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 기훈(이정재 분)이 우산 모양이 찍힌 달고나 뒷면을 쳐다보는 장면.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영대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라니,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저도 아직 못 봤어요.
현모 전 드라마를 잘 안 봐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오는 각종 파생 짤만 보고 있어요. 달고나 사진이라든가, 핼러윈 데이 코스튬 사진 같은.
영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최고경영자)도 빨리 보고 싶다고 트위터에 올렸던데. 그럼 ‘D.P.’도 안 보셨죠?
현모 네. ㅋㅋ 군대 이야기 아닌가요? 제 스타일 아니잖아요~.
영대 요즘 지상파에서도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니, ‘유미의 세포들’이니 재미있다는 프로그램 천지인데, 이걸 언제 다 볼 수 있으려나. 보려고 찜해둔 목록만 계속 늘어가요.
현모 어휴,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챙겨 봐요. 그냥 어울려서 대화가 통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알아야죠.
영대 저도 제대로는 못 보고 그냥 빨리빨리 돌려보는 편이에요. 대중문화 콘텐츠와 관련해 종종 글을 써야 하고 방송에 출연하면 이야기도 해야 하니까요.
현모 요즘 같은 콘텐츠 홍수 시대에는 직업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 것도 많고 모든 걸 따라잡기도 정말 힘든 거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려면 안 봤어도 본 척해야 되고. ㅎㅎ
영대 그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골라 보는 재미가 있을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아요. 가끔은 너무 혼란스럽기도 하거든요. 대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너무나도 방대해 오히려 결정 장애가 온다고 해야 하나.
현모 맞아요. 해외에 나가면 대형쇼핑몰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렇잖아요. 규모에 압도당해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발이 얼어붙은 느낌. ㅋㅋ
영대 그리고 기회비용을 생각해 어쩔 땐 보다가도 중간에 딴 게 더 재미있을 듯해 다른 걸로 넘기기도 하고, 집중도가 낮아지는 거 같기도 해요.
현모 전 그래서 한편으로 제가 어릴 때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는 게 다행스러워요. 그냥 TV에서 방영해주는 거 말고는 볼 게 없었잖아요. 가족이 TV를 차지하고 있으면 혼자 방에 들어가 따로 모바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영대 ㅋㅋ 그랬으면 공부도 못했겠죠.
현모 앗, 그러면 지금보다 더 잘됐을 수도…. ㅋㅋ
영대 그죠, 막 할리우드 가서 배우 하고 있을 수도. ㅋㅋ
현모 아무튼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런 멀티플랫폼 시대가 열려서 천만다행이에요. 이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취향도 확실히 알고, 인터넷에서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니까 혹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당할까 봐 무작정 따라 볼 나이는 아니니까요.
영대 진짜 이럴 때일수록 본인만의 확고한 줏대가 있거나, 선택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모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고 관심 가는 쪽을 더 깊이 있게 ‘덕질’한다는 장점은 있었겠죠.
영대 몇 달 전 추천해주신 영화 ‘모리타니안’을 이제야 뒤늦게 보면서 느낀 건데, 그냥 현모 님이 추천해주는 걸 보는 게 제일 확실하더라고요.
현모 푸하하하. I’m flattered(기분 좋은데요).
영대 그게 단순히 우리가 친해서라기보다 나와 취향이 비슷하거나 내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추천해준 게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는 거죠. 오래된 ‘베프’라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까지 똑같은 걸 보고 좋아하진 않거든요.
인공지능(AI)이 추천하는 알고리즘은 어떤 심상을 떠오르게 하거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GETTYIMAGES]
영대 그죠. 저한텐 인공지능 알고리즘보다 안현모의 ‘안고리즘’이 먹힌다는 거죠.
현모 그럼 말 나온 김에 영화 ‘북샵’도 꼭 보세요. 주변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답답해요.
영대 아, 맞다. 지난번에 말씀하셨어요. 도저히 짬이 안 생겨서 ‘안고리즘’ 리스트에 넣고 타이밍만 엿보는 중이랍니다. 괜찮은 영화는 아내랑 같이 보거든요.
현모 어머♡ 근데 그러고 보면 진짜 인공지능이나 복잡한 알고리즘이 발달할수록 되려 taste(취향)나 기호에서만큼은 신뢰하는 지인의 한마디가 더 강력해지는 거 같아요. 영화, 책뿐 아니라 맛집이나 물건도요.
영대 맞아요!
현모 얼마 전 모 대기업 회장님과 점심식사를 했는데, 밥 먹으면서 맛있는 냉면집을 알려드렸더니 그날 저녁에 바로 가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어요. 세계적인 회장님에게 맛집 정보쯤은 엑셀 파일로 차고 넘칠 텐데 말이죠. ㅋㅋ
영대 그러니까 그게 신뢰도나 친밀도의 작용이기도 하고, 대화의 힘 같기도 해요. 그 사람과 대화가 즐거웠거나, 아니면 대화를 더하고 싶거나.
현모 신기하네요. 하긴 ‘시리’나 ‘알렉사’가 아무리 똑똑해도 누구도 그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으니까요. ㅎㅎ 꽤 믿을 순 있어도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까진 들지 않는 거죠.
영대 그나저나 그 냉면집 저랑은 언제 갈 거예요?
현모 ㅎㅎㅎ 요즘은 제주 막국숫집들을 뚫고 있느라…. ㅋㅋ
영대 아니 제주까지 가서 막국수를요?! ㅋㅋㅋㅋ
현모 당연하죠. ㅋㅋ
영대 못 말리겠네요. 아, 배고픈데 라면이라도 먹어야 하나.
현모 근데 어떤 추천이 효과적일 땐 총체적인 배경 그림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소위 ‘인플루언서’들이 SNS에서 어떤 물건을 홍보하면 그가 평소 어디를 즐겨 다니고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사는지 360도적으로 대략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이루고 있는 한 조각을 나도 사고 싶어지는 거거든요. 단지 그 물건의 품질이나 성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요. 그가 누리는 전반적인 이미지를 나도 소유하고 싶기 때문에 그 일부에 해당하는 물건을 구매하게 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영대 맞아요.
현모 그런 면에서 알고리즘의 연산은 우리에게 어떤 심상을 떠오르게 하거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거죠. 대개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건 팩트가 아니라 감정이거든요.
영대 그죠. 어떻게 보면 취향도, 정보도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이 시대에 데이터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곧 자산이긴 해도, 결국 누가 그중에서 사람을 핀셋처럼 집어 움직이게 하는 살아 숨 쉬는 데이터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거 같아요.
현모 흥미롭네요.
영대 엇, 갑자기 떠올랐다. 저번에 제가 선물로 드린 책 읽어보셨어요?
현모 아, ‘뮤직숍’이요? ㅋㅋㅋ 죄송해요. 두 번이나 물어보시게 만들었네요. 쫌만 기다려주세요. 조만간 볼 거예요!!
영대 ㅋㅋㅋ 다 이유가 있어서 고른 거라고요.
현모 그럼요, 그럼요. 저 나름 ‘영고리즘’을 충실히 기억하고 실천하는 거 아시잖아요~.
영대 ㅎㅎ 천천히 보세요. 전 조만간 ‘북샵’을 볼 테니까, 앗…!! 현모 님은 ‘뮤직숍’을!!
현모 으하하하, 아뉘 이런 싱크로니시티가~!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