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영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 총괄반장으로 금융기관 퇴출 등 구조조정 실무를 지휘한 경력을 대면 알 만한 사람은 다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지난해 연말께였습니다. 검찰을 출입하는 방송사 선배 기자가 어느 날 저녁 “급히 함께 갈 데가 있다”며 저를 어딘가로 이끌었습니다. 어느 음식점에 도착해보니 연 전 사장과 변호인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당시 연 전 사장은 검찰의 ‘현대차그룹 계열사 채무탕감 로비사건’ 수사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억울한 게 있구나’라는 직감이 오더군요.
연 전 사장은 검찰 수사에서 대가성은 아니지만 금전 수수 사실을 인정했고, 법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해 법정구속까지 됐습니다. 뒤늦게야 그는 “검찰이 ‘돈을 받았다고 하면 정상을 참작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회유했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창구가 필요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까지 유죄가 확정돼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바뀌길 기대하긴 어려운 시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연 전 사장은 옥중에서 간암 수술까지 받아 명예회복보다는 몸부터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증해보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주간동아 714호 (p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