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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20)|한강

한 굽이 돌아 설움 흐르고 두 굽이 돌아 사랑 넘치네

수많은 시·소설·가요 속에서 살아 흐르는 한강

한 굽이 돌아 설움 흐르고 두 굽이 돌아 사랑 넘치네

한 굽이 돌아 설움 흐르고 두 굽이 돌아 사랑 넘치네

성수대교(왼쪽)와 동호대교.

‘언니’는 이태 전에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추석을 지내고 근무지로 돌아가다가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던 날, 폐경기에 이른 언니의 몸에서 ‘혈(血)’이 흐른다. ‘언니’의 마지막 피다. 시댁 식구들에게 ‘언니’는 무생물에 가깝다. 폐경기를 맞은 ‘언니’는 거실 한구석의 물기 잃은 화분처럼 푸석푸석한 몸이 되어간다. 그런 ‘언니’를 ‘나’는 만나러 간다. ‘나’ 역시 윤기 있는 긴 머리카락을 옷에 묻혀 들어오곤 했던 남편에 의하여 이혼을 제안받은 상태. 가만 생각해보니 같이 살아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었고 굳이 헤어지지 못할 다른 이유도 없었다. 여자 나이 쉰을 넘긴 ‘폐경기’의 자매는 서울 서쪽의 아파트 베란다에 테이블 놓고 강을 바라본다. 저녁때, 언니가 하는 말들은 저물어가는 강물처럼 희미하게 번져서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김포에서 뜬 비행기가 한강 하구 쪽 하늘에서 상어처럼 커 보이다가 붕어만큼 작아지면서 짙은 노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언니는 강화 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얘, 꼭 버들치 같아. 대가리가 반짝거리네. 꼬랑지에 등이 켜졌어. 얘, 좀 봐.

얘, 라고 나를 부르기는 했지만, 언니는 등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가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에 나는 싱크대 앞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 얘, 어쩜 저렇게 스미듯이 사라질 수가 있니?



한강은 하구에 이르러 아득히 넓어졌고, 저녁 썰물에 드러난 갯벌에 새들이 모여 있었다. 서해 쪽으로 물러가면서 낮아지는 산들의 잔영이 저녁 어스름에 가물거렸다. 구름이 없는 날, 노을은 거칠 것 없는 빈 하늘에 가득 찼고, 가득 찬 노을은 오히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들여다보면 깊어서 시선은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한강의 시인’ 김정환 지금도 강변에 살며 한강 사색

이렇게 김훈은 중편 소설 언니의 폐경으로 노을 지는 한강을 그렸다. 서해에 이른 한강은 ‘폐경’에 이른 어떤 삶을 닮았다. 저 강원, 경북, 충북, 경기의 물들을 받아들여 장려하게 흐른 한강은 행주산성을 지나면서 느리고 완만하게 흐른다. 이윽고 서해로 스며드는데, 사리 때는 역류하는 바닷물까지 받아들이면서 뒤척거린다.

조용필의 절창 한강의 가사가 말해주듯 한강은 “한 굽이 돌아 흐르는 설움/ 두 굽이 돌아 넘치는 사랑/ 한아름 햇살 받아 물그림 그려놓고/ 밤이면 달빛 받아 설움을 ” 지워가며 ‘억년에 숨소리로 휘감기는 세월’을 출렁이며 흘러왔다.

한강의 시인 하면 김정환이 있다. 오랫동안 그는, 낮에는 진보적 문화운동의 독전관이었고 밤에는 인사동 술청의 진객이었다. 물론 남이 보기에 그런 것이고 그에게 그런 낮밤이나 주업과 부업의 경계는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대개들 두주불사가 되었다가 앞뒤 가림 못하는 문필객을 떠올리는 수가 있는데, 그는 언제나 아침이면 책을 읽거나 책을 쓰거나 했다. 수십 권의 책을 썼고, 그중에는 역사 음악 소설 산문 비평 등 장르의 경계 따위를 생각지도 않는 일들을 해왔는데, 그럼에도 나는 그가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다른 작업들을 다 합쳐도 그의 시집 ‘좋은 꽃’이 이룬 성취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근에는 무려 1만2000행에 이르는 거대한 시집 거룩한 줄넘기를 출간했는데, 소설가 이승우는 “언어와 그림과 건축과 신화와 역사와 종교와 성과 속과 죽음과 섹스와 노래와 춤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하여 지어진, 수없이 많은 방과 복도의 미로가 있는 한 채의 웅장한 집”이라고 말했다.

김정환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마포 일대에서 초·중·고를 나왔으며 대학도 서울에서 다녔다. 특별한 사연을 빼고는 서울 바깥으로 나가지를 않는 김정환은, 그러므로 한강의 시인이다. 어릴 적 자주 마포 강변에 나갔던 시인은 지금도 강변에 살면서 한강을 사색한다. 그가 한강에 바친 시 그러나 사랑한다고 했다를 보자.

꽃 한 송이를 피우기보다는/ 종일 한강에 나가서/ 한강이 한강인 채로 한강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황홀히 부활하는 순간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종일 보고 있으면 한강은 내 앞에서/ 노을에 발그레 상기된 고백의 몸짓으로 자기는/ 반포아파트의 화려한 고층 빌딩을 비추는 화장 짙은 강 표면이나/ 제3한강교 밑으로 흐르는/ 세월의 배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바로 내 발끝에서 바삐 흐르는 강물은 나를 보고/ 나는 강물을 보고/ 나는 흐르며 잠시 눈물 반짝이는 강물에게 나도/ 그대가 생각해주는 만큼 순진한 놈은 못 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했다

시인 김사인도 ‘밤에 쓰는 편지3’ 등 한강에 관한 시 많이 지어

한 굽이 돌아 설움 흐르고 두 굽이 돌아 사랑 넘치네

강북강변로의 교각(왼), 성산대교 북단에서 본 노을.

그의 벗으로 시인 김사인이 있다. 그는 시 필사적으로에 쓴 것처럼 “한 손에 우산, 또 한 손엔 內容不詳의 가방을 쥐고 필사적으로, 달리 마땅한 폼이 없으므로 다만 필사적으로, 신발에 물은 스미고, 신호는 영영 안 바뀌는데” 그런 시대를 필사적으로 살아냈다. 사람이 억지로 손을 부려 언어를 조탁하는 게 아니라 시가 제 뜻에 맞는 사람을 골라 스르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시가 되는 경지가 있다면, 아마도 김사인일 것이다. 시는, 김사인의 몸을 빌려 어떤 기교도 운도 교언도 없이 툭 세상에 나온다. 짧은 시 코스모스에서 김사인은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라고 썼는데, 이를 정현종은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지극한 마음, 마음 중의 마음인 참마음”이라고 평했다. 시는, 김사인이라는 선비가 1980, 90년대를 의젓하게 겪어내야 했던 거리의 일들 속에서 툭 튀어나와, 그의 시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런 김사인도 깊은 밤에 한강에 나간다. 아마도 한강은, 저 강원이나 충북의 기세라면 모를까, 압구정 지나 양화진 너머로 서녘 해를 따라 흐르면서는 강물이 스스로 쉰 너머의 시인이 되는 듯하다. 밤에 쓰는 편지 3의 한 구절이다.

한강아/ 강가에 나아가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목소리에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나 값싼 눈물 몇 낱으로/ 저 큰 슬픔을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큰 분노와 슬픔으로 흐르는 것인 줄을/ 진즉 알고는 있었습니다/ 한강아/ 부르면서 나는 저 소리 없는 흐름에게 무엇을 또 기대했던 것인지요/ 큰 손바닥과 다정한 목소리를 기다렸던 것인지요/ 나도 한줄기 강이어야 합니다/ 나도 큰 슬픔으로 그 곁에 서서/ 머리 풀고 나란히 흘러야 합니다.



주간동아 2008.09.02 651호 (p62~64)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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