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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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 품에 안긴 노짱 오! 해피데이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풍경 … 1만5000명 운집 열렬한 환영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8-03-05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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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 품에 안긴 노짱 오! 해피데이

    2월2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도착해 환영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2월 25일 오전 10시 서울역]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식 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헌화하던 그 시각,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연도에 늘어선 비서진은 차량에서 내린 노 전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안기며 마지막 박수를 보냈다. 말 그대로 ‘참여정부’의 끝을 알리는 이벤트였다.

    취임식이 끝나는 낮 12시가 되면 새 대통령은 청와대로 입성하고, 퇴임한 대통령은 ‘낙향’하게 된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대한민국 중심지 서울을 벗어나 궁벽한 시골에 거처를 마련한 전례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경무대를 떠나 하와이로 피신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 몸을 의탁한 일이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처럼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내는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조선시대 이래 권력자의 ‘귀향(歸鄕)’이란 ‘실각(失脚)’ 혹은 ‘실패’를 의미했잖아요. 취임 이전부터 해온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닌가요?”

    서울역 앞에서 만난 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은 노란 풍선과 ‘그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노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1000여 명의 회원 중에는 ‘문짱’으로 불렸던 영화배우 문성근 씨도 있었고, 386 국회의원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오랜만에 ‘노짱’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아이들 손을 붙잡고 나온 젊은 부부들의 달뜬 표정과 대비됐다. 귀향이란 카드를 꺼내든 ‘노짱’의 선택은 그의 지지자들에게 성공한 대통령의 자신감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자는 서울역 환송 행사를 미처 지켜보지 못하고 낮 12시발 KTX를 타고 먼저 밀양으로 향했다.

    봉하 품에 안긴 노짱 오! 해피데이

    달집 태우기를 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 내외.

    [오후 2시 40분 밀양역] “밀양도 이제 제 고향 해버릴랍니다”

    “그간 사찰(열린우리당) 다 태워먹고, 암자 하나 남은 셈이에요.”(유시민 의원)

    “허허, 잘되겠죠. 그런데 밀양역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적 있나요?”(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윽고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을 태운 대통령 전용열차가 밀양역에 진입했다. 플랫폼에서 대기하며 소소한 정치 이야기를 나누던 유시민 의원과 김두관 전 장관의 표정이 환해졌다.

    천호선 전 대변인을 비롯한 참여정부 청와대의 수석진과 경호요원 등이 스쳐지났고, 드디어 노 전 대통령 내외가 밀양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노 전 대통령은 밀양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을 발견하고 눈을 떼지 못했다. 감격한 표정이다. 무려 2000여 명에 이르는 밀양시민들의 환호성이 메아리친다. 노 전 대통령은 따스하게 자신을 맞이하는 평범한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뜨거운 환영사를 내뱉었다.

    “제가 오지랖이 넓어 지역구가 많았습니다. 부산 동구, 부산 강서, 서울 종로도 제 지역구였습니다. 이제 밀양도 제 고향 해버릴랍니다. 괜찮겠습니까?”

    그의 억센 경상도 어투에 시민들은 ‘노짱’을 연호하며 호응했다. 그의 장기인 솔직담백한 화법이 오늘처럼 적절한 날도 없을 듯싶다.

    “제가 잘했다는 사람도 있고, 못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게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열. 심. 히. 하고 왔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예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짤막한 환영 행사가 끝나자 각지에서 모인 군중은 노 전 대통령의 차량을 따라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밀양에서 약 20km 거리다. 그러나 봉하마을 진입로는 이미 수만 인파와 차들로 뒤엉켜 진입이 쉽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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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위에서 내려다본 봉하마을 전경.

    [오후 3시] 10만개의 노란 풍선

    “봉하마을까지 1명~.” “여긴 2명~.”

    밀양을 중간 기착지로 여기고 나선 외지인이 상당수였다. 행사를 준비한 김해시와 노사모 측이 이에 대비해 봉하마을까지 셔틀버스를 준비했지만 밀려든 시민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기자 역시 따로 준비한 교통편이 없어 봉하마을 환영 행사를 볼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즉석에서 ‘카풀(car pool)’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깃발을 꽂은 승합차를 타고 온 충남 노사모 회원들은 서울에서 온 이방인(기자)을 반갑게 맞이했다. 차 안에서는 ‘불나비’ ‘너희는 아니야’ 등 최신 운동권 노래가 흘렀다. 자연스레 통성명을 하고 간식거리를 나눴다. ‘민주’와 ‘통합’의 가치, ‘노무현과 그 적들’ 등이 짧은 여행길의 안줏거리가 됐다. 마치 대학시절 MT를 가는 느낌이랄까.

    이제야 밝히지만, 기자는 노사모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2000년 4·13총선이 끝난 직후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한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던 5월, 지금은 노사모라 불리는 단체의 최초 모임에 참석한 경험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서 모여든 30여 명의 무명씨들은 당시 이광재 안희정 씨가 운영하던 서울 종로의 한 호프집에 집결했고 즉석에서 ‘노사모’라는 이름을 과반수로 확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보자”라는 일종의 도원결의까지 해버렸다. 8년 전의 자그마한 인터넷 모임은 기자에게 역사의 현장을 목도했다는 자부심을 안겼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가 진짜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커다란 가치혼란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물론 이젠 다 지난 옛일이 되고 말았지만….

    “어유, 저기 노란 풍선 좀 봐요. 부산 경남 노사모 애들 진짜 고생했네.”

    승합차가 밀양 시내를 빠져나가자마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창문 옆으로 노란 풍선이 도열한 것이다. 50m마다 한아름씩, 밀양에서부터 봉하마을까지 약 20km 거리를 빼곡하게 수놓고 있었다. 누구라도 ‘Tie Yellow Ribbon Around Oak Tree’라는 팝송 가락을 머리에 떠올릴 법했다. ‘국민들은 잊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의미쯤 될까. 지금 이 순간 노무현만큼 행복한 사람은 아마도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오후 6시 봉하마을] “정말 기분 좋다”

    10여 채의 농가가 오밀조밀 모인 봉하마을. 이날처럼 사람이 많이 모인 때는 마을이 생긴 이래 없었을 것이라며 한 주민이 놀라워한다. 경찰 추산 1만5000명, 전날까지 더하면 3만여 명의 대인파다. 당초 6000인분 국밥을 준비했던 주최 측은 오후 3시경부터 준비한 음식이 모두 동났다며 개점휴업을 선언했다. 손님 접대에 들어간 비용은 대부분 김해시가 충당했다는데, 손님상이 부실하니 늦게 도착한 이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당초 1만여 명분을 준비하려 했는데 언론의 질타가 심해 부랴부랴 행사 규모를 축소했다”는 변명이 구차하게 들렸다.

    환영 행사는 소박했지만 분위기만큼은 록 콘서트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뜨거웠다. 노 전 대통령이 “저, 잘했지요?”라고 외치면 금세 “그간 행복했습니다~”라는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가 봉하마을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학교 동문들과 지지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표할 때는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으나, 유머와 대중화술에 능숙한 그는 단지 인사말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5년간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당선된 것 자체가 바로 가장 큰 업적이다”라고 그가 답하자 노사모 회원들은 함성을 질렀다. 이어 “‘가장 보람된 시간은 언제였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지금 (고향에 내려온) 이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연설하자 현장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저는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있는데 어찌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의 투박하고 진심어린 화법은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흔들어놓는 마력을 지녔음을 새삼 느꼈다. 그가 내뱉은 공식 행사의 마지막 코멘트는 “야~ 기분 좋다!”라는 감탄사였다. 책임의 멍에를 벗어던진 그는 진정으로 홀가분해 보였다.

    [자정 마을회관] 기분 좋은 불청객

    봉하 품에 안긴 노짱 오! 해피데이

    고향으로 떠나는 ‘노짱’을 환송하기 위해 서울역에 집결한 서울지역 노사모 회원들(사진 위). 봉하마을을 가득 메운 격려 플래카드.

    노사모 회원들의 뒤풀이 행사는 진눈깨비 속에서 진행됐다. 노래자랑 순서가 끝나자 봉하마을 하늘을 대형 폭죽이 수놓았다. 이후 노사모 회원들은 ‘노짱’에게 미리 준비한 선물을 증정하는 것으로 ‘노짱 퇴임식’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앞으로 2월25일은 노사모에게 또 다른 기념일이 될 것이다.

    밤 11시, 참석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장터 같던 행사장은 순식간에 적막감이 감도는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마을회관에 홀로 남은 기자는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미몽에서 깨어났다. 그는 작업복 차림의 평범한 40대 남자였다.

    “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혹시 행사 관계자세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큰 유리병을 기자에게 들이밀었다.

    “시민으로 돌아온 노짱에게 빈손으로 오기 싫어 송이버섯주(酒) 한 병 구해왔습니다. 귀한 건데 꼭 좀 전해줘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진지한 눈빛을 대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누굴까?

    “그냥 ‘대구 노사모 조은이 아빠’라고 해주세요.”

    그는 이 말만 남긴 채 총총히 사라졌다.

    [이튿날 오전 9시] “노통 만나러 왔어요”

    아침에도 빗방울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봉하마을은 다시 기자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마을의 유일한 매점인 ‘쉼터’는 이방인들로 가득 찼다. 수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가게주인은 “어제 대박 맞았다”고 연방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그에게 한 관광객이 “대통령 사저가 너무 호화판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정색을 하며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데 너무들 하네요. 그럼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25평 임대아파트에서 살아야 해요?”라고 쏘아붙였다. 모두들 맞장구를 쳐준다.

    김해에서 새벽에 택시를 타고 왔다는 4명의 주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대통령 생가를 둘러봤고, 가게 개시를 미루고 서울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왔다는 50대 남성은 대통령을 배출한 봉하마을의 지세(地勢)를 자세히 살폈다. 또 다른 중년여성은 “노 전 대통령에게 성경을 전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경호원들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였다. 대통령 귀향의 진의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그가 울타리 밖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오전 10시] “다시 오고 싶다…”

    전날 밤 ‘조은이 아빠’가 남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송이버섯주를 들고 대통령 사저로 향했다. 귀향 첫날이기 때문인지 경호원과 전경들의 눈에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선물을 전달하러 왔다고 말하니, 매섭게 생긴 경호원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나왔다.

    “내용이 뭔가요?”

    “송이버섯 술인데, 대구 노사모 회원이 남기고 갔습니다. 여기 연락처도 있습니다.”

    경호원은 조금 무뚝뚝하게 선물을 받아안고는 이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통령에게 낯선 사람이 음식 선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대통령이 아니라도 그 누가 출처가 불분명한 음식을 믿고 먹을 것인가? 아마 그 술은 경호원들이 마시거나 혹은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쩐지 그 선물만큼은 반드시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에 한 대뿐이라는 오전 10시20분 버스를 타고 봉하마을을 떠나 진영읍내로 향했다. 서울까지 먼 거리였지만 이젠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마저 스친다. 이게 다 ‘징글맞게 순박한 바보’ 노무현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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