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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令和)에 어른거리는 日 내셔널리즘의 그림자

248번째 연호 … ‘令’ 풀이따라 국수주의적 해석 가능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레이와(令和)에 어른거리는 日 내셔널리즘의 그림자

[AP=뉴시스]

[AP=뉴시스]

전 세계 200여 개국 가운데 왕정국가는 얼마나 될까. 30개국이다. 유럽이 가장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12개국이고, 아시아가 13개국으로 하나 더 많다. 유럽의 왕국은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바티칸시국, 벨기에, 스웨덴, 스페인, 안도라, 영국이다. 아시아의 왕국은 말레이시아, 바레인, 부탄,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요르단, 일본, 카타르, 캄보디아, 쿠웨이트, 태국이다. 아프리카는 3개국(레소토, 모로코, 스와질란드), 오세아니아는 2개국(사모아, 통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나라가 UAE와 바티칸시국이다. UAE는 외형적으론 공화제를 채택했지만 7개 왕실의 연합국으로 아부다비 군주(아미르)가 대통령을, 두바이 군주(아미르)가 부통령 겸 총리를 세습한다는 점에서 변형된 왕국으로 봐야 한다. 반면 바티칸시국은 세습군주국은 아니지만 교황이 최고주권자라는 점에서 역시 왕국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 안도라공국은 실질적으론 내각의 총리가 다스리지만 명목상 군주(프린스)를 프랑스 대통령과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우르젤의 주교가 함께 맡는다. 16세기 이후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사이에서 독립국으로 생존하기 위한 역사적 타협의 산물이다. 말레이시아도 특이한 왕국이다. 전체 13개 주 가운데 9개의 술탄(왕)이 5년에 한 번씩 국왕을 번갈아 맡는 연방제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이다.


현존 最古 왕조, 연호 쓰는 唯一 왕국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1일 도쿄 집무실에서 다음 달 1일부터 사용하게 될 새 연호 ‘레이와(令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뉴시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1일 도쿄 집무실에서 다음 달 1일부터 사용하게 될 새 연호 ‘레이와(令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은 이 30개 왕국 중 왕실 역사가 가장 깊다. 2000년 넘게 단일 왕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필적할 만큼 역사가 깊은 왕국이라면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삼는 바티칸시국을 꼽을 수 있지만 세계 각국 추기경의 호선으로 선출되기 때문에 역시 단일 혈통의 왕조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 왕국의 또 다른 특징으로 연호(年號)를 꼽을 수 있다. 연호는 한자문화권 제왕제(帝王制)의 산물이다. 기원전 140년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유학자인 동중서의 건의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채택한 이래 제왕이 즉위한 해부터 특정 연호 뒤에 숫자를 붙여 연수를 세는 전통이 세워졌다. 하늘의 뜻인 천문을 읽고 책력(冊曆)을 정하듯, 제국 신민의 시간까지 다스리겠다는 발상의 산물이었다. 연호는 황제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의 왕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기록상 한반도의 최초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사용한 영락(永樂)이다. 광개토태왕비문에 따르면 391년이 영락 1년에 해당한다. 백제가 연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신라와 고려는 독자적 연호를 상당 기간 썼다. 중국의 조공국을 자처한 조선은 당연히 독자적 연호를 쓰지 않았으며,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개국(開國), 광무(光武), 융희(隆熙)를 썼으나 1910년 한일강제합병으로 융희가 마지막 연호가 됐다. 중국은 1912년 청이 무너지면서 선통(宣統)이 마지막 연호가 됐다. 선통제 푸이는 1932년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 황제가 되면서 다시 강덕(康德)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나,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만주국도 멸망해 그 연호마저 사라졌다. 

일본은 645년 고토쿠(孝德) 일왕이 즉위하면서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도입한 것이 최초다. 일본어로는 ‘겐고(元号)’로 부르는 연호는 새 일왕이 즉위하거나, 자연재해가 계속되거나, 정치적 변혁이 필요할 때마다 바뀌어왔다. 그러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1명의 일왕이 1개의 연호만 쓰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원칙이 확립됐다. 

이 역시 중국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이 도입한 제도를 뒤늦게 수입한 것이다. 중국 명·청시대 황제는 죽고 난 뒤 부여하는 묘호나 시호를 쓰지 않고 연호로 불렸는데, 그 시조가 홍무제 주원장이다. 명의 마지막 황제가 묘호인 의종보다 연호를 딴 숭정제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도 이 전통을 받아들여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昭和)→헤이세이(平成)로 이어지는 연호를 일왕의 왕호(王號)로 써왔다. 

5월 1일 일본 왕으로 즉위할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연호가 4월 1일 발표됐다. 126대 일왕이지만 연호로는 248번째에 해당하는 레이와(令和)다. 이에 따라 새 일왕은 레이와 일왕으로 불리게 됐다. 

원래 일본 연호는 신하들이 갖다 바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왕이 선택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사실상 내각에서 이를 결정했다. 그 대부분은 중국 한문고전을 출전으로 삼았다. 헤이세이의 경우 ‘사기’에 나오는 ‘내평외성(內平外成)’에서 평(平)을 취하고, ‘서경’에 나오는 ‘지평천성(地平天成)’에서 성(成)을 취해 ‘천지와 내외의 평화를 이룬다’는 뜻이 담겼다.


‘만엽집’이 출전이라지만

4월 30일 퇴임하는 아키히토 일왕(오른쪽)과 5월 1일 즉위하는 그의 맏아들 나루히토 왕세자가 1월 도쿄 궁전(고쿄)을 찾은 신년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4월 30일 퇴임하는 아키히토 일왕(오른쪽)과 5월 1일 즉위하는 그의 맏아들 나루히토 왕세자가 1월 도쿄 궁전(고쿄)을 찾은 신년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 내셔널리즘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신조 정부에서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중국 고전이 아니라 일본 고전에서 연호에 쓸 한자를 고르겠다고 선언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엽집(萬葉集)’을 출전으로 삼았다. 만엽집 권5에 실린 32수의 매화가(梅花歌) 앞에 붙은 서문 중 ‘초봄의 길한 달(음력 1월), 공기는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初春令月 氣淑風和)’라는 구절에서 각각 영(令)과 화(和)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아베 총리는 “강추위 이후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매화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본인이 내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다는 소원을 담아 연호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만엽집’의 해당 구절 역시 중국 한시를 원용한 것임이 드러났다. 중국 후한시대 문인 장형(張衡·78~139)의 시 ‘귀전부(歸田賦)’ 가운데 ‘중춘(음력 2월)의 길한 달, 때는 잔잔하고 기운은 맑다(仲春令月 時和氣淸)’라는 구절이다. 일본 대형출판사 이와나미서점 출판부는 4월 2일 트위터를 통해 “(자신들이 출판한) ‘신일본고전문학대계’의 ‘만요슈1’에 담긴 주석을 보면 이 구절은 남북조시대(6세기) 시문집인 ‘문선(文選)’에 실린 구절을 참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NHK도 ‘레이와’의 최초 제안자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 오사카여대 명예교수의 저서를 인용해 “만요슈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베 정부가 아무리 재주를 피워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일본 최고(最古) 시가집인 ‘만엽집’의 원본. 만엽집은 히라가나로는 쓰이지 않았지만 히라가나 성립 전 만요가나, 즉 일본어음을 한자어로 표기한 문자로 쓰였다. 그래서 신라 향가와 비교연구의 대상이 된다. [위키피디아, 뉴시스]

일본 최고(最古) 시가집인 ‘만엽집’의 원본. 만엽집은 히라가나로는 쓰이지 않았지만 히라가나 성립 전 만요가나, 즉 일본어음을 한자어로 표기한 문자로 쓰였다. 그래서 신라 향가와 비교연구의 대상이 된다. [위키피디아, 뉴시스]

이는 그 출전으로 ‘만엽집’을 택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만엽집’은 629년 무렵부터 759년까지 약 130년간 4516수의 노래와 시를 모아 수록한 시가집이다. 그만큼 많은(萬) 작품(葉)을 모은 책(集)이란 뜻과 만대(萬代)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작품집이라는 뜻이 겹쳐 있다. 

문제는 거기 실린 한시 상당수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데 있다. ‘만엽집’이 편집된 시기는 일본이 한반도의 영향에서 벗어나 중국 수·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때였다. 당시 일본에선 좋은 것을 언급할 때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란 뜻의 당(唐)을 붙일 정도였다. 

이는 ‘만엽집’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군국주의 미학을 분석한 오오누키 에미코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에 따르면 ‘만엽집’에서 일본 자생의 벚꽃(사쿠라)을 노래한 시는 44수인 반면, 중국에서 수입된 매화를 노래한 시는 그 3배에 가까운 118수나 된다. 

이번에 레이와의 출전이 된 대목 역시 벚꽃이 아니라 매화에 대한 노래 모음의 서문이었다. 2012~2018년 6년에 걸쳐 ‘만엽집’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이연숙 부산동의대 명예교수의 ‘한국어역 만엽집 4’에 따르면 730년 정월(음력 1월) 13일 타비토(旅人)라는 대신의 집에 모인 귀족들이 정원에 핀 매화를 감상하며 부른 노래들이다. 당시 일본 벚꽃은 산벚꽃이어서 정원에 심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수입한 귀한 매화는 자랑거리였기 때문이다.


벚꽃이 아니라 매화가 등장한 이유

4월 1일 공개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의 대형 서예글씨를 내건 도쿄 한 쇼윈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4월 1일 공개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의 대형 서예글씨를 내건 도쿄 한 쇼윈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매화가 아니라 자생 벚꽃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중엽 이후 일이다. 630~894년 이어진 ‘견당사’(중국 문물을 수입하고자 당나라에 파견한 공식 사절) 붐이 시들해질 무렵부터다. 이즈음부터 왕실 정원에서 산벚나무를 정원수로 키우기 시작해 12세기쯤 전국에 퍼졌다. 11세기 초 집필된 ‘겐지이야기(源氏物語)’에서 사쿠라가 40회 이상 등장하며 매화의 40회를 넘어선 것이 그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일본 출전을 언급하고 싶었다면 ‘겐지이야기’ 이후의 텍스트를 택했어야 하는데 아베 정부의 역사·문화 지수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경계할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영(令)은 형용사로 쓰일 때는 ‘좋다, 길하다’는 뜻이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갖는다. 게다가 화(和)는 ‘조화롭다, 평화롭다’는 뜻 외에 일본 자체를 상징하는 한자이기도 하다. 일본 전통요리를 와쇼쿠(和食)로 표기하거나 서력을 뜻하는 세이레키(西曆)와 차별화하고자 연호를 와레키(和曆)라고 부른다. 

실제 연호로 쓰인 한자 가운데 令은 이번에 처음 쓰인 반면, 和는 이번까지 도합 20회나 쓰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가 쇼와(昭和)였음을 감안하면 레이와는 ‘일본다움을 명한다’나 ‘쇼와시대로 회귀를 명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다. 

또한 令은 접두어 영식(令息), 영애(令愛)처럼 그 대상을 높여 부를 때도 쓰인다. 따라서 외국인이 레이와라는 연호를 쓸 경우 일본(和)을 높여 부르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러저리 생각할수록 달갑지 않은 연호가 아닐 수 없다.






주간동아 2019.04.05 1183호 (p8~1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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