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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신인류 문화건강족의 걷기 본능-서울 숲길④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북한산 순례길, 우이령길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조국애란….”

초·중·고생 10명 중 4명이 3·1절의 의미를 모른다고 한다. 어른들도 독립선언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잊은 채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우리지만 일본의 역사왜곡은 강하게 비판한다. 자신은 잊고 살면서 남 탓만 하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북한산 순례길은 좋은 교훈이 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국립공원)은 북한산 둘레길 정비사업 시범사업으로 순례길을 조성했다. 북한산 둘레를 잇는 첫걸음이다. 이곳에는 일성 이준 열사(1859~1907), 성재 이시영 선생(1869~1953) 등 순국선열의 묘역이 있다.

여름 장마처럼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화창한 4월 27일 순례길에 올랐다. 순례길은 국립공원 북한산사무소 수유분소 쪽 입구와 덕성여대 앞 솔밭공원 쪽 입구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기자는 통일교육원, 아카데미하우스 인근의 수유분소 쪽 입구를 택했다. ‘북한산 둘레길’ 표지가 큰 도로부터 이어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입구 표지판에 ‘조국애란’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동행한 국립공원 공원시설팀 윤대원 차장은 “순례길 조성 뒤에도 자문단과 탐방객의 의견을 계속 반영하고 있다. 개선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지적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준 열사·이시영 선생·김병로 선생 …



입구에서 100m쯤 걸어가면 이준 열사 묘역이다. 그곳까지 오르는 길에 열사의 말씀을 새겨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에 감히 덧붙이자면, 위대한 인물을 기억하고 뜻을 잇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아닐까. 이준 열사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황제의 특사로 파견돼 을사늑약의 무효를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열사의 유해는 1963년 헤이그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이곳에 안치됐다. 열사의 생애를 적어놓은 안내판을 읽으면서 그분의 뜻을 기렸다.

묘역에서 내려와 순례길을 따라 걸으면 되는데 이곳에는 음식점이 있어 식사도 가능하다. 표지판은 가인 김병로 선생(1887~1964) 묘역을 안내한다. 약 170m. 입구에 순국선열에 대한 안내판을 두어 직접 올라가지 않더라도 선열의 생애를 알 수 있도록 해놓았다. 김병로 선생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으며 광복 후 초대 및 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표지판을 따라 20m 더 걸으면 광복군 합동묘역과 이시영 선생 묘역 입구다. 광복군 합동묘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1943년~45년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애국선열 17위가 모여 있다. 이시영 선생은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로 만주로 이주해 1911년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강습소(경희대의 시초)를 설립했다. 광복 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됐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해 사직했다.

이시영 선생 묘역 입구에 자리한 낡은 집에는 선생의 며느리인 서차희 여사가 살고 있다. 100세인 서 여사의 사연은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됐다. 고령임에도 직접 이시영 선생 묘역을 돌봤으나 2008년 환경부와 국립공원이 순국선열 묘역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해 후손의 힘을 덜어주었다. 낡은 서 여사의 집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순국선열의 고마움도 잊고 남은 후손의 고단한 삶도 외면하며 살아왔다.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수유분소 쪽 순례길 입구. 표지판들이 안내를 돕는다.

무거운 마음을 모르는지 대동천 물 흐르는 소리는 쾌활했다. 연일 내린 비 덕에 계곡 물이 불었다. 북한산 대동문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이곳까지 흐른다. 대동교를 건너면 ‘백련공원 지킴이터까지(340m)는 노약자의 통행이 용이한 구간’이란 표지가 눈에 띈다. 국립공원 순례길 계단 옆에 경사로를 두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도,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 단위 탐방객도 편하게 이용하게 배려했다. 길 찾기도 어렵지 않다. 표지판이 잘 돼 있고 목재 울타리를 따라 이동하도록 해놓아, 중간 중간 순국선열의 묘역에 들러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윤 차장은 “목재 울타리는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동 통로인 동시에, 샛길로 이동하는 사람을 막아 동식물을 보호하는 기능도 한다”고 말했다.

순례길 탐방객들은 순국선열 묘역이 이처럼 한군데 모여 있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국립공원 측도 알아봤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한 순국선열의 후손은 북한산 인수봉이 민족의 정신적 구심체라 수유지역에 모였다고 말했다. (사)대한풍수지리학회 강환웅 이사장은 “예부터 성 내에는 묘를 못 쓰고 성 바깥 100리로 나가야 했다. 묘역 터는 강남보다 강북이 좋고 남향은 시내를 바라봐서 안 되니 동향을 찾게 됐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 최적지가 수유지역이다”고 말했다.

사진 찍기 좋은 곳 섶다리

이윽고 순례길의 명물 섶다리가 나온다. 원래 길은 민가 바로 앞으로 이어지지만, 민가에서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해 섶다리를 놓게 됐다. 섶다리는 예부터 나무 잔가지를 이용해 만드는 임시다리로, 여름에 물이 불어나면 휩쓸려 떠내려가기도 했다. 순례길에 놓인 섶다리는 유래는 따랐지만 튼튼하다. 섶다리를 건너니 국립공원 직원들이 야생화 단지를 만들고 있다.

섶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단주 유림 선생(1894~1961) 묘역이 있다. 선생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신채호(1880~1936), 김창숙 선생(1879~1962)과 함께 ‘천고(天鼓)’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알렸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유림 선생 묘역은 순례길과 가까워 직접 올라보았다. 묘역 앞을 지나는 이갑순(63) 할머니는 “매일 순례길을 걷는다. 순국선열 묘역의 안내판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순례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순국선열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순례길을 따라 170m 정도 걸으면 체육시설이 나온다. 배드민턴, 탁구장은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시설이다. 국립공원은 장기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해 다른 곳에 체육시설을 짓는 방향으로 철거를 유도할 예정이다. 탐방객과 등산객 편의를 위해 백련사 오르는 길 입구에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걷기로 유산소운동을 충분히 했다면, 이곳에서는 기구로 무산소운동을 할 수 있다.

체육시설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백련사, 대동문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면 현곡 양일동 선생(1912~1980), 심산 김창숙 선생, 동암 서상일 선생(1887~1962) 묘역이 있다. 양일동 선생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30년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를 주도했고, 광복 후에는 정치가로 통일당 총재를 지냈다. 김창숙 선생은 경북 성주 출신으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매국 5적 처형을 요구하다 옥고를 치렀고, 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는 ‘파리장서’ 활동을 주도했다. 46년 성균관 및 성균관대학을 설립했다. 서상일 선생은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으로 헌정의 초석을 다졌다.

순례길은 주말농장을 따라 이어진다. 주말농장은 사유지라 국립공원이 직접 정비를 하지 못했다. 주말농장 주변 철조망과 도구들이 잠시 눈을 어지럽힌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샛길, 나무테크길, 포장길이 혼재돼 있다. 국립공원 측은 원래 있던 길을 이용하고 새로운 길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주말농장을 내려오면 150m쯤 동네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길바닥과 전봇대 등 눈에 잘 들어오는 곳에 둘레길 표지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동네길이 끝나고 강재 신숙 선생(1885~1967) 묘역까지 가는 길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다. 등산복보다는 가벼운 외출복 차림의 사람들이 더 눈에 띈다. 이곳에서 마주친 80세 할머니도 “적당히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니 운동하기 딱 좋다”며 활짝 웃었다.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1 섶다리는 순례길 명물이 됐다. 2 이준 열사 묘역 앞에서 고인에 대한 담소를 나눴다. 3 북한산에서 내려온 등산객들도 순례길을 찾는다. 4 순례길 4·19민주묘지 전망대에선 4·19묘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5 목재 울타리와 표지판이 탐방객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신숙 선생은 경기도 가평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1년 매국노 이용구 일진회장의 암살을 기도했다.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으로 망명해 30년 만주에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신숙 선생 묘역을 지나면 보광사 뒤편을 만나게 된다. 갈림길에서 순례길은 오른쪽으로 빠진다. 왼쪽 길은 등산로로, 주민들이 이용하는 약수터와 진달래능선으로 이어진다. 보광사 주차장이 있는 콘크리트길 경계에는 울타리 대신 나무를 심어 탐방객의 발길을 바로 잡는다. 다리가 조금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국립 4·19민주묘지 전망대까지 걸었다. 이곳에 서면 4·19묘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테크길을 따라 내려가면 순례길 출구인 솔밭공원이 나온다. 기자는 수유분소에서 솔발공원 방면으로 걸었지만, 인근 주민들은 솔밭공원에서 수유분소 방면도 많이 이용한다. 북한산 등산로와 바로 연결되고 운동 강도도 적절하기 때문이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탐방객에게는 수유분소에서 시작해 나무테크길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한다.

국립공원은 북한산국립공원 자락 저지대 일원에 북한산 둘레길을 2012년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둘레길은 총 63.17km로 서울 6개 구와 경기도 3개 시에 걸친다. 순례길을 시작으로 북악 오솔길, 우이 소나무길, 불광 언저리길, 회룡 탐방모험길 등 각각 테마를 갖고 조성할 예정이다. 2010년에 강북구와 은평구 지역 둘레길이 완공된다.

2012년 북한산 둘레길 완공 예정일까지 기다리기 힘들다면,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령길을 따라 둘레길을 가로지르는 것도 좋다. 우이령길과 연결되는 둘레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찾아가기 쉽지 않다. 차도를 따라 우이동 먹거리 마을 입구로 걸어가거나, 덕성여대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우이동 방면 120번이나 15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우이령길 입구까지 오르는 길은 MT촌을 지나쳐야 한다. 민박집, 음식점 간판이 눈을 괴롭히지만 인내를 갖고 오르면 40년간 숲의 속살을 간직한 우이령길이 위로한다.

우이령길은 지난 40여 년간 출입이 통제됐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 양주시 장흥면을 연결하는 총 6.8km의 길로, 군과 경찰이 통제해오던 비포장 도로 부분 4.46km가 공개됐다. 우이령길 안내판에는 그 연유가 이렇게 적혀 있다.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Basic info.

☞ 교통편과 구간

수유분소 쪽 출입구(104, 1119번 버스는 차고지앞 정류장에서 하차, 강북01번 버스는 아카데미 하우스 정류장 하차.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강북01번 버스 환승)→이준 열사 묘역→광복군 합동묘역, 이시영 선생 묘역→대동교?섶다리→유림 선생 묘역→체육시설→주말농장→신숙 선생 묘역→보광사 뒤편→4·19전망대→솔밭공원 쪽 출입구(1120, 1144, 1161, 1166, 1218, 109, 120, 144, 151, 153번 버스 덕성여대입구 정류장 하차)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남북 대치의 상흔을 간직한 대전차장애물. 편한 복장의 탐방객들이 우이령길을 찾는다. 우이령길의 표지판(왼쪽부터).

자연의 고마움을 우이령길에서 느끼다

‘소귀고개로 알려진 우이령길은 6·25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개설해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됐다. 1968년 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 1969년부터 국가안보 및 수도 서울 방어를 목적으로 2009년 6월까지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됐었다.’

소의 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소귀고개란 이름이 붙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우이분소 안명옥 분소장은 “41년간 통제구역으로 묶여 숲이 잘 보존됐기 때문에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의자,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을 갖췄다. 바닥에 마사토를 깔아 노약자, 어린이 산책 코스로 좋다”고 말했다. 802전경대 숙소 아래 우이탐방지원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예약 확인을 받는다. 미리 신청하면 자연환경 안내원이 안내도 해준다. 우이령길은 일일 1000명만 방문이 가능하기에 고즈넉한 숲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우이령길 곳곳에는 안내판이 있어 탐방객의 눈길을 잡는다. 안 분소장은 ‘맨발로 느끼는 우이령 숲’에서 맨발로 걸어볼 것을 권했다. 우이령길은 탐방객들을 위해 마사토를 깔아놓았다. 발에 직접 닿는 흙의 느낌이 낯설고 따갑기도 했지만, 이내 온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숲길을 따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 ‘흙 속에서 살아가는 친구들’ 등 숲의 고마움을 깨우치게 해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순례길을 걸으며 순국선열의 고마움을 느꼈다면 이곳에서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배운다.

기존 숲길과 조화를 이루는 차원에서 꽃들도 심어놓았다. 아쉽게도 참나리를 심어놓은 곳에서 참나리를 보지 못했다. 입산이 통제된 시간에 멧돼지가 내려와 참나리를 먹기 때문이란다. 나무, 꽃에 이름과 함께 친절한 설명도 달아놓아 식물에 문외한인 기자도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 ‘벌개미취는 별처럼 생긴 꽃모양을 갖고 있으며 벌판에서 핀다고 벌개미취로 부른다’고 달아놓은 식이다. 더 이상 무책임하게 이름 없는 꽃이 폈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우이 탐방지원센터에서 정상인 우이령길 작전도로 개통기념비까지는 약 1.1km의 완만한 경사길이 이어진다. 숲길 정취에 취해 걸으니 힘든지도 모르고 올랐다. 정상에는 대전차 장애물도 있다. 남북분단의 대치 상황이 숲의 생태계를 보존했지만 전쟁의 상흔도 남겨두었다. 정상에서 100m 정도 내려오면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에도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태양광집열판에서 모은 에너지를 활용해 화장실 내부공기를 정화하고 있는 것.

도봉산 오봉이 한눈에 담기는 곳

순국선열을 만나는 그곳 바람에 실려온 ‘애국魂’
좀 더 걸어가면 도봉산 오봉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오봉을 바라보며 쉬었다 가기로 했다. 오봉은 봉우리가 다섯 개라는 뜻이며, 한 마을의 다섯 총각이 원님 외동딸의 마음을 얻으려고 돌을 던지는 내기를 해 만들어졌다는 설화가 있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가 길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우이령길 안에는 군부대 유격장이 있다. 유격훈련을 받는 군인들 함성소리가 숲의 고요함을 깨고 귓속까지 파고든 것이었다. 숲의 넉넉함을 배운 덕일까, 이 소리도 긍정적으로 여기기로 했다. 지친 탐방객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응원소리라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유격장을 지나 부드러운 마사토를 밟으며 30분 정도 더 내려오면 어느새 우이령길이 끝나고 교현 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가까이 들려오는 차 소리가 아쉬운 여정이 끝났음을 알린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숲의 고마움을 배운 보람된 걷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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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과 구간

우이 탐방지원센터(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20, 153번 버스 종점 하차, 20분 소요. 우이동 먹거리 마을 방향 우이동전경대로 이동)→전경대 숙소→대전차장애물→오봉전망대→유격장→교현 탐방지원센터(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704번 버스 승차 석굴암 입구 하차, 또는 34번 버스 승차 우이령 입구 하차)

☞ 예약방법

참가 비용 무료

운영 기간 연중무휴

운영 일시 예약을 실시한 탐방객 대상으로 개방일에 09:00~14:00 출입 허용(16시까지 하산)

예약 인원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예약(일일 800명)

-노령층(65세 이상), 장애인, 외국인은 전화 예약 가능(일일 200명)

-우이 탐방지원센터 (02) 998-8365

-교현 탐방지원센터 (031) 855-6559

※ 전화예약은 주중 업무시간(09:00~18:00)에만 가능

필수 사항 예약 확인증과 신분증(예약자, 동행인) 지참, 전화예약자는 예약번호 확인 후 입장 가능



주간동아 2010.05.10 736호 (p38~43)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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