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직도 신당이 추진되고 있었나.” 11월11일 국민회의가 추진하는 신당의 추진위원 2차 발표가 나오자 한나라당의 장광근부대변인은 여권 신당이 국민에게 잊힌 지 오래라며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각종 악재가 꼬리를 무는 파행 정국의 와중에서 여권 신당의 추진 사실은 일반인의 관심권 밖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요란하게 팡파르를 울리며 신당 추진을 발표했지만,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인상도 준다.
그러나 여권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신당 창당을 못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늦추고 있었다는 것. 현재와 같은 아수라장 상태에서는 신당을 띄워봤자 여야 극한 대치의 칼날에 상처만 입기 쉬우므로 속도 조절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민회의 박상천총무는 11월25일로 예정된 신당창당준비위원회의 출범도 뒤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김대중대통령에게 강력히 건의했다. 지금은 정치개혁입법이나 예산안 통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이영일대변인 또한 “정치개혁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신당은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 카운터파트 누가 될까” 긴장
여권 지도부가 이처럼 속도조절론을 펴는 데에는 신당의 얼개가 구체화되면 될수록 의원들의 동요가 심해져서 국회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고충이 있다. 또한 아직 선거구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신당 영입을 권유받는 주요 인사들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큰 요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신당이 1, 2차 영입을 통해 총선에서 경쟁력 있는 인물들을 대거 쏟아놓자 정가는 서서히 태풍권으로 진입하는 분위기다(표 참조). 1차적으로는 여권내 공천 경쟁이 벌써부터 격돌 양상을 띠고 있고, 2차적으로는 카운터파트가 될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쩍 긴장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어느 신진 인사가 자신의 지역구에 뛰어들지 몰라 여권의 공천 구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9월10일 발기인 모임으로 출범한 여권 신당은 그동안 모두 74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지역별로 보았을 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27명으로 가장 많고, 영남권이 23명으로 그 다음이다. 충청권이 12명, 강원권이 6명이지만 호남은 4명에 그쳤다. 전국 정당화를 겨냥한 김대통령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발현됐음을 읽을 수 있다.
각계의 전문가군이 대거 합류한 사실도 총선에서의 상품성과 경쟁력을 중요시한 결과. 이상철 한국통신 프리텔사장, 곽치영 데이콤사장, 이승엽 삼환컨설팅대표 등 기업-금융계가 11명으로 가장 많은 것은 IMF 이후 정보산업계나 금융계에 일반의 관심이 몰리는 현상을 반영한 것. 그 다음으로 관계가 9명, 재야와 군 출신이 각기 8명, 법조와 과학기술의료계가 각기 6명, 학계 5명, 언론계 4명 등이다. 이들 중 50여명이 총선 예비주자로 파악된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이 영입자의 전부가 아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최동규 전동자부장관, 최환 전부산고검장,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의 함승희변호사 등은 발표가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정작 놀랄 만한 인물들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내년 초에 막상 뚜껑이 열리면 놀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말해 여소야대 극복을 위한 여권의 준비가 상당히 진척중임을 시사했다.
여권의 신당 추진이 점차 탄력을 받는 데에는 정치권 외곽 여러 곳에서 창당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 이한동고문이 모색중인 ‘중부권 신당’, 자민련의 김용환의원과 허화평전의원이 추진하는 ‘벤처 신당’, 박철언의원이 모색하는 ‘TK 신당’에다 무소속 홍사덕의원과 ‘마지막 재야’인 장기표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개혁 신당’ 등 곳곳에서 정치권 재편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벤처 신당’과 ‘TK 신당’에 대해서는 상자기사 참조). 지금은 비록 이들 상당수가 모색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연말이나 내년 초에 구체적인 모습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 정치권 전체가 ‘신당 열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진보 진영의 민주노동당 창당 작업에도 점차 가속도가 붙고 있다. 97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 승리 21’을 띄웠다가 다시 흩어졌던 진보진영은 지난 8월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정하는 한편 공동대표로 권영길 전민주노총위원장을 선출했다. 이들은 내년 1월 창당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처럼 곳곳에서 신당 창당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본다면 20세기를 마감하고 2000년대로 진입하기 직전이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이버 민주주의’가 크게 신장했고, IMF를 겪으면서 유권자 개개인의 ‘사고 패러다임’도 과거의 수동적-내적 지향성에서 능동적-외부 지향성으로 크게 달라진 사실이 정치권 변화의 동축(動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21세기에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통의 기대감이 정치권 변화와 분화(分化)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여러 움직임을 단순히 정치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할 듯하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11월12일 시민단체인 ‘민주통일복지국민연합’ 주최의 포럼에서 홍사덕의원은 주제 발표를 통해 “정권교체 이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두 가지 화두인 내각제와 정치개혁은 모두 지역주의를 대물림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준비를 위해선 금세기 안에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당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포럼에는 이한동고문이 참석, ‘큰 틀의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용환의원 역시 11월10일 충남대 특강에서 “새 천년을 맞아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정치세력의 출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정치에 ‘연착륙’할는지 미지수
그러나 이같은 창당을 통한 정치실험이 현실 정치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 홍의원부터 “신당을 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시달리는 단계”라며 새로운 정당 만들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선 지역을 벗어난 전국 정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부터가 관건이다. 국민회의 자민련 한나라당 등 제도권 정당이 지역구도에 의존하면서 ‘지역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상, 과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기겠느냐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21세기에도 지역구도가 상존한다면 자금난이나 인물난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한 아직도 “나를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일반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도 커다란 숙제이다. 물론 신당 추진 세력은, 21세기적 새 패러다임에서 보자면 위와 같은 지적들은 “기존의 퇴행적 정치문화에 길들여진 시각”이라고 강조한다. 정당 운영 양식부터 선거 운동 양식까지 모든 것을 다 바꾸어 참신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이렇게 본다면 내년 16대 총선은 지금의 ‘2여 1야’ 혹은 ‘1여 1야’(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합당할 경우) 구도에서 벗어나 크고 작은 정치세력들이 일제히 격돌하는 ‘혼미의 대회전’으로 치러질 가능성도 크다. 이들 신당이 내년까지 과연 어떠한 추진력을 얻으면서 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여권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신당 창당을 못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늦추고 있었다는 것. 현재와 같은 아수라장 상태에서는 신당을 띄워봤자 여야 극한 대치의 칼날에 상처만 입기 쉬우므로 속도 조절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민회의 박상천총무는 11월25일로 예정된 신당창당준비위원회의 출범도 뒤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김대중대통령에게 강력히 건의했다. 지금은 정치개혁입법이나 예산안 통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이영일대변인 또한 “정치개혁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신당은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 카운터파트 누가 될까” 긴장
여권 지도부가 이처럼 속도조절론을 펴는 데에는 신당의 얼개가 구체화되면 될수록 의원들의 동요가 심해져서 국회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고충이 있다. 또한 아직 선거구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신당 영입을 권유받는 주요 인사들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큰 요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신당이 1, 2차 영입을 통해 총선에서 경쟁력 있는 인물들을 대거 쏟아놓자 정가는 서서히 태풍권으로 진입하는 분위기다(표 참조). 1차적으로는 여권내 공천 경쟁이 벌써부터 격돌 양상을 띠고 있고, 2차적으로는 카운터파트가 될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쩍 긴장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어느 신진 인사가 자신의 지역구에 뛰어들지 몰라 여권의 공천 구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9월10일 발기인 모임으로 출범한 여권 신당은 그동안 모두 74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지역별로 보았을 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27명으로 가장 많고, 영남권이 23명으로 그 다음이다. 충청권이 12명, 강원권이 6명이지만 호남은 4명에 그쳤다. 전국 정당화를 겨냥한 김대통령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발현됐음을 읽을 수 있다.
각계의 전문가군이 대거 합류한 사실도 총선에서의 상품성과 경쟁력을 중요시한 결과. 이상철 한국통신 프리텔사장, 곽치영 데이콤사장, 이승엽 삼환컨설팅대표 등 기업-금융계가 11명으로 가장 많은 것은 IMF 이후 정보산업계나 금융계에 일반의 관심이 몰리는 현상을 반영한 것. 그 다음으로 관계가 9명, 재야와 군 출신이 각기 8명, 법조와 과학기술의료계가 각기 6명, 학계 5명, 언론계 4명 등이다. 이들 중 50여명이 총선 예비주자로 파악된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이 영입자의 전부가 아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최동규 전동자부장관, 최환 전부산고검장,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의 함승희변호사 등은 발표가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정작 놀랄 만한 인물들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내년 초에 막상 뚜껑이 열리면 놀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말해 여소야대 극복을 위한 여권의 준비가 상당히 진척중임을 시사했다.
여권의 신당 추진이 점차 탄력을 받는 데에는 정치권 외곽 여러 곳에서 창당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 이한동고문이 모색중인 ‘중부권 신당’, 자민련의 김용환의원과 허화평전의원이 추진하는 ‘벤처 신당’, 박철언의원이 모색하는 ‘TK 신당’에다 무소속 홍사덕의원과 ‘마지막 재야’인 장기표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개혁 신당’ 등 곳곳에서 정치권 재편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벤처 신당’과 ‘TK 신당’에 대해서는 상자기사 참조). 지금은 비록 이들 상당수가 모색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연말이나 내년 초에 구체적인 모습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 정치권 전체가 ‘신당 열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진보 진영의 민주노동당 창당 작업에도 점차 가속도가 붙고 있다. 97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 승리 21’을 띄웠다가 다시 흩어졌던 진보진영은 지난 8월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정하는 한편 공동대표로 권영길 전민주노총위원장을 선출했다. 이들은 내년 1월 창당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처럼 곳곳에서 신당 창당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본다면 20세기를 마감하고 2000년대로 진입하기 직전이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이버 민주주의’가 크게 신장했고, IMF를 겪으면서 유권자 개개인의 ‘사고 패러다임’도 과거의 수동적-내적 지향성에서 능동적-외부 지향성으로 크게 달라진 사실이 정치권 변화의 동축(動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21세기에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통의 기대감이 정치권 변화와 분화(分化)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여러 움직임을 단순히 정치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할 듯하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11월12일 시민단체인 ‘민주통일복지국민연합’ 주최의 포럼에서 홍사덕의원은 주제 발표를 통해 “정권교체 이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두 가지 화두인 내각제와 정치개혁은 모두 지역주의를 대물림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준비를 위해선 금세기 안에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당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포럼에는 이한동고문이 참석, ‘큰 틀의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용환의원 역시 11월10일 충남대 특강에서 “새 천년을 맞아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정치세력의 출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정치에 ‘연착륙’할는지 미지수
그러나 이같은 창당을 통한 정치실험이 현실 정치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 홍의원부터 “신당을 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시달리는 단계”라며 새로운 정당 만들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선 지역을 벗어난 전국 정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부터가 관건이다. 국민회의 자민련 한나라당 등 제도권 정당이 지역구도에 의존하면서 ‘지역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상, 과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기겠느냐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21세기에도 지역구도가 상존한다면 자금난이나 인물난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한 아직도 “나를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일반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도 커다란 숙제이다. 물론 신당 추진 세력은, 21세기적 새 패러다임에서 보자면 위와 같은 지적들은 “기존의 퇴행적 정치문화에 길들여진 시각”이라고 강조한다. 정당 운영 양식부터 선거 운동 양식까지 모든 것을 다 바꾸어 참신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이렇게 본다면 내년 16대 총선은 지금의 ‘2여 1야’ 혹은 ‘1여 1야’(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합당할 경우) 구도에서 벗어나 크고 작은 정치세력들이 일제히 격돌하는 ‘혼미의 대회전’으로 치러질 가능성도 크다. 이들 신당이 내년까지 과연 어떠한 추진력을 얻으면서 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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