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2002.06.06

“한국, 이러다 큰일낼라”

잉글랜드·프랑스 혼쭐내자 ‘8강 가능성’도 제기 … 체력·정신력 최상의 업그레이드

  • <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입력2004-10-08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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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이러다 큰일낼라”
    5월16일 스코틀랜드전 4대 1 승리, 5월21일 잉글랜드전 1대 1 무승부, 5월26일 프랑스전 2대 3 패배…. 스코어만 놓고 보면 히딩크 사단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놀라운 실력 향상을 보여주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무늬만 유럽 축구일 뿐 투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잉글랜드는 전반전에만 축구 종주국의 위용을 선보였을 뿐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최정예 멤버를 출장시키며 실전에 대비했다. 프랑스가 어떤 팀인가. 1년 전 한국에 치욕의 0대 5 패배를 안겨준 세계 랭킹 1위 팀이 아니던가.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 득점왕 앙리와 이탈리아 세리에 득점왕 트레제게가 최전방을 맡고,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지단이 플레이메이커로 뛰며, 환상의 포백으로 불리는 튀랑-르뵈프-드사이-리자라쥐가 수비라인을 형성하는 다국적 ‘드림팀’이 바로 프랑스 대표팀이다.

    프랑스전만큼 한다면 16강쯤이야 …

    한국이 그런 프랑스 대표팀을 만나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펼쳤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홍명보가 부상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수비를 지휘했더라면, 일본인 주심 오카다 마사요시가 후반 막판 프랑스 수비수의 핸들링 파울에 휘슬을 불었다면, 한국은 대어를 낚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 프랑스전에서 얻은 성과는 단순한 승패 이상의 그 무엇이다.



    한국이 프랑스와 맞붙기 3시간 전, 한국의 첫 상대인 폴란드는 성남 일화와 평가전을 벌였다. 2대 1 폴란드의 승리. 하지만 폴란드는 체력적으로 성남을 압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측면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이 무참하게 깨뜨렸던 폴란드의 측면을 집중 공략한다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한국이 D그룹에서 맞붙을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은 분명 잉글랜드나 프랑스보다 강하지 않다. 한국이 D그룹 2위로 올라갈 경우 16강에서 대결할 것으로 보이는 이탈리아도 프랑스 이상의 전력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 매스컴에서는 ‘8강도 가능하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경기 결과를 냉정히 분석해 보자. 먼저 잉글랜드는 전력의 30% 이상으로 평가되는 베컴이 빠졌다. 한국이 리드한 후반전에는 2진급 선수를 8명이나 기용했다. 그들은 시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영국에 비해 훨씬 건조한 서귀포 잔디에 적응하지도 못했다.

    다음으로 프랑스 대표팀은 플레이메이커 지단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프랑스가 벨기에전에서 1대 2로 패한 것도 지단의 결장 때문이다. 그런 지단이 한국전에서 풀타임을 뛰지 못한 채 허벅지 부상으로 교체됐다. 르메르 감독이 구상한 최종 리허설이 시작부터 삐끗한 것이다. 미드필드의 축을 이루는 비에이라와 프티도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탓인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다.

    그럼에도 두 경기를 통해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국 축구는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파워 프로그램으로 체력적으로 강인한 선수들로 만들어냈으며, 정신력 트레이닝으로 용맹성까지 길러냈다. 1년 전 한국은 후반 25분만 넘으면 힘없이 무너졌지만, 지금은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상대를 몰아붙인다.

    히딩크 사단의 변신은 데이터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2001년 한 해 동안 유럽팀과 6번 싸워 1승1무4패(득점 5, 실점 16)에 그친 반면, 2002년에는 다섯 차례의 A매치에서 2승2무1패(득점 9, 실점 5)를 기록했다. 2001년에는 노르웨이나 덴마크 2군에도 쩔쩔맸지만, 2002년에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1진을 줄곧 압박했다.

    다시 1년 전을 돌이켜보자. 한국은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서 전반 5분 만에 말레 선수에게 그림 같은 시저스킥 골을 허용한 뒤 재기불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관중들이 한국 선수들을 긴장시키는 역효과를 냈다. 1년 뒤 한국은 똑같이 첫 골을 내줬다. 앙리의 센터링을 트레제게가 절묘한 발리킥으로 받아 넣은 장면도 1년 전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했다. 하지만 히딩크 사단은 실점의 기억을 빨리 잊고 반격을 펼쳐 동점과 역전을 연출했다. 이번엔 ‘붉은 악마’의 격정적 응원이 프랑스의 발목을 붙들었다.

    한국이 만일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을 상대로 프랑스전처럼 싸울 수 있다면 16강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상대적이고, 그들은 프랑스보다 더 격렬하게 나올 것이다. 결국 16강은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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