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5

2017.02.15

특집 | 빨라진 탄핵시계와 헌재의 힘

“3월 13일 이전 탄핵 여부 결정된다”

헌법연구관 출신 다수 의견…외부 요인보다 헌재 결단이 남은 변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2-10 17: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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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3월 12일 여소야대 국회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그리고 그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헌재)가 탄핵기각 결정을 내려 노 대통령이 복귀했다. 탄핵 64일 만의 일이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지 2월 10일로 ‘64일’이 됐다. 그사이 서울 중심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리고 정국은 혼란을 거듭 중이다. 이 재판이 언제쯤 마무리될까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특히 3월 13일로 예정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 전 탄핵결정이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1월 31일 박한철 전임 헌재소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상황에서 이 권한대행마저 자리를 비우면 탄핵심판 진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과 헌재법은 헌법재판관(재판관) 재적에 관계없이 ‘재판관 7인 이상 출석 및 6인 이상 찬성’이 있어야 탄핵을 논의 및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절차적 공정성 확보 vs 조속한 헌정 회복

    헌법연구관 출신인 한 법학교수는 “3월 13일 전 탄핵결정은 그런 법조문이 없어도 마땅히 헌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정치·경제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가 리더십 공백을 3개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헌재는 인용이든 기각이든 조속히 결론을 내려 지금의 불확실성을 끝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도 퇴임 전 마지막으로 열린 1월 25일 공개변론에서 “대통령 직무정지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상황의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탄핵심판 선고가 3월 13일 이전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탄핵시계’가 이런 당위에 맞춰 흘러가는 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2월 7일 “탄핵을 결정하기에 두 달은 많이 부족하다”며 “사실관계를 최대한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권한대행 역시 2일 주재한 탄핵심판 10차 변론에서 “절차의 공정성, 엄격성이 담보돼야 심판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라며 ‘신속한 심리’보다 ‘절차의 공정성’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후 열린 11차 변론에서 헌재가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8명을 추가로 채택하고, 그 가운데 이미 헌재에 나와 증언한 적 있는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등까지 포함되자 일각에서는 ‘3월 13일 전 탄핵결정’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앞으로도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만큼 탄핵심판 선고일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단, 헌재가 14, 16, 20, 22일 등 이틀 간격으로 증인신문 기일을 잡은 걸 보면 공정성 시비를 피하되 재판은 최대한 서둘러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한 법학교수도 “박 전 헌재소장이 퇴임을 앞두고 수차례 ‘3월 13일 전 선고’를 강조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헌재 조직은 소장이 자기 생각을 다른 재판관들에게 ‘푸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재판관 사이에 공감대 없이는 그런 발언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절대 시간’이다. 헌법재판은 일반적으로 변론을 끝낸 뒤 헌재 소속 헌법연구관들이 사안의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 외국 입법례와 판례 등을 검토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재판관들이 이를 바탕으로 평의를 거쳐 의견을 정한 뒤 결정문을 작성해 선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절차를 밟는 데 2주가량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헌재는 4월 30일 최종 변론을 마무리하고 2주 뒤 탄핵기각 결정을 발표했다. 이 전례를 기준으로 역산하면 2월 안에 탄핵심판 변론 절차가 끝나야 3월 13일 전 선고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법학교수는 “최근 여러 언론이 ‘2월 말 탄핵 무산’ 기사를 쏟아냈는데, 헌재는 지금까지 한 번도 2월 말 선고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없다”며 “3월 초 선고를 염두에 두고 내부적으로 정한 시간표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월 8일 현재 헌재가 정한 마지막 증인신문 기일은 22일이다. 헌법전문가들은 헌재가 이때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한 뒤 24~28일 중 하루를 최종변론 기일로 잡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 경우 이정미 권한대행 퇴임 전 탄핵심판 선고에 무리가 없다. 



    중대한 헌정 위반 여부 판단이 관건

    헌법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서 탄핵시계를 계속 흐르게 할 것이냐, 멈추게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헌재의 판단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법학교수는 “헌재는 재판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끄는 데 필요한 소송지휘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헌법재판 당사자라 해도 그를 신문하는 것이 탄핵결정에 필수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출석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 측의 추가 증인 신청, 대통령 변호인단의 전원 사퇴 등도 헌재가 ‘결단’할 경우 탄핵심판 진행에 아무런 장애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한 변호사도 “헌재는 지난해 말 검찰로부터 2만 쪽 이상, 무게로 1t이 넘는 분량의 수사기록을 넘겨받았다. 또 2월 초까지 이미 공개변론을 10회 이상 진행했을 만큼 쉼 없이 재판을 진행해왔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결론을 내리기까지 공개 변론 횟수가 7회에 불과했다. 이처럼 각종 증거와 증언을 충분히 확보한 상황에서 재판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증인 신청 요구를 거부해도 헌법심판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헌재가 ‘더 충실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향후 탄핵 일정은 외부 요인보다 전적으로 재판관 8명의 결정에 달린 셈이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 비해 소추 사유가 많고 사실관계가 복잡해 헌재가 변론 종결 후 선고를 내리기까지 2주 이상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헌법연구관 출신 한 법학교수는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재 결정문을 언급하며 이를 부인했다. 당시 헌재는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중략)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탄핵심판에서 중요한 건 각각의 소추 사유가 위헌 또는 위법한가가 아니다. 재판관들이 종합적으로 사안을 판단해 대통령이 임기 중 파면돼야 할 만큼 국민 신임을 저버렸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판관들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정했다면 선고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한 법조인도 “탄핵심판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재판관들이 변론을 다 마친 뒤 평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판관들은 이미 비공식적으로 평의를 진행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을 개연성이 높아 변론 후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증인신문 일정이 설령 지연된다 해도 3월 13일 이전 선고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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