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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인들이 심은경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영화 ‘신문기자’의 일본 아카데미상 3관왕 등극의 함의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일본 영화인들이 심은경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곤혹스러운 표정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GettyImages]

곤혹스러운 표정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GettyImages]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한 게 3월 5일.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던 상황에서 터진 뉴스라 더욱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루 뒤인 6일 낭보가 날아들었다. 영화 ‘신문기자’에서 주연을 맡은 심은경이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1978년 일본 아카데미상이 처음 개최된 이래 한국 배우가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전혀 예상 못 해 수상소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미안하다”와 “감사하다”를 연발하며 울먹이던 심은경의 모습에 한국과 일본은 오랜만에 함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2017년 4월 일본에 진출한 이후 첫 출연한 영화로 거둔 성과다. 야구에 비견하자면 첫 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치고 데뷔 첫해 MVP에 뽑힌 셈이다.


아베 아킬레스건 건드린 영화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더쿱]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더쿱]

일본 영화계가 한국 배우에게 최우수 연기상을 안겨준 것은 심은경 개인에게 큰 선물이었지만, 한국인에게도 의미심장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최우수 남우주연상(마쓰자카 도리)과 작품상 등 3관왕에 오른 ‘신문기자’는 ‘살아 있는 권력’을 비판할 줄 모르는 일본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베 정부를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평가 사이트 ‘픽 신’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개봉한 이 영화는 지난해 일본 내 흥행순위 100위 안에 간신히 턱걸이할 정도로 흥행 성적(4억8000만 엔·약 55억 원)이 미미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0월 개봉했지만 관객 수는 1만50명에 머물렀다. 이런 영화가 3관왕에 올랐다는 것은 일본 영화인들이 그만큼 영화의 문제의식과 작품성에 깊이 공감했다는 뜻이다. 

영화는 아베 총리를 직접 언급하거나 그를 연상케 하는 인물을 직접 등장시키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총리 직속의 내각정보조사실이 관여한 사건·사고는 실제 아베 정부 시절에 벌어진 여러 스캔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핵심 사건은 내각정보조사실에서 극비리에 추진 중인 의대 설립 인허가 비리를 추적하는 신문기자와 이를 돕게 되는 내부고발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총리의 오랜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에 특혜를 주고자 나랏돈으로 의대를 세운 뒤 위탁경영을 맡기고 그 대가로 해당 의대에선 국제사회가 금지시킨 생화학무기를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생화학무기 개발 이야기를 빼면 해당 내용은 아베 총리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가케학원 스캔들’을 빼닮았다. 

가케학원은 2017년 1월 에히메현에 오카야마이과대 수의학부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입시 면접에서 한국인 응시자 8명 전원을 0점 처리한 사실이 최근 밝혀져 논란이 된 바로 그 수의학부다. 이 대학은 정식 개교 전부터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가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내준 것이 52년 만에 처음인 데다, 가케학원 이사장인 가케 고타로가 아베 총리와 자주 골프 회동을 하는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6년 가을부터 ‘총리관저 최고 레벨의 뜻’이나 ‘총리 의향’이라는 의미가 담긴 내부 문건이 속속들이 공개되면서 아베 총리를 코너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영화의 원작 역시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한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동명 에세이집 일부를 토대로 했다.


아베 스캔들 종합세트

영화

영화 '신문기자' 주연을 맡은 요시오카 에리카 기자 역의 심은경과 내부 제보자 스기하라 다쿠미 역의 마쓰자카 도리. [더쿱]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시라이와 스캔들’도 이와 관련 있다. 시라이와는 총리관저의 압력으로 교육 비리를 저질러졌음을 폭로했다 미운털이 박혀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는 전 문부과학성 대학교육국장이다. 이는 2016년 가케학원 스캔들을 폭로한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마에카와 전 사무차관은 사학재단 스캔들을 폭로한 이후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들락거려 상부로부터 질책을 받았다는 흑색선전의 희생양이 됐다. 

또 영화에서 ‘총리의 개’로 불리는 기자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폭로하지만 수사당국으로부터 외면받고 여론의 뭇매까지 맞아 2차 피해를 입는 언론인 지망생 고토 사유리라는 인물은 이토 시오리와 닮은꼴이다. 똑같이 언론인 지망생이던 이토는 2015년 아베 총리와 가까운 TBS 워싱턴지국장 출신의 야마구치 노리유키 기자에게 성폭행당한 뒤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듬해 검찰이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하자 2017년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면서 이를 고발해 일본 미투(Me Too)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들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어둠의 세력이 총리 직속 내각정보조사실이다. 각 부처의 엘리트 공무원을 모아놓은 이곳의 업무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지키는 것이다. 총리 눈 밖에 난 시라이와 국장과 고토 같은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만들어 퍼뜨리고 댓글부대 역할까지 하면서 여론몰이를 펼친다. 정권에 유리한 기사가 같은 날 여러 조간신문에 똑같은 지면, 똑같은 크기로 보도되게끔 언론공작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고멘” 그리고 “아리가토”

3월 6일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여우주연상 수상소감을 밝히며 울먹이는 배우 심은경. [일본 아카데미상협회]

3월 6일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여우주연상 수상소감을 밝히며 울먹이는 배우 심은경. [일본 아카데미상협회]

내각정보조사실의 이런 행태는 ‘메시지를 희석하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로 요약된다. 이는 한국에서도 낯익은 상황이다. 시라이와 스캔들은 박근혜 정부의 역린을 건드렸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식을 뒀다는 언론보도로 낙마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고토 사건은 권력층의 비호를 받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두고두고 비판받게 된 ‘장자연 사건’과 ‘별장 성접대 사건’을 연상케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일본 영화는 2017년 대통령 탄핵을 통해 한국 사회는 청산에 성공했지만 일본 사회는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정치적 악습을 리플레이해 보여준다. 바로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를 동일시할 때 발생하는 최악의 정치다. 영화 속 내각정보조사실장 타다(다나카 데쓰시 분)의 대사,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돼!”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즈음 카메라는 내각정보조사실에 걸린 일장기를 포착하는데, 잔뜩 구겨져 있어 가운데 빨간 원이 흘러내리는 핏물처럼 보인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왜 하필 그 내각정보조사실의 비리를 폭로하는 요시오카 에리카 기자(심은경 분)를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이방인으로 설정했을까. 무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아베 정부를 지켜보면서 내부자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좌절감의 발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오카 기자를 돕는 내부 고발자 스기하라 다쿠미(마쓰자카 도리 분)가 마지막 장면에서 요시오카를 향해 내뱉은 말을 입모양으로만 처리한 이유와 닮았다. 기자 눈에 그 입모양은 ‘고멘(미안하다)’으로 보였다. 타다 실장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요시오카 편에 서지 못하게 됐음을 고백한 것이다. 

일본 영화인들은 이러한 엔딩에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반한감정에 기대 지지자를 결집하려는 아베 총리에 대한 거부 의사로 영화 ‘신문기자’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일깨워준 심은경에게 ‘고멘’과 ‘아리가토(감사하다)’의 뜻을 담아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3월 11일 재개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3주년(3월 10일) 바로 다음 날이자 동일본대지진 발생 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주간동아 2020.03.13 1230호 (p4~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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