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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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히포’ 정든 코트를 떠난다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7-01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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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직 히포’ 정든 코트를 떠난다
    “농구 좀 잘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6월24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프로농구 창원LG세이커스의 현주엽(35)이 은퇴 기자회견 말미에 뜬금없이 던진 말이다. 농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겸손이 도가 지나치다”고 한마디 할 법하다.

    현주엽은 그만큼 우리 농구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휘문중 재학 시절부터 1년 선배인 서장훈과 함께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초특급 선수였다.

    국내 선수로는 드물게 195cm, 110kg의 육중한 몸에 스피드와 탄력, 개인기까지 갖춰 전문가들로부터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유일무이’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이상민, 문경은, 서장훈 등 쟁쟁한 연세대 스타들이 소녀부대를 이끌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쉬운 길을 포기하고 ‘맞수’ 고려대로 간 현주엽은 입학하자마자 팀이 ‘거함’ 연세대의 독주체제를 저지하는 데 일조했다.

    그의 존재로 전희철, 신기성, 김병철 등이 함께 포진해 있던 고려대는 ‘농구 황제’ 허재, 강동희가 주축인 기아와도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이처럼 현주엽 한 명으로 농구 판도는 양강이 아닌 다강 구도로 바뀌었고, 흥미진진한 경기에 열광한 팬들의 열기로 1990년대 중반 한국 농구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았다. 이런 그가 ‘농구 좀 했다’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 것은 자신을 오래 잊지 말아달라는 바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부상이 심하다곤 하지만 팬들에겐 너무나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였다. 중요한 고비나 변화 시점이 찾아올 때마다 절정의 기량과 악착같은 투지를 뽐내던 그였기에 이처럼 허무하게 농구공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고교를 졸업하는 그해 경기 평균 45점이라는 놀라운 득점력, 대학 졸업 직전 연세대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신들린 득점포를 올드 농구팬들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바란다. 현주엽의 마지막이 지금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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