(상자기사 참조)이나 음성적 정치자금까지 합하면 이번 총선에서는 적게 잡아도 1조3000억원 정도의 돈이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쉽게 나온다.
“지난 15대 총선 때도 도시 지역에서는 ‘20당 10락’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번에는 인구수 상-하한선마저 상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까지 감안하면 ‘30당 20락’은 족히 될 조짐이다.”(민주당 정세분석위의 한 관계자) “야당이 아무리 바람으로 선거를 치른다 해도 한 장(10억원) 이하로는 어림도 없다. 중앙당에서도 꼭 이겨야 하는 전략 지역구에는 최소 10억원 이상의 실탄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서울의 한 의원)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 10억원, 무소속으로 나가려면 15억~20억원이 필요할 것.”(TK지역 출마를 노리는 한 후보자의 측근)
그러나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접전 지역에서는 ‘50당 30락’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5대 때도 당시 신한국당 수도권의 모 의원은 선거 전에 50억원을 마련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후보자들은 왜 그토록 많은 돈을 써야만 할까.
△시작부터 돈이다:수도권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는 전문직 출신 후보 L씨는 공천을 보다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 민주당 실세와 가깝다고 하는 모 정치 컨설턴트와 접촉했다. 그 대가로 그 컨설턴트가 요구한 돈은 2억원. 지역여론 조성비까지 포함된 액수였다. 그 액수에 놀란 L씨는 결국 그 방법을 포기하고, ‘연줄’을 찾아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기로 했다. 그렇지만 ‘연줄’을 찾아 부탁할 때마다 그 돈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L씨의 설명. 일주일에 1000만원 정도가 훌쩍 나가더란 얘기다.
△홍보비 1억원은 기본:이번 선거 최대의 특징인 ‘사이버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선거비용은 오히려 늘어났다. 다시 말해 조직 동원 등 기존의 선거 양태가 사이버 공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돈 잡아먹는 품목 하나가 늘어난 것. 현역 의원들은 현재 경쟁적으로 홈페이지를 치장하고 있는데 평균 10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홈페이지를 관리할 전담 인력까지 둔다면 관리비로만 매달 200만~300만원이 들어간다. 후보자의 각종 홍보자료가 담긴 CD롬을 이용한 ‘사이버 명함’은 5만장을 찍는데 6000여만원 정도가 들지만 벌써 현역 의원 20여명이 이 방법을 쓰고 있다.
홍보비에는 이것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ARS(전화자동응답) 여론조사 한번 하는데 보통 1500만원이 깨진다. 내 인지도도 올리고 공천 경합자 경쟁력까지 알아보려면 이것처럼 좋은 방법도 없다. 그렇다 보니 벌써 세 차례나 실시해 5000여만원이 들어갔다.”(수도권의 한 신진인사) 물론 공천 확정 뒤에도 여론조사는 필요하지만 경쟁력이 있는 인사라면 그 때부터는 중앙당의 몫이다.
현역 의원이라면 여기에 의정보고회 비용이 더 추가된다. 현역 의원들은 선거운동 개시일 전까지 의정보고회를 무제한 열 수 있고, 1인당 최고 3000원까지의 다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진 출마자를 따돌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 “의정보고회 500회를 목표로 삼고 실행하는 중이다. 한번에 50명만 잡아도 다과비로 15만원, 500회면 7500만원이다. 정말 죽을 지경이다.” (수도권 민주당 K의원)
△돈 먹는 하마, 조직 관리: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직 시작도 안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것은 이 다음부터. 그야말로 ‘자금의 블랙홀’ 선거조직이 기다리고 있다. 선거 비용의 절반 이상이 조직 가동비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조직은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공중전화와 같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2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역정서 덕택에 조직 가동비도 훨씬 줄어 10억원이면 될 듯하다.”(한나라당 경북 지역의 한 의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시의원이나 구의원들이 많이 찾아왔다. 무슨무슨 단체의 장이라는 사람도 꽤 많았다. 한결같이 자기가 가진 표가 얼마 된다고 얘기하면서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지갑을 열지 않은 탓인지 보름 정도 지나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지지도 조사를 해보니까 특히 여성 지지도가 10%나 떨어져 나갔다. 여성 표는 운동한 만큼, 돈들인 만큼 돌아온다는 공식이 맞다. 결국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민주당 서울의 한 신진인사)
선거조직은 협의회장(동책), 관리장(통책), 지역장(반책)으로 구성된다.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2000여명으로 구성되는 피라미드형 조직이다. 부산지역 한 중진의원의 보좌관은 지구당 핵심 당직자들에게 설날 선물비로 대략 4000만원 정도가 들어갈 것 같다고 말한다. 일인당 1만원짜리 선물이면 당직자가 4000명, 2만원이면 2000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최말단인 지역장이 하루에 쥐는 돈만 100만원 이상이 된다. 공식 선거기간 16일만 뛴다고 해도 지역장 한 사람당 1600만원, 지역장이 30명이면 5억여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당원에게 들어가는 돈은 보통 ‘당원수×10만원×2’로 계산하는 것이 정치권의 상식이다. 마지막에 2를 곱하는 이유는 선거 막판에 한번 더 주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 이렇게 따질 때 당원이 5000명이라고만 쳐도 10억원이다.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와 박빙의 살얼음을 걸을 때는 ‘마지막 배팅’이 또 기다리고 있다. 이때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이 되기 때문에 최소 십억원대 단위의 돈을 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기타 비용도 만만치 않다:조직가동비에 비하면 ‘껌값’이지만, 선거 사무실-연락소 임차비, 전화 설치비-통화료, 방송연설비용, 거리유세 비용(차량-확성기 임차료와 기름값 등),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 청중동원비 등등 끝이 없다. 입만 열어도 돈,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돈이다.
사조직 가동비는 치지 않아도 이 정도니 사조직까지 몇 개 가동하면 그 비용이 얼마인지 유추도 되지 않을 정도다. 부산선관위의 집계로는 부산-울산-경남지역 선거관련 사조직만 이미 300개를 넘어섰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무소속 출마자가 많은 영남권에 브로커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정치 브로커들이 출마예정자, 특히 정치 신인들에게 접근해 ‘쭛쭛선거 컨설팅 대표’ ‘△△산악회장’ ‘××친목회장’ 등의 명함을 주면서 거액을 요구하는 사례는 매우 흔한 일이다. 일부 후보자는 베테랑급 브로커를 수천만원의 선수금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일까지 있다. 지구당의 고참 사무장이나 보좌관 몸값이 치솟는 것도 바로 선거철이다.
민주당은 1월27일 중앙당후원회를 열어 본격적인 실탄 확보에 나섰다. 이날 걷힌 후원금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김봉호후원회장은 서영훈대표에게 50억원의 약정금을 전달했다. 최소 100억원 이상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전신인 국민회의는 98년 두 차례의 후원회에서 294억원을 모금했고, 지난해에도 한 차례의 후원회와 기부금 등을 통해 100억원 정도를 모금했다. 또한 지난해 국민회의가 30대 그룹에서 받은 법인 후원금은 200억원대.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라 법인의 연간 후원금 한도액이 5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따라서 올해는 법인 후원금만 5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선관위로부터 받는 1·4분기 정당보조금과 선거보조금도 100억원 가량이 된다. 이를 다 합치면 1000억원 정도의 선거자금은 확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총선을 치르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솔직한 토로다. 이 때문인지 증권가에서는 ‘민주당이 증시를 통해 이미 선거자금을 마련해 놓았다더라’ 하는 루머가 많이 퍼져 있는 상태. 민주당 내에서는 김영삼전대통령과 현철씨가 지난 15대 총선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벤치마킹해 수도권 경합지역에서는 아낌없는 실탄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한나라당은 우선 1·4분기 국고보조금 25억8900만원과 선거가 있는 해에 지급되는 선거보조금 103억5600만원을 3월 중에 받는다. 사무처 관계자는 “현재로선 이 보조금으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은 1월10일 마감한 공천접수 때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일년치 당비 120만원과 심사료 30만원을 받을 정도로 재정상태가 악화돼 있다. 그나마 심사료를 50만원으로 하려다가 비난 여론을 의식해 줄였다. 따라서 보조금에 공천헌금(100억원 예상)을 보태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에서는 돈을 내지 않아도 비례대표에 꼭 넣어야 할 사람을 빼면 “비례대표 1~5번까지는 30억원, 6~10번까지는 10억원 정도씩 받아야 목표치를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다 합쳐도 250억원대. 지역구당 1억원씩만 지원해도 230억원이 필요한데, 홍보비와 당 지도부의 유세지원비 등 중앙당 차원 경비까지 가산하면 최소 300억원 이상은 필요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3월쯤 대대적인 중앙당후원회를 또 개최할 계획이다. 당 지도부는 지난해 12월 후원회에서 예상 외로 18억원이라는 ‘거금’을 모은데 고무돼 있다. 98년 후원회에서 2억5000여만원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 이회창총재의 한 측근은 “이번 후원회에서는 지난해 12월의 두 배는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당선이 확실시되는 영남권 후보들은 비례대표 못지않게 특별당비로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민련은 2월말쯤 중앙당후원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3월에 나오는 국고보조금 16억원과 선거보조금 65억원을 합쳐 81억원으로는 선거를 치르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민련 관계자는 “선거 지원유세비용과 홍보비만 산정해도 50억원 이상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민련이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김종필명예총재의 호주머니다. 특별당비든 뭐든 결국은 김명예총재의 호주머니를 통해 나오게 돼 있다는 것. 자민련은 또한 최고 고문직을 가지고 있는 박태준총리의 도움도 클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선거의 초반 과열현상은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견제 움직임이 촉발한 것이기도 하다. 본격 선거전에 들어가면 시민단체의 감시 눈초리 때문에 돈도 제대로 못쓸 터이니 미리 쓰고 보자는 심리가 후보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생존 기술만 늘어가는 정치권에 대해 시민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총선 후의 경제가 어떻게 되든 말든 우선은 많은 사람을 당선시켜 놓고 보는 것이 ‘장땡’이다. ‘돈 놓고 표 먹기’의 사생결단은 이번 총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총선을 3개월 앞둔 지난해 12월말까지 중앙선관위가 적발한 사전선거운동 사례만 634건. 대부분이 돈과 연관된 것들이다. 이는 15대 총선 당시 같은 기간의 63건에 비해 10배가 넘고, 15대 총선 기간을 통틀어 적발된 100건을 이미 넘어섰다. 이 때문에 중앙선관위는 이번 총선의 불법 혼탁 과열 양상이 사상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에서 시민단체의 선거혁명이 진행되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16대 대통령선거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총선 비용으로 얼마나 풀릴까
이번 선거가 사상 최대의 금권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는 중앙선관위의 대략적 예상치는 ‘1조원 이상’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경합지역 후보자는 최소 10억원, 일반적인 경우는 5억원 이상을 기본적인 선거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 따라서 후보자 1인당 평균 예상액을 6억원으로 잡을 때, 1500여명이 출마할 것으로 가정하면 9000억원이 간단하게 나온다. 여기에 중앙당의 선거지원비를 합하면 1조원이 훌쩍 넘어서는 것.
그러나 여기에는 또 선거보조금이 가산되어야 한다. 선거공영제의 취지에 따라 실시되고 있는 선거보조금 지원은 만성적인 정치부패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선거 관련 비용을 일정 부분 국가와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거 벽보 및 공보 제작비’ ‘소형 인쇄물 제작비’ 등을 국고로 보전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합의한 선거보조금 50% 인상안의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 명세에는 △선거사무소 등의 임차료 △전화 설치비 및 통화료 △방송연설 비용 △거리유세 비용 △후보 한 사람당 매일 45명 선거 사무원의 수당과 식비, 교통비 등의 지원이 포함돼 있다. 선거사무소를 얻는 비용은 물론 선거운동원 밥값과 용돈까지 국민의 세금에서 내놓으라는 소리다.
중앙선관위는 이에 대해 “개인 선거비용을 지나치게 국가에 전가하는 처사”라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국가 부담만 늘린다고 깨끗한 선거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얘기다. 현재 분위기로 이 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 그러나 만약 이 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입법화한다면, 4월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일정 비율 이상 득표할 경우에 1인당 평균 1억원 가까운 현금 보상을 받게 돼 모두 700억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국민 혈세에서 빠져나가게 된다(253개 선거구당 평균 3명의 선거비용 보전 대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이번 총선에서 선거공영제를 위해 정부가 국고에서 부담하는 선거비용 보전액은 약 636억127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만해도 15대 총선 때 84억5636만원(1인당 2085만원)의 7.5배에 달하는 규모. 그런데 여기에 700억원이 추가로 부담된다면 15대보다 무려 15.8배나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 외에 비례대표 공천헌금(상자기사 참조)이나 음성적 정치자금까지 합하면 이번 총선에서는 적게 잡아도 1조3000억원 정도의 돈이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쉽게 나온다.
“지난 15대 총선 때도 도시 지역에서는 ‘20당 10락’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번에는 인구수 상-하한선마저 상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까지 감안하면 ‘30당 20락’은 족히 될 조짐이다.”(민주당 정세분석위의 한 관계자) “야당이 아무리 바람으로 선거를 치른다 해도 한 장(10억원) 이하로는 어림도 없다. 중앙당에서도 꼭 이겨야 하는 전략 지역구에는 최소 10억원 이상의 실탄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서울의 한 의원)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 10억원, 무소속으로 나가려면 15억~20억원이 필요할 것.”(TK지역 출마를 노리는 한 후보자의 측근)
그러나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접전 지역에서는 ‘50당 30락’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5대 때도 당시 신한국당 수도권의 모 의원은 선거 전에 50억원을 마련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후보자들은 왜 그토록 많은 돈을 써야만 할까.
△시작부터 돈이다:수도권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는 전문직 출신 후보 L씨는 공천을 보다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 민주당 실세와 가깝다고 하는 모 정치 컨설턴트와 접촉했다. 그 대가로 그 컨설턴트가 요구한 돈은 2억원. 지역여론 조성비까지 포함된 액수였다. 그 액수에 놀란 L씨는 결국 그 방법을 포기하고, ‘연줄’을 찾아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기로 했다. 그렇지만 ‘연줄’을 찾아 부탁할 때마다 그 돈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L씨의 설명. 일주일에 1000만원 정도가 훌쩍 나가더란 얘기다.
△홍보비 1억원은 기본:이번 선거 최대의 특징인 ‘사이버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선거비용은 오히려 늘어났다. 다시 말해 조직 동원 등 기존의 선거 양태가 사이버 공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돈 잡아먹는 품목 하나가 늘어난 것. 현역 의원들은 현재 경쟁적으로 홈페이지를 치장하고 있는데 평균 10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홈페이지를 관리할 전담 인력까지 둔다면 관리비로만 매달 200만~300만원이 들어간다. 후보자의 각종 홍보자료가 담긴 CD롬을 이용한 ‘사이버 명함’은 5만장을 찍는데 6000여만원 정도가 들지만 벌써 현역 의원 20여명이 이 방법을 쓰고 있다.
홍보비에는 이것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ARS(전화자동응답) 여론조사 한번 하는데 보통 1500만원이 깨진다. 내 인지도도 올리고 공천 경합자 경쟁력까지 알아보려면 이것처럼 좋은 방법도 없다. 그렇다 보니 벌써 세 차례나 실시해 5000여만원이 들어갔다.”(수도권의 한 신진인사) 물론 공천 확정 뒤에도 여론조사는 필요하지만 경쟁력이 있는 인사라면 그 때부터는 중앙당의 몫이다.
현역 의원이라면 여기에 의정보고회 비용이 더 추가된다. 현역 의원들은 선거운동 개시일 전까지 의정보고회를 무제한 열 수 있고, 1인당 최고 3000원까지의 다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진 출마자를 따돌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 “의정보고회 500회를 목표로 삼고 실행하는 중이다. 한번에 50명만 잡아도 다과비로 15만원, 500회면 7500만원이다. 정말 죽을 지경이다.” (수도권 민주당 K의원)
△돈 먹는 하마, 조직 관리: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직 시작도 안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것은 이 다음부터. 그야말로 ‘자금의 블랙홀’ 선거조직이 기다리고 있다. 선거 비용의 절반 이상이 조직 가동비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조직은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공중전화와 같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2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역정서 덕택에 조직 가동비도 훨씬 줄어 10억원이면 될 듯하다.”(한나라당 경북 지역의 한 의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시의원이나 구의원들이 많이 찾아왔다. 무슨무슨 단체의 장이라는 사람도 꽤 많았다. 한결같이 자기가 가진 표가 얼마 된다고 얘기하면서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지갑을 열지 않은 탓인지 보름 정도 지나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지지도 조사를 해보니까 특히 여성 지지도가 10%나 떨어져 나갔다. 여성 표는 운동한 만큼, 돈들인 만큼 돌아온다는 공식이 맞다. 결국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민주당 서울의 한 신진인사)
선거조직은 협의회장(동책), 관리장(통책), 지역장(반책)으로 구성된다.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2000여명으로 구성되는 피라미드형 조직이다. 부산지역 한 중진의원의 보좌관은 지구당 핵심 당직자들에게 설날 선물비로 대략 4000만원 정도가 들어갈 것 같다고 말한다. 일인당 1만원짜리 선물이면 당직자가 4000명, 2만원이면 2000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최말단인 지역장이 하루에 쥐는 돈만 100만원 이상이 된다. 공식 선거기간 16일만 뛴다고 해도 지역장 한 사람당 1600만원, 지역장이 30명이면 5억여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당원에게 들어가는 돈은 보통 ‘당원수×10만원×2’로 계산하는 것이 정치권의 상식이다. 마지막에 2를 곱하는 이유는 선거 막판에 한번 더 주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 이렇게 따질 때 당원이 5000명이라고만 쳐도 10억원이다.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와 박빙의 살얼음을 걸을 때는 ‘마지막 배팅’이 또 기다리고 있다. 이때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이 되기 때문에 최소 십억원대 단위의 돈을 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기타 비용도 만만치 않다:조직가동비에 비하면 ‘껌값’이지만, 선거 사무실-연락소 임차비, 전화 설치비-통화료, 방송연설비용, 거리유세 비용(차량-확성기 임차료와 기름값 등),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 청중동원비 등등 끝이 없다. 입만 열어도 돈,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돈이다.
사조직 가동비는 치지 않아도 이 정도니 사조직까지 몇 개 가동하면 그 비용이 얼마인지 유추도 되지 않을 정도다. 부산선관위의 집계로는 부산-울산-경남지역 선거관련 사조직만 이미 300개를 넘어섰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무소속 출마자가 많은 영남권에 브로커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정치 브로커들이 출마예정자, 특히 정치 신인들에게 접근해 ‘쭛쭛선거 컨설팅 대표’ ‘△△산악회장’ ‘××친목회장’ 등의 명함을 주면서 거액을 요구하는 사례는 매우 흔한 일이다. 일부 후보자는 베테랑급 브로커를 수천만원의 선수금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일까지 있다. 지구당의 고참 사무장이나 보좌관 몸값이 치솟는 것도 바로 선거철이다.
민주당은 1월27일 중앙당후원회를 열어 본격적인 실탄 확보에 나섰다. 이날 걷힌 후원금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김봉호후원회장은 서영훈대표에게 50억원의 약정금을 전달했다. 최소 100억원 이상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전신인 국민회의는 98년 두 차례의 후원회에서 294억원을 모금했고, 지난해에도 한 차례의 후원회와 기부금 등을 통해 100억원 정도를 모금했다. 또한 지난해 국민회의가 30대 그룹에서 받은 법인 후원금은 200억원대.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라 법인의 연간 후원금 한도액이 5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따라서 올해는 법인 후원금만 5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선관위로부터 받는 1·4분기 정당보조금과 선거보조금도 100억원 가량이 된다. 이를 다 합치면 1000억원 정도의 선거자금은 확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총선을 치르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솔직한 토로다. 이 때문인지 증권가에서는 ‘민주당이 증시를 통해 이미 선거자금을 마련해 놓았다더라’ 하는 루머가 많이 퍼져 있는 상태. 민주당 내에서는 김영삼전대통령과 현철씨가 지난 15대 총선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벤치마킹해 수도권 경합지역에서는 아낌없는 실탄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한나라당은 우선 1·4분기 국고보조금 25억8900만원과 선거가 있는 해에 지급되는 선거보조금 103억5600만원을 3월 중에 받는다. 사무처 관계자는 “현재로선 이 보조금으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은 1월10일 마감한 공천접수 때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일년치 당비 120만원과 심사료 30만원을 받을 정도로 재정상태가 악화돼 있다. 그나마 심사료를 50만원으로 하려다가 비난 여론을 의식해 줄였다. 따라서 보조금에 공천헌금(100억원 예상)을 보태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에서는 돈을 내지 않아도 비례대표에 꼭 넣어야 할 사람을 빼면 “비례대표 1~5번까지는 30억원, 6~10번까지는 10억원 정도씩 받아야 목표치를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다 합쳐도 250억원대. 지역구당 1억원씩만 지원해도 230억원이 필요한데, 홍보비와 당 지도부의 유세지원비 등 중앙당 차원 경비까지 가산하면 최소 300억원 이상은 필요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3월쯤 대대적인 중앙당후원회를 또 개최할 계획이다. 당 지도부는 지난해 12월 후원회에서 예상 외로 18억원이라는 ‘거금’을 모은데 고무돼 있다. 98년 후원회에서 2억5000여만원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 이회창총재의 한 측근은 “이번 후원회에서는 지난해 12월의 두 배는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당선이 확실시되는 영남권 후보들은 비례대표 못지않게 특별당비로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민련은 2월말쯤 중앙당후원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3월에 나오는 국고보조금 16억원과 선거보조금 65억원을 합쳐 81억원으로는 선거를 치르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민련 관계자는 “선거 지원유세비용과 홍보비만 산정해도 50억원 이상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민련이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김종필명예총재의 호주머니다. 특별당비든 뭐든 결국은 김명예총재의 호주머니를 통해 나오게 돼 있다는 것. 자민련은 또한 최고 고문직을 가지고 있는 박태준총리의 도움도 클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선거의 초반 과열현상은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견제 움직임이 촉발한 것이기도 하다. 본격 선거전에 들어가면 시민단체의 감시 눈초리 때문에 돈도 제대로 못쓸 터이니 미리 쓰고 보자는 심리가 후보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생존 기술만 늘어가는 정치권에 대해 시민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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