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4

2023.01.27

공기처럼 존재하는 ‘앰비언트 컴퓨팅’ 시대 눈앞

가정용 방범 시스템부터 자동결제 무인 매장까지… 유비쿼터스 기술 본격화

  • 김지현 테크라이터

    입력2023-02-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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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 소장을 지낸 컴퓨터공학자 마크 와이저 박사는 1991년 발표한 논문 ‘21세기를 위한 컴퓨터(The computer for 21st century)’에서 컴퓨터 기술의 미래를 전망하며 ‘유비쿼터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동시에’ ‘어디서나’라는 뜻의 라틴어 ‘ubique’를 차용해 “어디에나 늘 존재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는 미래 컴퓨터의 청사진을 그린 것이다.

    미국 뉴욕 ‘아마존 고’ 매장에서 한 고객이 장바구니를 든 채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이 접목된 자동결제 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뉴시스]

    미국 뉴욕 ‘아마존 고’ 매장에서 한 고객이 장바구니를 든 채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이 접목된 자동결제 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뉴시스]

    주변 사물에 ‘스며드는’ 컴퓨터

    와이저 박사가 꿈꾼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은 2023년 현실이 됐다. 오늘날 컴퓨터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장소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사무실과 집 등 주변에서 데스크톱,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컴퓨터의 존재는 더는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미 완료된 줄 알았던 유비쿼터스화(化)가 어떤 의미에선 다시금 시작됐다. 여러 컴퓨팅 기기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주변 사물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기존 컴퓨터처럼 디스플레이와 입력장치, 중앙처리장치 등 별도 시스템 없이도 스피커, 냉장고, 세탁기, 전등과 폐쇄회로(CC)TV, 냉난방기, 도어록 등 다양한 장치에 컴퓨팅 기능이 탑재되고 있다. 미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컴퓨터가 사용자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앰비언트 컴퓨팅 개념은 2017년 5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월트 모스버그가 은퇴 전 자신의 마지막 칼럼에서 제시해 주목받았다. “인공지능(AI)과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홈,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정보기술(IT)의 종착지는 사람이 개입할 필요 없는 자동화 단계”라는 게 당시 모스버그의 ‘사라지는 컴퓨팅(The Disappearing Computing)’ 제하 칼럼의 요지다. 한마디로 컴퓨터가 다양한 사물에 들어가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는 세상이 온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기술이 정착된 세상에선 컴퓨터가 굳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사용자가 개별 기기와 일일이 입력-출력 형태로 상호작용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실행되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미 빅테크는 앰비언트 컴퓨팅을 주목하고 있다. 2014년 11월 아마존은 인공지능 비서(AI assistant) ‘알렉사’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 ‘에코’를 출시해 앰비언트 컴퓨팅 상용화의 단초를 열었다. 물론 해당 스마트 스피커는 데이터를 송출하는 화면만 없을 뿐, 실제 작동 방식은 음성으로 스피커를 작동시키고 컴퓨팅 결과를 사용자가 스피커로 확인하는 형태다. 그런 점에서 완벽한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은 아니다. 그럼에도 초기 단계의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이 스피커에 접목된 점은 흥미롭다. 스피커는 기존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달리 사용자가 있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사람의 음성이 도달 가능한 곳 어디서든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스피커 형태의 AI 비서는 ‘공기처럼 상존하는 컴퓨터’를 지향하는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의 시작점으로서 적합하다.

    음성 명령 기반의 AI 비서에서 출발한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은 점차 다양한 일상 속 사물에 스며들고 있다. 현 기술 수준에선 AI 비서와 연동돼 사용자 편의를 높이거나, 명령 없이 제한적으로나마 자동 작동하는 정도다. 가령 거실 문이 열리면 이를 감지한 센서가 자동으로 거실 전등을 켜거나, 실내 온도 측정 기기가 냉난방기와 연동돼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식이다. 최근 AI가 접목된 스마트홈 기술이 단순 센서 작동을 넘어서 더 스마트해진 점도 주목된다. CCTV에 안면 인식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이가 나타나면 자동으로 녹화를 시작하고 집 안 TV를 켜 볼륨을 높이는 등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서비스도 나왔다. 굳이 사람이 작동시키지 않아도 주변 사물이 자동 운영되는 스마트홈 기술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 2022’의 홈 커넥티비티 얼라이언스(HCA) 시연 모습. 독일 그룬딕,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의 가전제품을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애플리케이션에 연동해 작동시킬 수 있다. [동아DB]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 2022’의 홈 커넥티비티 얼라이언스(HCA) 시연 모습. 독일 그룬딕,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의 가전제품을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애플리케이션에 연동해 작동시킬 수 있다. [동아DB]

    IoT 표준 프로토콜로 앰비언트 컴퓨팅 현실화

    앰비언트 컴퓨팅은 가정을 넘어 다양한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마존이 론칭한 무인 매장 ‘아마존 고’는 최신 앰비언트 컴퓨팅 기술이 집약된 곳이다. 아마존 고 매장에 들어선 고객은 미리 다운로드한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자동 체크인한다. 각 제품 바코드와 매장 내 카메라 및 센서를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진열대에서 카트로 옮기면 결제할 금액이 일차 정산된다. 이후 매장을 나서면 최종 결제 금액이 앱으로 결제된다. 계산대에서 일일이 물건을 꺼내 계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매장 관리가 편리하다. AI가 진열대의 상품 수량과 재고를 실시간 체크해 물건이 부족하면 관리자에게 통보한다. 심지어 고객 동선을 파악해 소비자가 어떤 상품에 관심을 갖는지, 어떤 제품을 고를 때 망설이는지 자동 분석해준다.

    앰비언트 컴퓨팅의 현실화는 글로벌표준연합(CSA)이 개발한 매터(MATTER) 같은 사물인터넷(IoT) 표준 프로토콜 등장에 힘입었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IT 제품 간 연동 및 호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한 데이터 수집이 용이해진 점도 호재다. 여기에 더해 AI 기술 고도화 덕분에 각종 데이터 분석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컴퓨터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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