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2016.05.11

특집 | 가습기 살균제의 거짓말

단독 입수 | 美 환경청과 제조사의 살균제(CMIT/MIT) 독성 경고 문건

‘흡기하면 치명적, 절대 마시지 말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5-10 09: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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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우 1993년부터 CMIT/MIT 독성 경고…SK케미칼, 애경, 이마트 “국내 기준 이상 없다” “몰랐다”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등이 제조 또는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CMIT/MIT)의 치명적 호흡독성 및 여타 인체독성에 대해 미국 정부기관과 제조회사가 1993년부터 수차례 경고를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1993년 내부 문건에는 CMIT/MIT의 호흡독성을 경고하는 주의 문구가 적시돼 있다. 당시 미국 굴지의 화학회사였던 롬앤드하스(Rohm and Haas)가 CMIT/MIT로 생산한 공업용 살균제 카톤(Kathon)에 대한 호흡독성 실험을 한 후 그 결과를 EPA에 보고한 문건이다. 이후로도 미국 화학회사들은 CMIT/MIT 성분의 화학제품과 관련해 치명적 호흡독성을 포함한 인체 유해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끊임없이 제출해왔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CMIT/MIT 제품에 호흡독성 문제가 없거나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문건으로 밝혀진 CMIT/MIT의 호흡독성

    1993년 EPA 문건은 롬앤드하스가 직접 진행한 카톤 제품의 호흡독성 실험에 대한 확인이 주요 내용이다. 문건에 따르면 1992년 롬앤드하스는 쥐 실험을 통해 CMIT/MIT의 급성 호흡독성에 대해 알아봤다. 실험 후 그 결과를 라벨에 적시함으로써 소비자 피해를 예방한다는 목적이었다. 실험을 마친 롬앤드하스는 그 결과를 EPA에 보고했고, EPA는 이를 바탕으로 카톤 제품의 라벨에 소비자 경고 문구를 붙이도록 지시했다. 롬앤드하스가 라벨에 붙이기로 동의한 경고문구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CMIT/MIT가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되면 절대 안 되는 이유가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흡기하면 치명적일 수 있으니 증기를 절대 들이마시지 마시오(May be fatal if inhaled. Do Not Breathe Vapors).’

    호흡독성 실험의 주체인 롬앤드하스는 문제의 CMIT/MIT 화합물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공업용 살균제와 보존제의 원료를 생산해왔다. 카톤이 그 대표적 제품. 롬앤드하스는 2009년 세계 최대 화학회사인 미국 다우케미칼(DOW Chemical·다우)에 인수됐고 카톤은 이 회사의 대표 제품으로 아직도 팔리고 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다우의 자사 제품군에 대한 안전평가서 및 취급 주의사항 또한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을 언급하고 있다.   



    2006년 카톤을 원료로 만든 퍼스널케어(샴푸, 린스, 보디워시 같은 생활용품) 제품들의 ‘취급주의 사항’ 문건에도 CMIT/MIT의 흡입독성에 대해 언급돼 있었다. CMIT/MIT 화합물을 만드는 공정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고 문구인데 이 내용 또한 충격적이다.

    ‘카톤 증기의 흡입을 피하라. 카톤을 취급할 때는 적합한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만약 흡기한다면 피해자를 즉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겨라. 만약 숨을 쉬지 않는다면 인공호흡을 실시하라. 만약 호흡이 어렵다면 산소를 공급하고 즉시 내과의사를 불러라.’

    이런 치명적 호흡독성으로 CMIT/MIT의 최초 개발사인 롬앤드하스는 물론, 이를 인수한 다우조차 CMIT/MIT 화합물을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6월 다우의 CMIT/MIT 항균제품 안전평가서에는 CMIT/MIT 화합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접착제, 페인트, 코팅제, 잉크, 청소제품, 건축자재, 유화종합도료, 분석시약 등)을 특정했는데 공기 중에서 흡기될 수 있는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롬앤드하스의 카톤은 호흡기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외에도 인체 유해성에 대한 경고를 계속해왔다. 2006년 카톤을 사용한 제품 생산과 취급주의 사항이 담긴 문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눈과 피부, 옷에 닿지 않도록 하라. 눈에 손상을 유발하며, 피부 화상을 입는다. 피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으며, 피부에 흡수되거나 경구 섭취 시 위험할 수 있다.’

    2015년 6월 다우가 만든 CMIT/MIT 제품 안전평가서의 ‘건강 관련 정보’란에는 CMIT/MIT의 호흡기 외 독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돼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눈과 접촉 : 심각한 눈 손상을 입을 수 있다. 화학적 화상으로 인한 각막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영구적 시각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피부 접촉 : 장기적 접촉은 피부 화상을 유발해 부어오름, 종창, 조직 손상 등의 고통을 동반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장기적이거나 넓은 부위의 접촉은 알레르기성 피부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섭취 : 다량 섭취 시 극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국내 기업은 계속 발뺌

    미국 정부기관과 개발 회사조차 인정한 CMIT/MIT의 흡입독성과 여타 인체독성에 대해 이를 원료로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 판매한 국내 기업들은 “국내 기준으로는 이상 없다”거나 “몰랐다”는 반응이다. CMIT/MIT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곳은 바로 대한석유공사(현 SK케미칼)였다. 확인 취재 결과 SK케미칼은 1994년부터 CMIT/MIT를 롬앤드하스로부터 수입 가공해 가습기 살균제(가습기메이트)를 직접 판매하거나 계열사를 통해 판매했다. 2002년 SK케미칼은 기존 가습기메이트 제품의 판권을 애경으로 넘겼다. 이마트는 애경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2005년부터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란 상표로 판매를 시작했다. 결국 3개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는 모두 SK케미칼에서 만든 제품인 것이다.  

    미국 EPA와 개발사가 밝힌 CMIT/MIT의 흡입독성에 대해 SK케미칼 관계자는 “국내 기준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밝혀졌다. 미국 환경부의 ‘1998년 농약 자료’와 유럽연합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의 ‘2009년 자료’에 따르면 미세한 독성이 있지만 이 역시 인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며 가습기 살균제로 가공할 때 CMIT/MIT가 희석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영향이 매우 적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다우의 2006년 CMIT/MIT 취급 주의사항 문건에 대해선 “화학공장에서는 원래 증기를 마시면 안 된다. 밀가루 공장에서도 마스크는 착용한다”고 답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주간동아’가 입수한 EPA 문건과 CMIT/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연관성과 관련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모든 물질에는 독성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실제 노출되는 CMIT/MIT의 농도다. 카톤은 다우의 브랜드 명으로 산업용 제품의 농도는 14%, 퍼스널케어 제품의 농도는 1.5%이다. EPA 문건에서 다우사가 밝힌 내용은 산업용 제품을 취급할 때의 주의사항일 뿐이다.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 농도는 0.015%로 카톤의 퍼스널케어용 제품과 대비해도 100분 1 수준이다. 가습기 물통 속에 들어가면 농도가 0.000075%로 낮아진다. EPA와 유럽소비자안전위원회 기준에는 CMIT/MIT 제품의 흡입독성과 관련 ‘0.34㎍(마이크로그램)/ℓ 이하로 사용하면 인체에 영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가습기메이트와 산업용제품 카톤을 같이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애경과 이마트 측은 ‘주간동아’가 입수한 문건에 나타난 CMIT/MIT 독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애경 관계자는 “애경 ‘가습기메이트’는 SK케미칼에서 완제품을 구매해 판매한 것일 뿐 원료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처음 판매 계약을 맺을 당시 애경은 SK케미칼보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원료를 물어보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는 PB(자체 브랜드)상품으로 제조사는 ‘애경’이다. PB상품이라 공급자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공급자 측에서는 제품 독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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