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전인 89년 11월9일, 동서 냉전의 상징으로 버티고 섰던 베를린장벽이 거짓말처럼 무너져버린 일은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은 우리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독일은 그 후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역사의 변화 물결 속에서 1년이 채 못돼 통일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최근 독일 언론들은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며 지난 10년을 평가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전반적인 시각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국민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동서간의 장벽은 여전하고 동독의 경제 수준은 서독의 절반도 못되는데다가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의 2배나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서독으로 이주하려는 동독 주민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특히 젊은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출산마저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많은 동독 시민들은 차라리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지금의 동독은 10년전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동독이 처한 이러한 상황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의 반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최근 동독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음울하던 회색의 낡은 건물들은 말끔하게 새로 지어졌고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전화, 전력 등의 기간설비는 서독보다도 훨씬 더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동독 지역 어디에서도 가난하고 낙후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서독보다 더 현대적”
외양뿐만 아니라 실제로 동독 시민들의 절반 정도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보다 생활이 풍족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동독 가계의 재산은 3배가 늘었고, 서독과 마찬가지로 2명 중 1명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연금 생활자들의 경우 동독 주민들이 서독보다 높은 연금을 받고 있다. 구동독 시절의 노동시간을 모두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또 동독의 경제력이 서독의 60% 정도에 불과하고 일인당 조세 수입도 서독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농업 분야에서만큼은 서독을 능가하고 있다. 현재 소수로 남은 동독의 농업 종사자들은 1인당 126ha란 대형 경작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것은 세계 무대에서의 생산성 경쟁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서독의 1인당 평균 41ha에 비하면 꿈만 같은 크기이다.
문제는 농업에 비해 훨씬 많은 고용 창출 능력을 가진 기타 산업 분야다. 폴크스바겐 지부나 옌옵틱(Jenoptik) 같은 최첨단 산업이 있지만 이러한 기업들 일자리의 75%는 서독에 위치해 있다. 독일의 100대 기업 중 동독의 기업은 전무한 상태이다.
현재 동독의 산업구조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형 기업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소수의 최첨단 기술산업이 불규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런 최첨단 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서독으로부터 수십억 마르크의 재정이 보조되었지만 기업주들은 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는 최신 설비를 구입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동독의 임금이 너무나 빠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는 효율적이지만 사람은 거의 없는 기업들이 나타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산업의 지역 편향도 두드러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주민의 30% 이상이 실업 상태에 있는가 하면 드레스덴시 주변은 지멘스의 실리콘 작소니(Silikon Sazony) 등이 들어서면서 수백개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 핸드폰 부품회사 및 PC제조업체가 모여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동독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독의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지구화로부터 시작된 세계 산업구조의 변화가 조만간 동서독을 막론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 분야를 강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미국 그늘 벗어날 수 있을까
서독은 그동안 낙후한 구동독의 산업과 엄청난 국가부채를 해결하고 사회복지를 진흥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동독에 쏟아부었지만(도표 참조) 여전히 동독의 실업률은 17.2%나 된다.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구동독시절 완전 고용체제에서 살던 동독 시민들로서는 현재의 실업상태가 견디기 힘들 것이다. 동독 시민들은 자본주의라는 거센 바람 앞에서 깊은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 등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 대한 외국의 시각이다. 독일 내부에서 바라보는 우려섞인 경제적 평가와는 달리 외국 언론들의 정치적, 외교적 평가는 훨씬 긍정적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통독후 에도 모범적 민주국가의 모습을 유지해 왔고, 유럽연합에 귀속되기 위해 마르크까지도 포기했다면서 독일을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 국가의 의도는 독일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미국 의존적 유럽연합의 안보정책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전 연방총리 슈미트나 전 대통령 바이체커 등도 최근 시사평론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안보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연 독일이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 유럽연합 중심국으로서 다른 회원국들과 함께 독자적 외교- 군사 정책을 실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통독 10년을 맞은 오늘, 앞으로 10년간 독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독일 언론들은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며 지난 10년을 평가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전반적인 시각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국민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동서간의 장벽은 여전하고 동독의 경제 수준은 서독의 절반도 못되는데다가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의 2배나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서독으로 이주하려는 동독 주민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특히 젊은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출산마저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많은 동독 시민들은 차라리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지금의 동독은 10년전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동독이 처한 이러한 상황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의 반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최근 동독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음울하던 회색의 낡은 건물들은 말끔하게 새로 지어졌고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전화, 전력 등의 기간설비는 서독보다도 훨씬 더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동독 지역 어디에서도 가난하고 낙후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서독보다 더 현대적”
외양뿐만 아니라 실제로 동독 시민들의 절반 정도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보다 생활이 풍족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동독 가계의 재산은 3배가 늘었고, 서독과 마찬가지로 2명 중 1명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연금 생활자들의 경우 동독 주민들이 서독보다 높은 연금을 받고 있다. 구동독 시절의 노동시간을 모두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또 동독의 경제력이 서독의 60% 정도에 불과하고 일인당 조세 수입도 서독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농업 분야에서만큼은 서독을 능가하고 있다. 현재 소수로 남은 동독의 농업 종사자들은 1인당 126ha란 대형 경작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것은 세계 무대에서의 생산성 경쟁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서독의 1인당 평균 41ha에 비하면 꿈만 같은 크기이다.
문제는 농업에 비해 훨씬 많은 고용 창출 능력을 가진 기타 산업 분야다. 폴크스바겐 지부나 옌옵틱(Jenoptik) 같은 최첨단 산업이 있지만 이러한 기업들 일자리의 75%는 서독에 위치해 있다. 독일의 100대 기업 중 동독의 기업은 전무한 상태이다.
현재 동독의 산업구조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형 기업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소수의 최첨단 기술산업이 불규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런 최첨단 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서독으로부터 수십억 마르크의 재정이 보조되었지만 기업주들은 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는 최신 설비를 구입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동독의 임금이 너무나 빠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는 효율적이지만 사람은 거의 없는 기업들이 나타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산업의 지역 편향도 두드러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주민의 30% 이상이 실업 상태에 있는가 하면 드레스덴시 주변은 지멘스의 실리콘 작소니(Silikon Sazony) 등이 들어서면서 수백개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 핸드폰 부품회사 및 PC제조업체가 모여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동독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독의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지구화로부터 시작된 세계 산업구조의 변화가 조만간 동서독을 막론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 분야를 강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미국 그늘 벗어날 수 있을까
서독은 그동안 낙후한 구동독의 산업과 엄청난 국가부채를 해결하고 사회복지를 진흥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동독에 쏟아부었지만(도표 참조) 여전히 동독의 실업률은 17.2%나 된다.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구동독시절 완전 고용체제에서 살던 동독 시민들로서는 현재의 실업상태가 견디기 힘들 것이다. 동독 시민들은 자본주의라는 거센 바람 앞에서 깊은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 등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 대한 외국의 시각이다. 독일 내부에서 바라보는 우려섞인 경제적 평가와는 달리 외국 언론들의 정치적, 외교적 평가는 훨씬 긍정적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통독후 에도 모범적 민주국가의 모습을 유지해 왔고, 유럽연합에 귀속되기 위해 마르크까지도 포기했다면서 독일을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 국가의 의도는 독일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미국 의존적 유럽연합의 안보정책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전 연방총리 슈미트나 전 대통령 바이체커 등도 최근 시사평론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안보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연 독일이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 유럽연합 중심국으로서 다른 회원국들과 함께 독자적 외교- 군사 정책을 실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통독 10년을 맞은 오늘, 앞으로 10년간 독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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