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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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 윤석열 다르면서도 같다

대세론에 숨은 공통 코드… 알고 보면 共生관계

  • 김수민 시사평론가

    입력2021-07-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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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뉴스1]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뉴스1]

    대선 구도가 ‘이재명 대 윤석열’로 좁혀지고 있다. 두 사람에 만족하지 못할 국민도 제법 있겠지만, 남은 8개월 동안 판도를 뒤엎을 만한 주자가 보이지 않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선 일정을 둘러싼 샅바 싸움에서 승리하며 ‘9월 선출’을 지켜냈다. 경선 일정을 두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렸는데도 경쟁 주자들의 양해를 받아 원안을 유지했다. 이 지사가 당내 소수파일지언정 ‘이재명 불가론’이 당내에서 대세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비주류 후보가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현직 대통령과 주류는 길을 터준다”는 역대 대선 공식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최대치와 최소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윤석열 X파일’의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6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윤 전 총장에게 실제로 큰 약점이 있을 경우 대선을 중도 하차할 수도 있다지만, 거꾸로 윤 전 총장이 X파일 논란 하나와 사투를 벌이다 결승 테이프를 끊을 수도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향한 의혹과 혐의는 윤 전 총장보다 컸지만 승패가 바뀌지 않았다. X파일 논란은 텍스트보다 맥락, 즉 콘텍스트(context)가 더 선명하다. 대선주자를 겨냥한 X파일이 여럿 있을 수 있지만 정치권에 회오리를 몰고 온 것은 ‘윤석열 X파일’뿐이다. X파일 논란은 대선 구도가 ‘윤석열이냐 아니냐’로 짜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윤 전 총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대부분 ‘답은 이재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상 윤 전 총장을 꺾을 가능성이 보이는 여권 주자도 그가 유일하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지사를 꺾을 가능성이 있는 범야권 주자는 현 시점 윤 전 총장뿐이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관계는 역설적이다. 상대가 강할수록 대항마로서 자신의 가치도 높아진다.

    최근 2년간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도움을 주고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친문(친문재인)파가 적통으로 여기던 조국, 유시민 등의 인사를 잠재 대선주자 반열에서 내려오게 했다. 민주당 유력 주자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이재명 지사로 좁혀졌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져 새삼 사회적 충격을 안겼고, 문재인 정부의 총리 출신이자 여당 대표였던 이낙연 전 대표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못 하게 돼 국민의 갑갑함이 가중됐다. 이는 여권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에 항의하다 사퇴한 윤 전 총장과 오버랩돼 파장을 극대화했다. 여당 대표직에서 막 물러난 이낙연 전 대표가 정치적 피해를 더 입었음은 물론이다. 4·7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지만 이 지사의 여권 내 지위는 굳건해졌다. 윤 전 총장에 지지율을 더 크게 잠식당한 쪽도 이 전 대표였다.



    이 지사 역시 윤 전 총장이 부상할 토양을 만들었다. 이 지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러 시비에 휘말리며 정권과 차별적 이미지를 쌓았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보수 정당에 기대를 버린 보수 지지자가 늘어났고 일부는 이 지사에게 마음을 줬다. ‘여권 내 대결’로 차기 대선 국면이 전개되면서 보수 정당에 대한 관심도 식었다. 윤 전 총장은 이런 상황에서 야권 내 ‘단 한 장의 필승카드’로 떠올랐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서 둘의 지지율 차이는 들쑥날쑥하다. 윤 전 총장의 고정 지지층은 이 지사의 지지층만큼 확실히 잡히지 않는다. ‘최대치’로 비교하면 윤 전 총장이 우세인 것 같고, ‘최소치’로는 이 지사가 확보한 것이 더 커 보인다.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있거나 양측을 오가는 유권자가 적잖다는 방증이다. 이쯤이면 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두 사람의 확장성을 키운 것은 무엇인가. 선명한 진보 이미지를 가진 이 지사가 중도나 보수 유권자의 호감을 산 이유는 무엇일까. 윤 전 총장은 어떻게 해서 침체에 빠진 야권의 필승카드로 꼽히게 됐나.

    유권자, 말만 많은 586에 진력난 상태

    2015년 10월 22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2015년 10월 22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고전적 ‘대통령상’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고전적 대통령상에 따르면 대통령은 언변이 뛰어나더라도 절제할 줄 알며, 걸출한 투사더라도 큰 싸움만 벌인다. 이 지사는 셀 수 없이 쟁점을 던지면서 전방위적으로 싸워왔다. 윤 전 총장 역시 마찬가지다. 직책상 공개 발언을 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국회 국정감사 때 싸움꾼 면모를 내비쳤다.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라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전언도 세간에 오르내린다. 이 지사는 정확하게 칼날을 벼른 형상이지만 대통령이 되기엔 ‘좁아’ 보이고, 윤 전 총장은 통이 클 것 같은 이미지지만 후줄근하고 ‘빈 틈’이 많아 보인다.

    두 주자가 성장한 비결은 ‘일’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정치 지형을 살펴보면 세대별로 흥미로운 구석이 보인다. 이념이나 당파성에 충실한 유권자는 60대 이상, 30대 후반~40대에 포진해 있다. 50대나 20대부터 30대 초중반은 특정 당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이 약하다. 이들은 정치인이 표방하는 신념이나 방향, 슬로건보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에 중점을 둔다. 50대는 말만 많은 정치인에 진력난 상태다. 20대는 섣부르고 서투르게 추진한 정책이 자신들에게 해악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 지사는 기초단체장으로 출발해 여러 업적을 쌓았다. 기본소득론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도 많다지만 그는 실적을 보여왔다. ‘청년배당’을 실험적으로 시도하며 지역사회 중소상공인의 동맹자가 됐고 관급 공사비용 거품 빼기, 계곡 불법식당 철거, 결식아동 급식비 단가 인상 등 거의 모든 시민이 환영할 정책 아이템들도 발굴해냈다.

    윤 전 총장 역시 검찰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어왔다. 박근혜·문재인 정권을 차례로 수사했을 뿐 아니라, 2002년 대선 불법자금에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까지 맡으며 재벌의 철옹성을 수시로 뚫어냈다. 정권과 국가보안법에 기댄 전통적 공안통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이력이다.

    ‘일을 해낸다’는 이미지는 ‘말만 많다’는 이른바 586세대 정치인의 부정적 이미지와 대조를 이룬다. 윤 전 총장은 1960년생, 이 지사는 1964년생으로 모두 586정치인 또래다. 모의법정에서 전두환 씨에게 사형을 구형한 윤 전 총장이나, 5·18민주화운동을 당시 폭동인 줄 알았다며 두고두고 참회하는 이 지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동년배들에게 부채감을 느끼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대중은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에게 더는 윤리적 우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박태수(최민수 분)가 한 “그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라는 대사가 민심에 더 가까울 것이다.

    불통 · 혼밥 NO! 이웃에서 볼 법한 캐릭터

    이재명과 윤석열이 넘어서고 있는 것은 또래 정치인만이 아니다. 청와대에 있었던 대통령들을 보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박정희와 노무현이라는 두 전임자의 강렬한 후광에 힘입었다. 대중은 절제되고 과묵한 모습을 보여준 이들에게 전임자의 한과 묵은 숙제를 풀라며 기회를 줬지만 이들은 전임자의 긍정적 면모와 단절된 듯했고, 진영 대립은 더욱 요란해졌다. 반대층은 더 격렬히 반대하고, 지지층 일부는 떨어져나가는 패턴이 되풀이됐다. 무엇보다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대통령을 향한 대중의 스트레스가 강력하다. 박근혜 정권은 탄핵으로 붕괴하면서 지지층에게 상처만 줬고, 문재인 정권 역시 박근혜 정권과 닮은 모습을 보이며 지지층 일부에 환멸을 심어줬다.

    제단 위 인물로 다가왔던 두 전현직 대통령과 달리,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세속적이고 친밀하다. 두 전현직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혼밥이 잦았지만,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본인이 먼저 말을 걸지 않고는 못 배길 스타일이다. 직장이나 학교, 이웃에서 볼 법한 캐릭터다. 2012년 대선은 ‘후광에 힘입은 종교적 인물 간 대결’이었다. 이 지사는 7월 1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진표가 완성될 경우 이는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보통 사람들의 싸움’에 가까운 선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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