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기자를 취재해야 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일본 신문 특파원은 “일본에서 는 보지 못했던 일인데, 기자가 신문 일면 머릿기사로 오른 적이 또 있었느냐”고 묻는다. 항상 ‘여론의 도마’를 만들고 마련했던 기자들이 이번에는 거꾸로 그 도마에 올랐다. 그 도마의 중심에는 정치부 기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거센 소용돌이에 몰아 넣은 이른바 ‘언론대책문건 사건’ 한가운데에 정치부 기자 출신들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탓이다. 중앙일보 문일현기자(경영지원실 차장, 휴직후 중국 베이징 연수) 는 ‘언론대책문건’의 작성자로 밝혀졌고, 평화방송 이도준기자(사회부 차장)는 이를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의 개인 사무실에서 복사해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이기자는 특히 문서 전달 전 정의원에게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배가시켰다. 이 모두 일반의 상식을 배반하는 일탈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들이다.
사건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기자, 특히 정치부 기자들이 마치 권력과 언론 유착의 대명사처럼, 또 타락한 언론인의 전형으로 난도질당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두 기자의 행태를 비난하고 이를 언론계 자정운동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네티즌들이나 술자리 대화의 성토는 극단을 치닫는다.
물론 대다수 정치부 기자, 밤낮없이 보도용‘양식거리’를 찾아 뛰어다니느라 가정을 제대로 지킬 새도 없는 다수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국민회의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정치부 기자라는 게 정말 부끄럽다”며 “이제 낯을 들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어느 한나라당 출입 기자 역시 “가족과 아이들 보기가 민망하다”며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모든 정치부 기자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분위기인데 대부분은 정말 그렇지 않다”고 억울해 했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언론인, 특히 정치부 기자들의 비언론적 일탈행위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태우 전대통령 시절 당시 민정당 출입기자들이 크게 보아 ‘맹아파’(이종찬계열)와 ‘허주파’ (김윤환계열)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은 기자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다.
‘기자 관리’를 가장 잘했던 것은 김영삼전대통령과 상도동 사람들이었다. 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 기 이전부터 언론계 내외에는 ‘YS 장학생’이란 말이 회자됐고, 9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연합통신의 한 간부는 김영삼 민자당총재에게 언론계 동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켰다. YS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 파문은 곧 잠잠해졌다.
김대중대통령의 동교동사람들도 야당시절 ‘자기사람’을 많이 따졌고 필요에 따라 관리도 했다. 당시 기자사회에서는 동교동 지하벙커(DJ의 서재)에 들어갔다 왔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친DJ’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작성한 ‘이회창 선거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가 유출돼 선거 쟁점으로 부각됐고, 국민신당 당원들이 중앙일보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세칭 ‘8룡(龍)’이 치열한 경쟁을 보인 97년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에도 일부 정치부 기자와 일부 후보 캠프의 ‘유착’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밀착’을 제의받고 거절한 기자들도 많았지만, 가장 세력이 컸던 어느 후보는 출입기자의 부인 생일까지 알아내 기자 부인을 함께 불러 식사할 정도로 집요함을 보였다. 이런 끈끈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부 기자가 정`-`관계에 진출한 경우도 상당수다.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한 ‘우호적 관계’를 가질 일이 많다. 물론 정치인은 우호적 보도를 위해, 기자들은 보다 정확하고 빠른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당직개편 등이 있을 때면 출입기자에게 자신의 인사를 부탁하는 정치인도 나온다. 한 중진 기자는 “과거 야당을 출입했을 때 모 재선의원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총재에게 정책위의장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 저신의 경험을 말한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자문하고, 실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기자도 없지 않다. 정치인이 자신과 가까운 기자를 꾸준히 관리한다는 얘기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언론대책문건사건에서 불거진 정형근의원`-`이도준차장, 이종찬부총재`-`문일현차장의 관계도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들간의 관계는 다른 대다수 정치부 기자들도 경악할 정도로 상상 외다.
한 정치부 출신 기자는 다소 역설적인 얘기를 했다. “정치권 인사가 술을 사는 등 뭔가 호의를 베풀려할 때 거절하면 이 정치인은 오히려 ‘이 친구는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하는구나’하고 생각하고, 다음부터 취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계심이 취재를 방해하는 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냥 응하면 더 가까워져서 좋은 정보를 얻는 일이 많아진다. 이런 딜레마가 내내 쫓아다닌다.”
지금도 정치부 기자들은 새벽에는 물론 밤늦게까지도 당직을 맡고 있는 중진이나 기타 실세정치인의 집을 수시로 찾아다닌다. 이를 통해 정국의 흐름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날 쓸 기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는 정확한 기사작성에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한 정치인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정치인과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고 이견을 보이는 정치사안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런 점에서 정치부 기자들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또 정치부 기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도 아니다. 언론사의 모든 기자들에게는 항상 ‘유혹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대책은 어떤 방향에서 모색돼야 할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기자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또 그러다가는 쉽게 잊어버리는 ‘냄비적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현실과 이상’에 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듯하다. 우선 그같은 예사롭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켜내는 것은 기자 자신이다. 유혹에 넘어갈 것인지, 장악을 당할 것인지, 일탈의 늪으로 빠져들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기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자는 권력이나 사회의 감시자이고 시민들의 여론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윤리 의식을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한다. 취재원과 관련해 늘 나오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경구를 다시 한번 새겨 봄 직하다. 시민들도 이번 사건이 언론윤리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끌어들이는 권력이나 정치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절대적 요구사항이다. 바야흐로 언론인의 직업 윤리와 기자의 가치가 새삼 강조되는 새 천년 문턱이다.
우리 사회를 거센 소용돌이에 몰아 넣은 이른바 ‘언론대책문건 사건’ 한가운데에 정치부 기자 출신들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탓이다. 중앙일보 문일현기자(경영지원실 차장, 휴직후 중국 베이징 연수) 는 ‘언론대책문건’의 작성자로 밝혀졌고, 평화방송 이도준기자(사회부 차장)는 이를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의 개인 사무실에서 복사해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이기자는 특히 문서 전달 전 정의원에게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배가시켰다. 이 모두 일반의 상식을 배반하는 일탈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들이다.
사건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기자, 특히 정치부 기자들이 마치 권력과 언론 유착의 대명사처럼, 또 타락한 언론인의 전형으로 난도질당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두 기자의 행태를 비난하고 이를 언론계 자정운동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네티즌들이나 술자리 대화의 성토는 극단을 치닫는다.
물론 대다수 정치부 기자, 밤낮없이 보도용‘양식거리’를 찾아 뛰어다니느라 가정을 제대로 지킬 새도 없는 다수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국민회의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정치부 기자라는 게 정말 부끄럽다”며 “이제 낯을 들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어느 한나라당 출입 기자 역시 “가족과 아이들 보기가 민망하다”며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모든 정치부 기자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분위기인데 대부분은 정말 그렇지 않다”고 억울해 했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언론인, 특히 정치부 기자들의 비언론적 일탈행위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태우 전대통령 시절 당시 민정당 출입기자들이 크게 보아 ‘맹아파’(이종찬계열)와 ‘허주파’ (김윤환계열)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은 기자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다.
‘기자 관리’를 가장 잘했던 것은 김영삼전대통령과 상도동 사람들이었다. 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 기 이전부터 언론계 내외에는 ‘YS 장학생’이란 말이 회자됐고, 9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연합통신의 한 간부는 김영삼 민자당총재에게 언론계 동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켰다. YS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 파문은 곧 잠잠해졌다.
김대중대통령의 동교동사람들도 야당시절 ‘자기사람’을 많이 따졌고 필요에 따라 관리도 했다. 당시 기자사회에서는 동교동 지하벙커(DJ의 서재)에 들어갔다 왔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친DJ’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작성한 ‘이회창 선거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가 유출돼 선거 쟁점으로 부각됐고, 국민신당 당원들이 중앙일보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세칭 ‘8룡(龍)’이 치열한 경쟁을 보인 97년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에도 일부 정치부 기자와 일부 후보 캠프의 ‘유착’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밀착’을 제의받고 거절한 기자들도 많았지만, 가장 세력이 컸던 어느 후보는 출입기자의 부인 생일까지 알아내 기자 부인을 함께 불러 식사할 정도로 집요함을 보였다. 이런 끈끈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부 기자가 정`-`관계에 진출한 경우도 상당수다.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한 ‘우호적 관계’를 가질 일이 많다. 물론 정치인은 우호적 보도를 위해, 기자들은 보다 정확하고 빠른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당직개편 등이 있을 때면 출입기자에게 자신의 인사를 부탁하는 정치인도 나온다. 한 중진 기자는 “과거 야당을 출입했을 때 모 재선의원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총재에게 정책위의장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 저신의 경험을 말한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자문하고, 실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기자도 없지 않다. 정치인이 자신과 가까운 기자를 꾸준히 관리한다는 얘기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언론대책문건사건에서 불거진 정형근의원`-`이도준차장, 이종찬부총재`-`문일현차장의 관계도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들간의 관계는 다른 대다수 정치부 기자들도 경악할 정도로 상상 외다.
한 정치부 출신 기자는 다소 역설적인 얘기를 했다. “정치권 인사가 술을 사는 등 뭔가 호의를 베풀려할 때 거절하면 이 정치인은 오히려 ‘이 친구는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하는구나’하고 생각하고, 다음부터 취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계심이 취재를 방해하는 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냥 응하면 더 가까워져서 좋은 정보를 얻는 일이 많아진다. 이런 딜레마가 내내 쫓아다닌다.”
지금도 정치부 기자들은 새벽에는 물론 밤늦게까지도 당직을 맡고 있는 중진이나 기타 실세정치인의 집을 수시로 찾아다닌다. 이를 통해 정국의 흐름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날 쓸 기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는 정확한 기사작성에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한 정치인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정치인과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고 이견을 보이는 정치사안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런 점에서 정치부 기자들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또 정치부 기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도 아니다. 언론사의 모든 기자들에게는 항상 ‘유혹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대책은 어떤 방향에서 모색돼야 할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기자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또 그러다가는 쉽게 잊어버리는 ‘냄비적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현실과 이상’에 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듯하다. 우선 그같은 예사롭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켜내는 것은 기자 자신이다. 유혹에 넘어갈 것인지, 장악을 당할 것인지, 일탈의 늪으로 빠져들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기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자는 권력이나 사회의 감시자이고 시민들의 여론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윤리 의식을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한다. 취재원과 관련해 늘 나오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경구를 다시 한번 새겨 봄 직하다. 시민들도 이번 사건이 언론윤리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끌어들이는 권력이나 정치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절대적 요구사항이다. 바야흐로 언론인의 직업 윤리와 기자의 가치가 새삼 강조되는 새 천년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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