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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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역사에 한 획 그은 ‘피겨01’

프로그래밍 통하지 않고 사람과 직접 대화하며 실시간 명령 수행

  • 김지현 테크라이터

    입력2024-04-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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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휴머노이드 개발 스타트업인 피겨AI가 3월 13일(현지 시간) 자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인공지능(AI) 로봇 ‘피겨01’. [피겨AI 제공]

    미국 휴머노이드 개발 스타트업인 피겨AI가 3월 13일(현지 시간) 자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인공지능(AI) 로봇 ‘피겨01’. [피겨AI 제공]

    2015년 유튜브에 로봇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마치 4족 보행 동물처럼 다리 4개가 달린 로봇과 사람을 연상케 하는 2족 로봇이 산속을 자연스레 걸어 다니는 영상이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라는 기업이 개발한 로봇 ‘스팟’과 ‘아틀라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험한 산속을 활보하는 로봇들의 모습에 당시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는 물론, 대중도 많이 놀랐다. 2013년 구글에 인수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17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을 거쳐 2021년 현대자동차그룹 품에 안겼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공개한 로봇은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을 넘어선 수준은 아니었다. 동물과 사람 모습을 닮은 외형에 동작도 자연스러운 편이라 화제를 불러 모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로봇의 동작은 엔지니어가 프로그래밍을 통해 일일이 수동 조종한 결과였다. 말하자면 ‘답정너’ 로봇인 셈이다. 작동 방식의 번거로움은 차치하더라도 상업적 활용 가능성도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은 신기하지만 당장 쓸모는 없었던 것이다.

    휴머노이드 개발 스타트업 피겨AI, 오픈AI와 협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 ‘아틀라스’. [보스턴다이내믹스 제공]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 ‘아틀라스’. [보스턴다이내믹스 제공]

    미래 로봇 기술의 핵심은 인간 사고방식을 모방할 수 있는 정교한 ‘두뇌’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한 인공지능(AI) 전문가가 챗GPT를 탑재한 스팟과 대화하는 영상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초거대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로봇에 접목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수준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휴머노이드 개발 스타트업인 피겨AI는 3월 13일(현지 시간) 자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로봇 ‘피겨01’ 시연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피겨01은 피겨AI가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협업해 만든 로봇이다. 영상에서 사람이 “테이블 위에 무엇이 보이냐”고 묻자 피겨01은 “사과와 컵과 접시가 담긴 식기건조대, 그리고 테이블 앞에 서 있는 당신이 보인다”고 대답한다. “먹을거리를 달라”는 말에 로봇은 사과를 집어 건네고, “왜 사과를 주었는지” 묻자 “테이블에 있는 유일한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식기들을 어디에 옮겨야 할 것 같냐”는 질문에는 “식기건조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 정도 간단한 문답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겨01은 로봇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작동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직접 대화하며 받은 명령을 실시간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겨01은 AI를 탑재한 덕에 주변 상황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로봇 스스로가 수행한 작업을 기억하고 그 논리적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다. 게다가 말하는 동시에 행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를 로봇에 본격 적용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 9월 ‘옵티머스’라는 휴머노이드를 공개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동작이 더 빠르고 자연스러워진 후속 모델 ‘옵티머스2’를 내놨다. 테슬라는 이 로봇에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AI 스타트업 xAI의 범용인공지능(AGI)을 탑재할 계획이다.



    진정한 휴머노이드 시대 눈앞

    인터넷 가상공간에 머물던 AI가 로봇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갖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인간의 사지(四肢)를 뛰어넘는 하드웨어를 지닌 로봇에 사람 두뇌보다 우수한 AI가 탑재됨으로써 진정한 휴머노이드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10여 년 전 세계는 산길을 자연스레 걷는 로봇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말 그대로 로봇의 걸음마 단계였다. 임베디드 AI(머신러닝과 딥러닝을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에 적용하는 것)를 품은 로봇 기술은 바야흐로 성년을 예고하고 있다. 사람이 프로그래밍으로 지식을 떠먹여줘야 했던 허수아비가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하는 진짜 로봇이 되는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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