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3

2010.11.22

스마트 태풍에 디지털기기 ‘우수수’

매출 감소 직격탄 걷잡을 수 없는 쇠락 … 기능 특화도 쉽지 않아 깊은 한숨

  • 문보경 전자신문 통신방송팀 기자 okmun@etnews.co.kr

    입력2010-11-22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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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 태풍에  디지털기기 ‘우수수’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등의 등장으로 디지털 시대 강자였던 MP3 플레이어, 디카, 내비게이션, e북은 ‘성장과 퇴보’의 기로에 서게 됐다. 사진은 스마트폰 ‘갤럭시S’.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출퇴근 때 읽을 책으로 가득했던 A씨의 가방이 가벼워졌다. 스마트폰을 구입한 후의 변화다. 스마트폰이 모든 기능을 아주 만족할 정도로 채워주진 못하지만, 짬짬이 엔터테인먼트용으로 정보기술(IT) 디바이스를 이용하던 A씨가 사용하기엔 크게 부족함이 없다. 무거웠던 가방이 가벼워진 데다, 늘 탐이 났던 앙증맞은 크기의 핸드백도 가지고 다닐 수 있어 만족도는 말할 나위 없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똑똑한’ 스마트폰이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스마트 열풍은 IT 세상을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스마트 세상에 열광하는 사이, 모바일 디바이스 업계는 유래 없는 한파를 겪고 있다. 기본 기능을 지원하는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PMP 업계는 타격을 입은 지 이미 몇 달째이고, 마음을 놓았던 내비게이션 업계마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어플)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e북 전용 단말기는 스마트패드에 밀려 미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걸을 처지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 따르면, MP3 플레이어 판매량은 올 초 대비 80% 줄었다. 삼성, LG, 아이리버, 코원 등 주요 MP3 플레이어 업체는 MP3 플레이어 출시량을 대폭 줄여야 했다. 심지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시장을 휩쓸고 있는 어플도 아이팟과 아이팟터치의 판매량 감소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폰 열풍에도 판매량이 줄지 않았던 아이팟터치 또한 아이패드 출시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아이패드가 음악과 동영상 감상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이면서 엔터테인먼트 기능에 차별화를 뒀던 아이팟터치가 밀리고 만 것이다. 국내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은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스마트패드 출시 충격까지 더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특화한 단말기로의 변신도 가로막힌 꼴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패드 출시 엄청난 충격

    선명한 디스플레이와 일명 ‘포샵’ 어플, 여기에 통신 기능까지 더한 스마트폰 앞에서 디지털카메라의 위용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의 순수 카메라 기능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편리한 점이 많아 스마트폰 카메라를 기능면에서 선호하는 사람이 나타날 정도다. 어플로 사진을 즉석에서 보정할 수 있는 데다 통신 기능을 활용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싸이월드에 바로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카메라를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편리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갤럭시S와 아이폰4는 디스플레이까지 선명해 카메라 기능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미래 서점가의 총아로 주목받던 e북도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올 초만 해도 e북 시장은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에 버금가는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로 각광받았다. 그래서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e북도 스마트패드와 스마트폰 앞에서 기가 죽었다. 올 초 3000건을 자랑하던 e북의 판매량이 쇼핑몰에선 400~500건으로 급락했다. 업계에서는 e북 단말기 총 판매량이 올해 5만 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한 인터넷 서점 업체의 조사에서 소비자가 e북을 이용하기 위해 전용단말기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를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다.

    최근 직격탄을 맞은 것은 내비게이션이다. 2009년 출시된 3D내비게이션은 전용단말기에 비해 불편하고 정확도도 떨어져 이용자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통신사 주도로 개발된 스마트폰용 무료 내비게이션 어플은 정확도가 확연히 높아진 데다 실시간 교통정보도 확인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 내비게이션 대체용으로 더없이 좋을 스마트패드도 러시를 이뤄 내비게이션 업계의 근심은 깊어만 가고 있다. 200만 대 규모로 알려진 전용단말기 시장은 2011년에도 올해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특단의 대책이 없을 경우 시장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사태까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격 낮추고 성능 업그레이드로 승부

    이 같은 흐름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시장조사기관인 베르그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내비게이션 시장 규모는 내년에 4200만 대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2012년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서 2015년에 3000만 대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톱 슬롭 라보뱅크 애널리스트는 “내비게이션 시장이 줄어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스마트폰의 등장”이라 지적했다.

    ‘워크맨’이 모바일기기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다. 30, 40대의 학창시절에는 소니의 ‘워크맨’이 청춘의 로망이었을 것이다. 소니의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 브랜드인 ‘워크맨’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자리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워크맨을 찾지 않는다. MP3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등 모바일기기도 스마트 시대에 워크맨처럼 자취를 감출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시장이 바뀌는 게 당연한 이치다. 게다가 디지털기기가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다’를 장점으로 내걸었다면, 그보다 더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하고 똑똑한 복합기기인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에 밀릴 수밖에 없다. 스마트 시대엔 이들 디지털기기가 더는 편리하지 않다. 여성의 핸드백 속에선 이것저것 많은 디지털기기가 오히려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 기기의 고유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스마트기기가 똑똑하긴 하지만 개별 기기의 성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 디지털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해도,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 갈 때 필수품은 역시 성능 좋은 카메라다. 마찬가지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전자잉크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e북에 대한 수요가 아직 남아 있는 이유다.

    문제는 성장이다. 성장이 없는 산업은 죽은 것과 같다. 엄청나게 큰 시장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성장 없이는 생태계를 형성할 수 없다. 단말기에 맞는 콘텐츠나 서비스가 개발되기도 힘들다. 업계는 성장을 위해 우선 가격을 낮추거나 성능을 특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e북 단말기 업체들은 최근 잇따라 가격을 내렸다. 인터파크 ‘비스킷’은 39만8000원에서 24만9000원으로 37% 인하했다. 큐브네트웍스는 무선랜(와이파이)과 전자사전 기능을 뺀 제품을 14만9000원에 내놓았다.

    내비게이션 업체들은 3D 지도와 GPS 성능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이다. 차량용 블랙박스도 접목할 수 있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보조용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도록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내비게이션은 어느 길이 막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의 맛집, 은행, 주유소 등 상가 정보도 제공한다.

    MP3 플레이어, PMP, 넷북 업계는 용도를 특화한 단말기를 준비 중이다. 코원은 교육용으로 특화된 스마트패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노트북 전문업체 아수스는 3D와 고화질 영상이 강점인 게임 전용 노트북처럼 특화된 제품을 내놓는 데 주력했다. 3D 기능은 디지털카메라도 스마트폰과 대적하기 위해 채택한 기능 중 하나다. 한 MP3 플레이어 업계 관계자는 “컨버전스에 맞서는 방법은 다이버전스”라며 “특화된 시장에서 1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태풍에  디지털기기 ‘우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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