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2012.12.31

난, 대통령 암살자야

뮤지컬 ‘어쌔신’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2-12-31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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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대통령 암살자야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무관심 속에서 살기가 그만큼 더 힘들다는 의미다. 뮤지컬 ‘어쌔신’에 등장하는 인물들 심정이 이러한 듯하다. ‘어쌔신’에는 각기 다른 사연으로 대통령을 암살했거나 암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한 찰스 기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주세페 장가라, 캐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 포드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사라 제인 무어와 리네트 스퀴키 프롬, 레이건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존 힝클리 등 실존 인물 9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 에피소드에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이유가 그렇게 거창하지가 않다. 대통령이 자신을 프랑스 대사에 임명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여배우의 관심을 끌려고, 자신의 책을 홍보하려고 등 개인적이고 특수한 이유다. 극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 오즈월드(강하늘 분)의 “열렬하게 미움 받을 수 있다”는 이유가 그나마 강하다.

    ‘어쌔신’은 역사적 내용을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한 소재를 통해 아웃사이더의 내면을 조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암살자들은 자신만의 세상에 고립된 채 좌절된 욕망을 실현하고 싶어 한다. 이들 모습은 병적인 동시에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상기시킨다. ‘Everybody’s Got the Right’는 인물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는 곡이다.

    작사, 작곡을 담당한 스티븐 손드하임은 원래 혁신적 내용과 실험적 형식으로 현대 뮤지컬을 이끄는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무게감 있고 어두운 주제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재주가 남다르다. ‘어쌔신’ 역시 ‘이거 비극 아니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연신 웃음을 유발하는 블랙코미디다. 템포와 유머감이 얼마나 잘 사느냐가 적잖게 중요해 보인다. 사회자이기도 한 오즈월드가 진지한 감성을 전한다면, 기토(황정민 분)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극 분위기를 띄운다.

    난, 대통령 암살자야
    ‘어쌔신’은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를 갖춘 일반 뮤지컬과는 다르다. 추상적인 시공간에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인물을 모아 놓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극을 진행한다. 줄거리는 이어지지 않지만 사회자 진행, 음악 모티프, 사격장으로 설정된 무대가 일관성을 갖는다.



    이 작품은 2004년 국내에서 오만석, 엄기준, 최재웅, 김무열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초연했고, 2009년 리바이벌한 바 있다. 이번 프로덕션에는 황정민, 남문철, 이상준, 최성원, 정상훈, 박성환, 윤석원, 이승근, 박인배, 박영주, 최재림, 유인혁, 강하늘, 이정은, 김현진, 김민주, 김태민, 탕준상 등이 출연한다. 2월 3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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