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햇살론’ 빛이 또 다른 ‘빚’ 될라

출시 보름 만에 1000억 원 돌파 … 일부는 대출받아 곧바로 사채업자에 송금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8-16 15: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햇살론’ 빛이 또 다른 ‘빚’ 될라
    “4개월 후에 만날 우리 아기에게 큰 힘이 됐어요.”

    인쇄소에서 4년 동안 근무한 회사원 양모(30) 씨. 성실한 가장이지만 연소득이 1600만 원 내외, 신용등급이 7등급이라 그간 은행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 병원비 등 목돈이 필요했던 양씨는 7월 26일 햇살론 저축은행 1호 대출자가 됐다. 그는 연 12.8%의 이자율로 800만 원의 생계자금을 원리금 3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빌렸다. 그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신용등급이 낮은데도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등급 이하 저신용자 만족도 높아

    7월 26일 출시된 ‘햇살론’이 보름 만에 1000억 원 대출을 돌파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8월 9일 기준 총 1만3000명이 1107억 원을 대출받았다. 햇살론은 저소득 저신용 서민에게 연 10%대의 저금리로 대출해줘 서민가계 부담을 완화하는 상품으로 ‘서민에게 따뜻한 햇살 같은 금융’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향후 5년간 10조 원이 투입되고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 3629개 서민금융회사에서 취급한다. 신용 6~10등급 또는 연소득 2000만 원 이하 저소득 자영업자나 농업어업인, 일용직 임시직을 포함한 근로자가 보증대출 대상이다. 그러나 연체, 부도 등으로 건전한 신용질서를 저해하거나 개인회생,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 등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407만 명은 제외된다.

    금리는 금리상한(상호금융 연 10.6%, 저축은행 연 13.1%) 내에서 서민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사업운영자금은 최고 2000만 원, 창업자금은 최고 5000만 원, 긴급생계자금은 최고 1000만 원을 빌릴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햇살론을 통해 5년간 100만 명이 혜택을 받을 것이고, 10년간 서민의 이자부담 경감효과가 6조 원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서민들로선 사금융, 제도권 금융회사보다 금리와 이용도 면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어 금융소외 현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햇살론과 더불어 기존 시중은행과 연계한 ‘희망홀씨대출’ 그리고 은행·대기업 자본 및 휴면예금 등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미소금융’은 ‘서민대출 3종 세트’로 서민의 희망이 되고 있다. 미소금융은 자활 의지는 있지만 신용도가 낮아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제도로 지난해 12월 출시됐다. 포스코·삼성 등 대기업과 신한은행·KB 등 금융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비영리법인인 미소금융 중앙재단의 전국 56개 지점에서 운영되고 있다. 미소금융은 연 4.5%의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고 노점상 등 무등록 사업자에게는 연 2%로 대출해준다. 전문가가 창업 컨설팅 및 후속관리까지 맡는다.

    하지만 금리가 낮은 만큼 대출심사가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첫 대출자도 출시 22일 만에 나왔을 정도.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고 자산규모가 대도시 거주자는 1억3500만 원 이하, 기타 도시 거주자는 8500만 원 이하 등 일정 수준 이하일 때만 신청이 가능하다. 창업자금은 최고 5000만 원, 사업운영자금은 2000만 원, 시설개선자금은 10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희망홀씨대출은 다른 대출과 달리 생계자금만 지원한다. 대출 하한액 없이 상품에 따라 최대 1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평균 금리는 연 9.9% 수준으로 16개 시중은행이 직접 운영한다.

    이런 상품에 대한 반응은 일단 폭발적이다. 보름 만에 1000억 원 대출을 기록한 햇살론뿐 아니라 희망홀씨대출도 출시 13개월 만인 올 6월 실적 2조 원을 돌파했다. 미소금융은 7월 말까지 총 3900여 명이 236억 원을 빌렸다. 실적은 높지 않지만 지난 7월 전통시장 상인, 용달사업자 등 다양한 취약계층 대상의 특성화된 상품을 개발하면서부터 대출 증가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햇살론 … 미소금융 … 희망홀씨대출 ‘3종 세트’

    햇살론을 취급하는 한 저축은행 상담사는 “하루 문의전화만 1000건이 넘고, 방문 상담도 100건 이상”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출자의 만족도도 높은 편. 비정규직에 신용불량자로 은행대출은 꿈도 못 꿨던 부산 영도구 김모(33) 씨는 부산은행의 희망홀씨대출 상품 ‘BS 희망플러스론’을 통해 전세자금 500만 원을 연 10% 금리로 대출했다. 김씨는 “상담 이틀 만에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만약 안 됐다면 두 살 난 딸, 갓난 아들과 거리로 나앉을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정책이 기존 사채업자의 배만 부르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택시기사 박모 씨는 햇살론으로 800만 원을 대출받아 기존 대부업체에 대출금을 갚아 매달 19만 원이던 이자를 6만 원 선으로 줄일 수 있었다. 박씨 개인에게는 이득이지만 햇살론 재원이 그대로 대부업체에 흘러들어간 것이다. 심지어 금융위원회조차 햇살론 대출금을 바로 송금해 서민들이 대부업체에 진 빚을 갚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원 마련도 문제다. 햇살론의 경우 정부가 1조 원을 출연하고 상호금융이 8000억 원, 저축은행이 2000억 원 등 민간 분야에서 1조 원을 부담해 마련한다. 이에 대해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한국의 저축은행은 자금 구조상 1조 원의 자금을 출연하고 연 10% 초반으로 지속적인 영업을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저축은행들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도 대대적인 조사를 준비 중이다. 저축은행 업계 2위인 한국저축은행은 햇살론 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를 하면 해당 주가가 내려가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 결국 주식 투자자들의 손해를 담보로 저신용자에게 햇살론 대출을 해주는 셈이다.

    또한 낮은 금리로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하다 보니 ‘눈먼 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조 교수는 “1000만 원을 대출해 창업을 해봤자 소규모 상점 수준일 테고, 대부분 대출 자금을 생활비로 이용해 갚을 길이 막막할 것이다. 자연히 상환 가능성이 낮다”고 경고했다. 홍익대 경영학과 김종석 교수 역시 “자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분별하게 대출해줘 더 깊은 빚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햇살론’ 빛이 또 다른 ‘빚’ 될라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