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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양그룹 사태 후폭풍

“금융소비자 보호 이대로 안 된다”

‘동양 사태’로 금융감독원 구실 도마 위…‘금소원’ 신설 움직임 한층 빨라져

  • 이상훈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금융소비자 보호 이대로 안 된다”

“금융소비자 보호 이대로 안 된다”

10월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에 마련된 ‘동양그룹 채권 불완전판매 신고센터’에서 동양 사태 피해자들이 신고 접수 안내를 받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금융감독원은 대체 뭘 했습니까.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까.”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지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마련된 ‘동양그룹 채권 불완전판매 신고센터’는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피해자 민원처리는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의 몫. 오순명 금소처장(금감원 부원장보)을 비롯해 금소처 전 직원이 총출동해 투자자들에게 향후 구제절차 등을 안내했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투기등급(B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마구 팔아 5만여 명의 피해자를 낳은 ‘동양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을 떼어내 별도의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려는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금감원은 원내 금소처 조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피해자 구제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금융건정성과 소비자 보호 상충

하지만 금감원을 옹호하는 주장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금감원은 무엇보다 이번 동양 사태를 계기로 자칫 조직이 둘로 쪼개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금감원의 최우선 임무는 금융건전성 감독이다. 금감원은 외환위기 경험을 교훈 삼아 금융부실이 경제 전체 위험으로 옮겨 붙는 걸 막겠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금융회사가 건전하려면 수익성이 좋아야 한다. 예금이자는 낮추고 대출이자는 높여 마진을 키워야 한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금융건전성 강화는 소비자 보호라는 또 다른 대의와 상충할 수밖에 없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특히 금감원 고위직 출신들이 주요 저축은행 임원이나 감사로 나가 부실을 눈감아줬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더는 금감원에 소비자 보호를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격론 끝에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관련 부서를 키워 금소처를 신설했지만, 이 조직을 금감원 밖에 별도로 두는 건 미뤘다.

논란이 재차 불거진 건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를 치르면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소비자 보호를 금융감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했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금소원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월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금소원 신설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3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부조직법 개편안 협상에서 금소원 신설 여부를 상반기(1~6월) 안에 결론짓기로 약속했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금융위)는 금감원의 반발을 감안해 현 조직을 그대로 둘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청와대는 “그 정도로는 안 된다”며 금융위에 다시 안을 짜올 것을 요구했다. 금융위는 7월 금감원 밖에 별도의 금소원 조직을 신설하는 금융감독 개편안을 내놨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올 정기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는 대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내년 상반기 중 조직 분리 작업을 거쳐 2014년 7월 금소원을 공식 발족할 예정이다.

동양 사태는 금소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싣는다. 한 번 발생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는 금융소비자 피해 사태를 막으려면 소비자 보호만을 전담하는 조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동양그룹의 회사채, CP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금감원의 보고를 받은 지난해 7월”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동양그룹이 부실한 회사채와 CP를 시장에 뿌려 구조조정이 늦어지고 투자자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투자자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금감원 일부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금감원 내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주장도 나왔다. 투자자들이 연 7~8%의 높은 금리를 노리고 합법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게 그것이었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들이 주로 저축은행을 이용하던 서민과 장·노년층인 데 반해, 증권사에서 동양그룹 채권을 사는 사람은 고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올 정기국회가 신설 분수령

“금융소비자 보호 이대로 안 된다”

10월 4일 동양증권 채권 피해자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연판장을 제출하고 있다.

동양그룹 채권의 99% 가까이를 금융회사나 연기금 같은 기관이 아닌 개인이 투자했다는 점 역시 금감원의 감독을 느슨하게 했다. 설령 동양그룹이 쓰러져도 금감원 본연의 목표인 금융건전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충당금을 쌓거나 실적에 영향을 받은 금융사는 동양그룹 계열 외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이 알려지자 개인투자자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동양그룹 채권 투자자 상당수가 ‘투자에 대해 잘 알고 금융자산도 상당한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피해 신고자의 72.6%가 5000만 원 이하를 투자했고, 투자금이 1억 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전체의 10.1%에 불과했다. 동양그룹 부실채권을 판매한 창구인 동양증권이 잇따른 불완전판매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금감원은 사전에 이를 경고하는 변변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당장 10월 17~18일로 예정된 금융위,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동양 사태는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자연스럽게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향후 제2의 동양 사태를 막으려면 금소원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비자보호 강화’라는 대의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가 중요 이슈가 된 만큼 큰 이견 없이 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시중 금융사들에 금소원 신설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금융위, 금감원에 이어 제3의 시어머니가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수수료 하나를 두고도 기관 간 신경전에 치일 수 있다. 더는 소비자보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금감원이 “수수료를 인상해 수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금소원이 “소비자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경우 은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금소원 신설이 소비자보호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관료 출신의 한 금융사 고위임원은 “금소원을 신설하자는 금융위나 분리에 반대하는 금감원 모두 조직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에 걸쳐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했지만 번번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당국이 소비자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은 탓이 크다는 것이다. 현 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고 ‘조직부터 바꾸자’는 식으로 접근할 경우 제2 저축은행 사태, 또 다른 동양 사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주간동아 908호 (p22~23)

이상훈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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