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8

2007.08.14

인질 해법 두 가지 선택

  •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입력2007-08-08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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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 해법 두 가지 선택
    탈레반이라는 잔인한 집단이 우리를 좌절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지만 여기서도 선택의 여지는 있다. 아니, 선택해야만 한다. 어떤 식으로든 납치범의 요구를 들어줘 인질의 목숨을 구하는 일과 우리 국민 전체의 장기적 안전을 보장하는 일 두 가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테러리스트들이 대개는 아주 영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번 탈레반 납치범들이 우리와 세계 언론을 다루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영악하게 계산하는 집단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는 곧 그들이 채찍과 당근에도 정확히 반응할 것임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 인질을 살리려면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된다. 조직적으로 일어난 납치일수록 인질을 둘러싼 거래는 신의가 잘 지켜진다. 즉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납치범이 풀려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 이번 거래에서 신뢰를 줘야만 다음 인질 ‘거래’에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조건을 들어줬는데도 인질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다음은 거래보다 보복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납치범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인질을 살리는 길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테러리스트에게 물렁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세계 어디서나 대한민국 국민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기 쉽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은 물론 이라크에서도 테러리스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난 후 납치가 증가했다. 이렇듯 과거에 많이 당했기에 이제 미국 정부는 테러리스트와의 거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전문가들에 따르면 납치범들과는 대화조차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바로 그 대화도 납치범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인정받으려 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한국인 인질 사태만 봐도 우리 정부와 밀고 당기는 과정을 통해 탈레반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는가.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상당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리고 한국인 납치를 통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한 한국인 납치는 계속될 것이다.



    납치범 요구 들어줘도, 거절해도 피해 막심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앞으로 테러리스트에게서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면 납치가 일어날 때마다 가공할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납치하면 어떤 대가를 받게 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면 어떤 테러집단이든 한국인 납치는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인질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국민의 장기적 안전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눈앞의 인질을 택할 것인가. 민주국가일수록 눈앞의 인질을 우선으로 한다. 인질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가는 생명을 경시하는 정부라는 전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민주지도자도 그런 비난을 뚫고 정치생명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테러리스트들도 민주정치의 이런 약점을 잘 알기에 공포에 질린 인질들의 모습을 사진과 비디오로 찍어 공개하고, 절박한 음성을 녹음해 방송에 배포한다. 유권자인 대중으로 하여금 인질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책략이다. 탈레반도 인질 임현주 씨가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를 언론에 내보냈다. 그런 인질들의 생명을 담보로 탈레반에 대량 보복할 생각은 누구도 갖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납치범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부드러울수록 우리 국민은 납치범의 사냥감이 돼갈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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