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리에는 수학적 질서가 담겨 있다. [GettyImages]
물론 너무 오래된 일화라 사실이 아닐 개연성도 크다. 망치 질량만으로 음정 차이를 정확하게 만드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치질 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피타고라스가 진동하는 끈처럼 현이 하나로 된 장치를 만들어 다시 실험해봤다면 아마 비슷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현의 진동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악기를 하나 준비해보자. 길이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날 텐데, 만약 현의 길이가 정수비를 이룬다면 듣기 좋은 아름다운 소리가 날 것이다. 이때 귀에 편안하게 들리는 소리는 협화음, 그렇지 않은 소음은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좋고 나쁜 소리는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명백한 수학적 질서다. 피타고라스는 편안한 협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진동하는 현의 길이를 2 대 1, 3 대 2, 4 대 3 비율로 맞췄다. 그리고 옥타브 다음으로 단순한 ‘완전5도’ 음정의 비율인 3 대 2를 계속 쌓아 올린 음높이의 상대적 관계를 ‘피타고라스 음률’이라고 부른다. 기타의 원리를 보면 확실해진다. 기타 줄의 양 끝을 기준으로 대략 2분의 1, 3분의 2, 4분의 3 지점에 주변보다 높게 돌출된 금속 부분이 있다. 이걸 프렛(fret)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기타 줄이 닿도록 눌러주면 그냥 칠 때와는 달리 일정한 비율로 높은 소리가 난다. 옥타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끔 통기타 한 대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현란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음악가를 볼 때면 그 담백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수학이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아름다움이다.
불협화음을 대하는 수학자의 자세
생활 소음에서 수학적 질서를 발견해낸 피타고라스. [GettyImages]
사실 피타고라스가 만든 음률은 예상과 달리 음정의 진동수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피아노 건반에서 음의 배열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음 간격으로 배열하면 12개 음이 나열된다. 각 음 사이 비율을 단순하게 만든 음률을 순정률이라고 하며, 이를 이론적으로 접근한 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음률이다. 하지만 이 음률에서는 각 음이 같은 간격으로 놓여 있지 않아, 여러 번 겹치면 불협화음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이를 보완하고자 나선 이가 바로 프랑스 수학자 마랭 메르센이다.
그는 한 옥타브를 12개의 똑같은 반음으로 나눠 진동수가 대충 무리수의 배가 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어느 조성에서든 모든 음이 같은 음정을 갖게 되고 변조도 자유롭다. 철저하게 수학적 구조와 패턴을 기반으로 순정률을 보완한 평균율은 이렇게 탄생했으며, 덕분에 수많은 명곡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물론 평균율도 단점은 있다. 사실상 완전한 협화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에, 순정률만큼 아름다운 조화가 나오지는 못한다. 순정률에서는 최고의 완전5도와 함께 아쉬운 완전5도가 공존하는데, 평균율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완전5도만 존재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수제 버거의 맛은 요리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끔 대박일 때가 있고, 프랜차이즈 버거 가게는 늘 안정적으로 일정한 맛이 나는 격이다.
보통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평균율 조율로 작곡을 하고, 가끔 소규모 연주에서만 순정률을 쓴다. 메르센은 음악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악기의 음정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인 현의 길이, 장력, 질량 사이의 상호관계를 나타낸 법칙도 만들었다. 이를 ‘메르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수학과 음악이 모두 아름다운 이유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천문학에 음악 원리를 적용했다. [위키피디아]
최근 방영 중인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에 나오는 무명 가수들의 실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타고난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철저한 고민과 계산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온몸을 전율케 하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고 그 기반에 수학이 있다는 점이다. 멋들어진 편곡은 기존 가수의 노래가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과정은 화음을 이용한 구조적 재구성의 묘미에서 오는데,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검산해나가는 것처럼 미세한 조정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편곡자에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 물론 그 결과물이 심사위원과 시청자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리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천문학에 음악 원리를 적용하려 했던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들이 하늘에 박혀 함께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각각 타원 궤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고 과정에서 그는 같은 시간 동안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이 지나가는 면적이 늘 일정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음악적 비율을 발견하고자 애썼고, 행성들의 회전 속도를 계산해 순정률로 환산하면 태양계 운동 전체에 대한 조화로운 음정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아쉽게도 기대한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이 그 행성의 타원 궤도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그의 세 번째 법칙에는 ‘조화(하모니)의 법칙’이라는 지극히 음악적인 이름까지 붙었다. 음악과 수학을 접목한 발상에서 나온 케플러의 이 업적은 향후 만유인력의 법칙으로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성과였다.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음정과 화음에 대한 고민을 통해 수 이론을 정립했다. 뉴턴은 색상의 스펙트럼을 정의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했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거나 작곡하면서 여가를 보냈고,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5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과학자들의 수학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현대음악의 거장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역시 음악에 수학적 연결고리가 있다고 믿고 독창적인 음악의 토대로 삼았다. 피아노 건반에는 피보나치 수열이 적용돼 있으며, 음악 역시 수학처럼 기호로 된 음표를 모르면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새로운 음악적 발견을 기존 음악과 접목하려는 시도 과정은 마치 참신한 법칙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수학자들의 여정과 비슷하다.
영국 수학자 제임스 조지프 실베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수학과 음악은 둘 다 자연계의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결국 둘 다 인류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이다.
궤도_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