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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착오적 통제’ 중국史 또 다른 비극 전주곡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富와 强 딜레마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시진핑 ‘시대착오적 통제’ 중국史 또 다른 비극 전주곡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뉴시스]

사회주의 30년, 개혁·개방 40년을 맞은 중국 정부의 고민은 정치 통합성의 약화다. 중국 역대 권력은 부(富·근대화와 경제성장)와 강(强·통일과 정치통합)을 성취해 정당성을 확보했다. 공산당은 두 축의 균형이 무너지면 통치 정당성도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잘 안다. 부와 강의 패러다임 교체는 중국사에서 반복된 하나의 규칙과 같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나, 양자가 모순적 관계일 때가 훨씬 잦았다. “먼저 부자가 되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 부는 괄목상대했지만 그 부작용이 국가 통합을 해칠 정도다. 시진핑(習近平)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의 당면 과제는 지나친 부의 편재로 인한 중국 대일통(大一統)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부와 강, 경제와 정치가 조화를 이뤄 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문혁 후 “먼저 부자 되라” 슬로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세운 슬로건 ‘공동부유(共同富裕)’에
따른 규제로 헝다그룹 등 중국 기업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헝다그룹 사옥. [GETTYIMAGES]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세운 슬로건 ‘공동부유(共同富裕)’에 따른 규제로 헝다그룹 등 중국 기업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헝다그룹 사옥. [GETTYIMAGES]

중국 역사는 극에서 또 다른 극으로 반복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사에 국한해도 비극이 희극을 낳고, 그 희극이 다시 비극을 낳는 식이었다. 예컨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30년은 문화대혁명(문혁)이라는 폭력적 혁명 때문에 비극으로 끝났다. 이 비극은 덩샤오핑 정권 하에서 시장경제 도입이라는 극단적 처방으로 경제발전의 희극을 초래했다. 덩샤오핑 시기 당국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인민에게 “먼저 부자가 되라”고 부추겼다. 권위주의 정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돈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무방했다. 정치를 가두는 대신 돈은 풀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극심한 격차사회다. 태자당 출신인 시진핑은 빈부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집권했다. 그는 집권 5년 만인 2017년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 임기 10년제의 관행을 철폐했다. 최근 공동부유(共同富裕)라는 슬로건 하에 벌어지는 시대착오적 사상교육과 갖가지 통제가 희극 뒤 또 다른 비극을 예견한다.

1949년 이후 중국 역사에서 부와 강의 반복은 문혁으로 인해 좀 더 극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개혁·개방의 희극은 문혁이라는 비극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문혁의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서 중국 지도부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방기할 정도로 극단적 개혁·개방을 실시했다. 문혁 같은 극심한 혼란과 살육이 없었다면 개혁도 개방도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야말로 문혁의 역설이다. 문혁을 직접 겪은 중국의 혁명 원로, 그 모습을 발치에서 보며 자란 2세대 정치가들에게 ‘문혁 트라우마’는 한국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 트라우마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배경이기도 했다.

덩샤오핑은 문혁의 ‘교훈’에 따라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 때 무자비한 진압을 감행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게오르기 데를루기안 미국 뉴욕대 아부다비캠퍼스 교수의 지적처럼 당시 정치적 결정에 관여한 원로 당 간부 모두 일본, 국민당에 대한 무장투쟁에 가담했던 노병(老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마오쩌둥처럼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혁 전문가인 로더릭 맥파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이란 국가는 전통적으로 ‘철의 삼각’(관료, 유교사상, 군대)으로 작동했다. 엄격한 삼각 시스템 속에서 유연한 관료제도가 창출됐다는 것이다. 1905년 과거제도 폐지로 삼각의 두 변인 관료제와 유교사상이 무너졌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통치 시스템은 옛 황제제도보다 더 강화됐다. 마오쩌둥의 언어는 근대적 통신 수단을 통해 전국에 전해져 어느 황제의 언어보다 강력했다. 공산당 간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의 사상을 학습해 통치 자격을 얻었다. 인민통치의 지침이 되는 이데올로기는 유교적 법제도보다 훨씬 촘촘해졌다. 여기에 홍군을 토대로 인민해방군이 조직되면서 새로운 철의 삼각(당 관료, 마르크스주의, 인민해방군)이 완성됐다.

“모든 약에는 독이 3할”

마오쩌둥 국가주석 시대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진은 문화대혁명 당시 군중 집회 모습. [동아DB]

마오쩌둥 국가주석 시대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진은 문화대혁명 당시 군중 집회 모습. [동아DB]

문혁은 철의 삼각 중 당 관료를 파괴했다. 문혁이 끝났을 때 덩샤오핑 등 혁명 원로들은 중국 근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구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해결책으로 꺼내 든 것이 개혁·개방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철의 삼각은 오히려 더 약화됐다. 마오쩌둥이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면서 관료주의를 파괴한 탓에 공산당은 옛 권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덩샤오핑은 ‘평등주의적 혁명국가’라는 이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근대화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는 방기됐다. 국가 통치 기반인 철의 삼각의 두 축을 이루는 당 관료와 이데올로기 모두 부실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중국의 심각한 부정부패도 문혁의 간접적 결과물이다.



1950~1960년대 중국공산당원이 따른 슬로건은 “인민에게 봉사하자”였다.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자처한 상당수 당 간부가 문혁 와중에 인민에게 구타당하고 살해됐다. 문혁 후 경제발전 시대 슬로건은 “부자가 되는 것이 멋지다”였다. 달리 말하면 “부패해도 부자가 되면 문제없다”는 것. 최근 시진핑 2기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고 있다. 문혁이 일어나고 50년 넘게 흐른 지금도 중국은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거둔 성공은 심각한 빈부격차라는 독을 품은 성공이었다. 중국에는 “모든 약에는 독이 3할”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제 해독을 위한 새로운 약 처방이 없으면 경제성장으로 성취한 건강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부의 편중을 교정하지 않는 한, 중국은 한 단계 높은 강(强)을 성취하기 어렵다. 부강의 상호 보완이 이뤄져야 사회가 안정된다. 원칙적으로 사회에 축적된 부를 국가가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애초에 사회주의가 바로 그 분배에 주목한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도덕은 문혁의 충격 이후 더는 중국 사회에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세계로 시선을 돌려도 오늘날 중국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 같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지도자의 의지와 품성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역사가 쓰이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게 보면 다른 강대국과 관계 등 지정학적 요인, 심지어 운(運)도 무시 못 할 변수다. 그런 점에서 마오쩌둥에서부터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 중국의 지정학적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지정학적 측면에서 소련은 미국과 정면 대결해야 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데를루기안 교수의 지적처럼, 미·소 냉전체제 속 소련은 막대한 비용 부담을 떠안았다. 미국과 대립이 극에 달한 1980년대 소련은 동맹국을 통제할 만한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양국 대결의 부수효과로 중국은 지정학적 이득을 얻었다. 미국 소비시장에 의존하는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통해 국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슨의 역사적 화해, 그리고 덩샤오핑의 과감한 개혁 결단의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 중국 3자의 역학관계가 있었다.

뒤바뀐 지정학 상황판

반면 21세기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지정학의 상황판은 완전히 바뀌었다. G2가 된 중국은 미국의 견제 타깃이 됐다. 19세기 일본, 20세기 중국이 국제 정세의 혜택을 입고 급격히 발전했다. 현재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모든 초점이 중국 견제에 맞춰져 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중국을 둘러싼 새로운 도전과 위기는 공산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정학과 역사적 유산, 혹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 통치의 근간인 철의 삼각이 약화되고, 부의 분배가 실종된 ‘사회주의 국가’ 중국. 이제 미국과 양자대결까지 해야 하는 중국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주간동아 1309호 (p54~56)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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