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세계를 다룬 일본 만화들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1년 사이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요리만화’. ‘미스터 초밥왕’ ‘맛의 달인’ ‘아빠는 요리사’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을 들어보았거나 책장을 들춰보았을 법한 대표작이다.
일본 요리만화를 읽는 즐거움엔 단지 음식을 만드는 기법과 노하우의 치밀한 전개를 따라가는 ‘스릴’,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바로 만화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읽는 맛이다. ‘요리실력 대결’만을 눈으로 쫓지 말고 좀더 꼼꼼히, 느긋하게 음미하다 보면 일본의 먹거리뿐 아니라 축제, 명절, 식탁예절, 심지어 조직문화까지 탐색할 수 있다.
이미 앞에 소개한 세 편의 만화는 ‘충분히’ 소개된 탓에 식상한 맛마저 있지만, 아직 입소문을 타지 않은 작품 중에도 수작이 있다. 그 하나가 ‘맛 일번지’(도서출판 대원). 이 작품은 초밥집 이야기를 다루고 있되 ‘미스터 초밥왕’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미스터…’가 명요리사들이 초절기교적인 요리 테크닉을 선보이는 ‘대결구조’로 펼쳐지는 데 비해(이 작품은 갈수록 뛰어난 요리 고수들이 등장해 요리실력을 겨룬다는 구성 때문에 ‘드래곤 볼’에 비유되곤 한다) ‘맛 일번지’는 훨씬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냄새가 듬뿍 들어 있다.
배경은 도쿄의 아담한 일식집 ‘등촌’(藤村)의 주방. ‘이바시’라는 끝에서 두 번째쯤 서열의 요리사가 주인공(이바시는 덜렁거리고 허풍스러우며 여자를 밝히는, 그러나 아주 따뜻한 심성을 지닌 캐릭터다)이지만, 각자 강한 개성을 가진 주방 식구들이 에피소드별로 돌아가며 주연을 맡는다. 음식을 매개로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기도 하고, 추억을 일깨우기도 하며, 인생의 지혜를 깨우치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묶여 있다.
‘어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태풍은 입춘으로부터 210일째 부는 바람’이라든가 ‘명절음식 중 검은 콩은 건강, 말린 청어알은 자손번영, 말린 멸치는 오곡 풍년을 상징한다’ 등 책 곳곳에 세시풍속, 속담, 태몽 이야기를 살짝살짝 곁들인 것도 특징. 초밥집 자체는 서민들이 이용하기에 비싼 음식점이지만, 펼쳐지는 내용은 서민적이기 그지없다. 현재 18권까지 나와 있다.
‘미스터 요리짱’(닉스미디어)은 맨 앞부분에 전개되는 몇 개의 에피소드만 보았을 경우 ‘별 볼 일 없는 요리만화’라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주인공은 이미 제 한몫을 어엿이 하는, 그러나 다혈질에 덜렁거리는 초밥집 요리사. 경쟁자를 상대로 전통 초밥의 맛과 아름다움을 대결을 통해 증명한다는 구성도 새롭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그다지 인상적으로 형상화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요리만화다운’ 맛이 제법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히 요리사와 손님 사이의 예의나 공감대 문제,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묘사가 두드러진다.
시공사에서 펴낸 쓰치야마 시게루의 ‘라면짱’은 제목 그대로 라면을 소재로 한 만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라 면을 반죽해 뽑고 다랑어로 국물을 내서 편육과 죽순을 얹은 일본식 라면의 전통 맛을 지켜나가는 이야기다. ‘15세 이상 가독’이라고 표지에 쓰여 있지만 망나니에 가까운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섹스를 벌이는 장면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어 청소년들에게 읽히기엔 다소 민망하기도.
위 세 가지 만화에는 조리법뿐 아니라 일본 음식을 ‘먹는 방법’도 친절히 소개되어 있다. 이를테면 초밥을 먹는 방법은 초생강을 반쯤 먹은 뒤 나머지는 고명 위에 얹고 검지로 누른 채 중지와 엄지로 초밥을 집어 등 뒤에(밥이 아니라) 간장을 찍어서 고명을 밑으로 향해 먹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요리짱’). 생선구이를 젓가락으로 깔끔하게 발라 먹는 요령이나(‘맛 일번지’), 라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라면짱’)도 나와 있다.
요리를 소재로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먹거리 문화를 소개한 만화라는 점에서 최근 발간된 ‘명가의 술’(서울문화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야기는 일본 전통주 ‘달의 눈물’을 생산하는 술도가집 딸 나츠코가 도쿄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청산하고 최고의 음양주(吟釀酒)를 만들기 위해 낙향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환상의 쌀’을 싹틔우고, 모를 내고, 추수하는 과정이 ‘드라마식’ 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에피소드 묶음식의 요리만화들과 차별화된다. 역시 일본주의 종류, 제작 방법 등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는데, 여느 요리만화보다 고풍스런 일본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풍겨나는 편이다.
이들 만화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일본문화의 코드’는 요리 혹은 음식에 대한 일본인들의 각별한 애정. ‘얼마나 맛이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요리사가 ‘얼마나 열의를 갖고 공들여 요리했는가’를 따지며 음식에서 ‘의미’를 찾는 대목이 여러 번 등장한다. 만화비평가 오은하의 말처럼 “ (일본인들에게) 요리란 정성과 사랑과 기술이 배합된 최고의 문화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 그 지방의 전통 및 수준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디테일한 꾸밈’에 집착하는 일본인들의 성향 역시 잘 드러나 있다. 이들 만화의 상당 부분이 ‘맛’ 못잖게 ‘모양 내기’ 이야기에 할애되어 있다. 여기 등장하는 요리사들은 미감(美感)을 키우기 위해 서예와 꽃꽂이를 배우기도 하고 미술관을 견학하곤 한다. 번역가 이석환씨의 말에 따르면 “실제 일본 고급요리집 중에는 2년의 수습과정 동안 글씨와 꽃꽂이를 정식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다”는 것.
아직은 장인들의 세계에 여성을 끼워주지 않는 보수주의도 읽힌다. 대개의 일본 전문가 만화, 특히 요리계처럼 장인의 세계를 다룬 만화들에서 주인공은 하나같이 남성이고 여성은 서빙하는 사람, 재료 공급자 정도로만 다뤄진다.
예외가 ‘명가의 술’. “주조장에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없다”는 미신을 깨기 위해 분전하는 주인공 나츠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른 예술작품과 상품이 그러하듯, 만화도 한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고 설명해주는 훌륭한 텍스트다. 특히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와 성향’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창구다. 일본을 보다 깊이 알고 싶다면 위에 소개한 일본 요리만화들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본 요리만화를 읽는 즐거움엔 단지 음식을 만드는 기법과 노하우의 치밀한 전개를 따라가는 ‘스릴’,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바로 만화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읽는 맛이다. ‘요리실력 대결’만을 눈으로 쫓지 말고 좀더 꼼꼼히, 느긋하게 음미하다 보면 일본의 먹거리뿐 아니라 축제, 명절, 식탁예절, 심지어 조직문화까지 탐색할 수 있다.
이미 앞에 소개한 세 편의 만화는 ‘충분히’ 소개된 탓에 식상한 맛마저 있지만, 아직 입소문을 타지 않은 작품 중에도 수작이 있다. 그 하나가 ‘맛 일번지’(도서출판 대원). 이 작품은 초밥집 이야기를 다루고 있되 ‘미스터 초밥왕’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미스터…’가 명요리사들이 초절기교적인 요리 테크닉을 선보이는 ‘대결구조’로 펼쳐지는 데 비해(이 작품은 갈수록 뛰어난 요리 고수들이 등장해 요리실력을 겨룬다는 구성 때문에 ‘드래곤 볼’에 비유되곤 한다) ‘맛 일번지’는 훨씬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냄새가 듬뿍 들어 있다.
배경은 도쿄의 아담한 일식집 ‘등촌’(藤村)의 주방. ‘이바시’라는 끝에서 두 번째쯤 서열의 요리사가 주인공(이바시는 덜렁거리고 허풍스러우며 여자를 밝히는, 그러나 아주 따뜻한 심성을 지닌 캐릭터다)이지만, 각자 강한 개성을 가진 주방 식구들이 에피소드별로 돌아가며 주연을 맡는다. 음식을 매개로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기도 하고, 추억을 일깨우기도 하며, 인생의 지혜를 깨우치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묶여 있다.
‘어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태풍은 입춘으로부터 210일째 부는 바람’이라든가 ‘명절음식 중 검은 콩은 건강, 말린 청어알은 자손번영, 말린 멸치는 오곡 풍년을 상징한다’ 등 책 곳곳에 세시풍속, 속담, 태몽 이야기를 살짝살짝 곁들인 것도 특징. 초밥집 자체는 서민들이 이용하기에 비싼 음식점이지만, 펼쳐지는 내용은 서민적이기 그지없다. 현재 18권까지 나와 있다.
‘미스터 요리짱’(닉스미디어)은 맨 앞부분에 전개되는 몇 개의 에피소드만 보았을 경우 ‘별 볼 일 없는 요리만화’라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주인공은 이미 제 한몫을 어엿이 하는, 그러나 다혈질에 덜렁거리는 초밥집 요리사. 경쟁자를 상대로 전통 초밥의 맛과 아름다움을 대결을 통해 증명한다는 구성도 새롭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그다지 인상적으로 형상화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요리만화다운’ 맛이 제법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히 요리사와 손님 사이의 예의나 공감대 문제,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묘사가 두드러진다.
시공사에서 펴낸 쓰치야마 시게루의 ‘라면짱’은 제목 그대로 라면을 소재로 한 만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라 면을 반죽해 뽑고 다랑어로 국물을 내서 편육과 죽순을 얹은 일본식 라면의 전통 맛을 지켜나가는 이야기다. ‘15세 이상 가독’이라고 표지에 쓰여 있지만 망나니에 가까운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섹스를 벌이는 장면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어 청소년들에게 읽히기엔 다소 민망하기도.
위 세 가지 만화에는 조리법뿐 아니라 일본 음식을 ‘먹는 방법’도 친절히 소개되어 있다. 이를테면 초밥을 먹는 방법은 초생강을 반쯤 먹은 뒤 나머지는 고명 위에 얹고 검지로 누른 채 중지와 엄지로 초밥을 집어 등 뒤에(밥이 아니라) 간장을 찍어서 고명을 밑으로 향해 먹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요리짱’). 생선구이를 젓가락으로 깔끔하게 발라 먹는 요령이나(‘맛 일번지’), 라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라면짱’)도 나와 있다.
요리를 소재로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먹거리 문화를 소개한 만화라는 점에서 최근 발간된 ‘명가의 술’(서울문화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야기는 일본 전통주 ‘달의 눈물’을 생산하는 술도가집 딸 나츠코가 도쿄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청산하고 최고의 음양주(吟釀酒)를 만들기 위해 낙향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환상의 쌀’을 싹틔우고, 모를 내고, 추수하는 과정이 ‘드라마식’ 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에피소드 묶음식의 요리만화들과 차별화된다. 역시 일본주의 종류, 제작 방법 등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는데, 여느 요리만화보다 고풍스런 일본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풍겨나는 편이다.
이들 만화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일본문화의 코드’는 요리 혹은 음식에 대한 일본인들의 각별한 애정. ‘얼마나 맛이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요리사가 ‘얼마나 열의를 갖고 공들여 요리했는가’를 따지며 음식에서 ‘의미’를 찾는 대목이 여러 번 등장한다. 만화비평가 오은하의 말처럼 “ (일본인들에게) 요리란 정성과 사랑과 기술이 배합된 최고의 문화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 그 지방의 전통 및 수준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디테일한 꾸밈’에 집착하는 일본인들의 성향 역시 잘 드러나 있다. 이들 만화의 상당 부분이 ‘맛’ 못잖게 ‘모양 내기’ 이야기에 할애되어 있다. 여기 등장하는 요리사들은 미감(美感)을 키우기 위해 서예와 꽃꽂이를 배우기도 하고 미술관을 견학하곤 한다. 번역가 이석환씨의 말에 따르면 “실제 일본 고급요리집 중에는 2년의 수습과정 동안 글씨와 꽃꽂이를 정식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다”는 것.
아직은 장인들의 세계에 여성을 끼워주지 않는 보수주의도 읽힌다. 대개의 일본 전문가 만화, 특히 요리계처럼 장인의 세계를 다룬 만화들에서 주인공은 하나같이 남성이고 여성은 서빙하는 사람, 재료 공급자 정도로만 다뤄진다.
예외가 ‘명가의 술’. “주조장에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없다”는 미신을 깨기 위해 분전하는 주인공 나츠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른 예술작품과 상품이 그러하듯, 만화도 한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고 설명해주는 훌륭한 텍스트다. 특히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와 성향’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창구다. 일본을 보다 깊이 알고 싶다면 위에 소개한 일본 요리만화들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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