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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너무도 아쉬웠던 그들의 수상소감

시상식 없이 치러진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너무도 아쉬웠던 그들의 수상소감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된 김오키 [포크라노스]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된 김오키 [포크라노스]

지난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개그우먼 장도연은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했다. 데뷔 후 첫 상. 수상소감이 상징적이었다. “무대에 올라오는 계단이 다섯 개인데 그 다섯 개를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 

분야를 막론하고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였지만 이 소감이야말로 시상식의 묘미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자가 봉투를 열어 이름을 호명하면 1미터 안팎 높이의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는 수상자의 얼굴과 말에서는 숨길 수 없는 희로애락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특히 그가 수상에 익숙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수상자 발표 후 시상식의 본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래의 1절 분량도 되지 않는 그 시간 안에 앨범 1장 분량의 드라마가 있다. 1년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치열하게 보낸 이들이 인생의 첫날처럼 벅찬 얼굴을 보여주는 현장인 것이다.


블랙리스트 파동 때도 버텼는데

한국대중음악상_2020 수상명단. [한국대중음악상 공식 홈페이지]

한국대중음악상_2020 수상명단. [한국대중음악상 공식 홈페이지]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한국대중음악상은 그런 드라마가 많은 시상식이었다.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에 비하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상자 이름은 대중에게 낯설기 일쑤였다. 소박한 시상식이었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있는 뮤지션들이었다. 상업성보다 음악성을 중심으로 평가한다는 모토를 꾸준히 지켜왔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일각에서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꼬리표를 붙었지만 대체로 꿋꿋했다. 

2004년 시작된 이 시상식은 17년간의 행사를 늘 쉽지 않게 치렀다. 거대 미디어나 기업이 주최하는 게 아니었기에 예산은 늘 한정적이었다.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던 이유다. 가장 큰 위기는 2009년 찾아왔다. 첫 행사부터 함께했던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사를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지원을 끊은 것이다. 처음 행사를 함께 주최한 문화연대를 비롯해, 선정위원 중 ‘좌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시상식 없이 수상자 발표만 할 뻔했던 찰나, 가수 김민기가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을 제공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이듬해에도 상황은 같아서 서울 강남의 복합문화공간 SJ쿤스트할레에서 조촐하게 치러야 했다. 



‘돈은 없어도 가오는 지켰던’ 한국대중음악상은, 그러나 올해 결국 시상식을 치르지 못했다. 코로나19의 여파였다. 2월 초순까지만 해도 2013년부터 매년 시상식이 열린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작게나마 열 계획이었으나 개최를 사흘 앞둔 2월 24일 끝내 취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그 전주에 코로나19 경보 상황이 ‘위험’으로 격상됐기 때문이다. 

올해 시상식이 취소돼 아쉬웠던 이유는 우선, 이번 한국대중음악상의 주인공이 대부분 그동안 상복이 없던 음악인이거나 처음으로 후보에 올라 바로 트로피를 받는 음악인이었기 때문이다. 수상할 때 표정과 수상소감이 무척 궁금했는데, 그 모습과 소감을 보고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기록에도 남을 수 없게 됐다.


잔나비, 천용성, 조휴일, 김오키

잔나비(왼쪽). 검정치마의 조휴일. [잔나비 공식 인스타그램, 비스포크]

잔나비(왼쪽). 검정치마의 조휴일. [잔나비 공식 인스타그램, 비스포크]

종합분야 가운데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에 모두 후보로 오르고 그중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으며 장르분야에서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로 최우수 모던록 노래의 주인공이 된 잔나비 같은 경우다. 지난해 ‘무려’ 방탄소년단과 국내 차트에서 경합을 벌였으며 스타덤에도 오른 잔나비는 전 멤버의 과거와 한 방송사의 오보로 힘겨운 시간을 겪은 끝에 영광의 순간을 맞아 더욱 아쉬웠다. ‘김일성이 죽던 해’라는 싱글로 2013년에 데뷔, 같은 제목의 데뷔 앨범으로 최우수 포크 음반과 노래 등 2관왕을 차지한 늦깎이 루키 천용성의 소감도 듣고 싶었다. 

늘 양질의 앨범을 발표했음에도 상복이 없었던 검정치마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4번째 앨범 ‘THIRSTY’는 발표와 동시에 페미니즘 이슈로 논란이 됐지만 밴드 리더이자 모든 노래를 만드는 조휴일은 일절 대응 없이 조용히 활동했다. 올해 최우수 모던록 음반을 수상했기에 그가 시상식장에서 어떤 말을 꺼낼지 자못 궁금했다. 

무엇보다 올해의 음악인으로 뽑힌 김오키의 표정이 어땠을지 보고 싶었다. 방탄소년단, 김현철, 림킴, 백예린, 잔나비 등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후보 사이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가장 떨어지는 김오키가 주인공이 됐다. 오랫동안 선정위원으로 참여하는 내 입장에서도 이 결과는 가장 파격적이었다(최종 수상자 투표에서 그에게 압도적으로 많은 표가 몰렸다). 

선정위원 강일권의 평 일부를 옮겨본다. “정말 거침없고 창조적이며, 끝내주게 왕성한 행보다. 연주자이자 프로듀서 김오키는 2019년에도 본인의 작품과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바쁘게 넘나들었다. 자연스레 커리어의 무게감도 더해졌다. 김오키는 완성도를 담보한 다작의 아이콘이다. 무엇보다 음악사이트에서 분류, 그러니까 오로지 재즈만으로 그의 음악을 정의해선 곤란하다. (중략) 정말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색소폰을 분다. 김오키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리스펙트(respect)를 받아야 하며, 더 많이 조명돼야 한다.”


백예린과 림킴

백예린. [JYP엔터테인먼트]

백예린. [JYP엔터테인먼트]

올해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이는 백예린과 림킴이었다. 백예린은 올해의 음반, 최우수 팝 음반과 노래로 3관왕이 됐다. 그가 데뷔 때부터 몸담았던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기 전, 이별선물처럼 내놨던 ‘Our love is great’는 상업성과 음악성의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작품이었다. 지난해 장필순의 ‘소길화’에 이어 여성 음악인이 다시 한 번 한국대중음악상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선정위원 권석정은 “바야흐로 ‘백예린 시대’의 포문을 여는 음반”이라고 했다. 이 앨범에 이어 연말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Every letter I sent you’까지 함께 생각해본다면 1997년생인 이 음악인의 재능이 만개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올해의 음반 수상자를 놓고 최후까지 경합을 벌인 이는 림킴이다. 그도 1994년생으로 아직 한창 20대를 보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한국 대중음악 창작과 퍼포먼스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해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아닐까. 

고백하건대 몇 년간 즐겨 듣고 기억에 흔적을 남긴 한국음악은 대게 여성이 만들고 부른 게 많았다. 성별로 음악을 판단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도한 흐름은 있다. 이는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믿는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은 그 흐름의 헌 좌표를 보여주는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였다.






주간동아 2020.03.06 1229호 (p62~64)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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