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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왜 솔벤트통 청소시켰나

“역학조사 철저 준비” e메일 발송 … 작업현장 ‘훼손’ 시도 정황 드러나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한국타이어 왜 솔벤트통 청소시켰나

한국타이어 왜 솔벤트통 청소시켰나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야간 전경.

‘18개월 새 15명 사망’. 한국타이어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 지난해 5월 이후 현재까지 사망자가 심근경색 7명, 폐암 2명, 식도암 1명, 간세포암 1명, 뇌수막종양 1명, 사고사 2명, 자살 1명 등 모두 15명에 이른다. 특히 심근경색 사망자 수가 두드러져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해 1월 입사한 연구소 직원 조모(27) 씨와 최모(29) 씨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두 사람 모두 건강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조씨의 부친 조호영 씨는 “아들의 죽음이 진짜 무엇 때문인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1년 반 사이 15명 사망 ‘죽음의 작업장’

과연 무엇이 한국타이어 직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이달 초 MBC ‘시사매거진 2580’은 공장에서 사용되는 유기용제 솔벤트에 주목했다. 솔벤트를 흡입한 쥐의 뇌·심장근육 이상지수가 일반 쥐의 최대 7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맡은 한양대 이병무 교수(독성학연구실)는 “솔벤트가 행동 위축은 물론, 심장근육에 이상을 가져오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장기간 노출 시 심장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어공장에서 솔벤트는 고무 세척 등에 쓰이는 유기용제다. 한국타이어가 사용하는 솔벤트의 정식명칭은 ‘HV-250’. 메틸시클로헥산(Methyl Cyclohexane)이 44%로 가장 많이 함유돼 있다. 메틸시클로헥산은 △피부 자극 △흡인 위험 △중추신경계통 억제 등의 건강 위험성을 가지지만 발암성은 없다. 한국타이어 측은 “2001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HV-250은 발암성·자극성 물질인 벤젠, 톨루엔, 크실렌이 검출되지 않은 개량 솔벤트”라며 “올해 상반기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 솔벤트 농도가 법적 허용기준치를 훨씬 밑돌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는 솔벤트의 안전한 사용에는 부주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타이어 직원 A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500cc 정도 되는 뚜껑 없는 통에 솔벤트를 담고 허리 높이 정도에 올려놓은 뒤 수시로 사용한다. 마스크는 쓰지 않는다. 목장갑을 끼고 사용하기 때문에 장갑에 스며들어 솔벤트가 피부에 닿는 일도 있다.”

솔벤트의 인화점은 10℃이기 때문에 28~32℃인 공장 내에서 자연 휘발한다. A씨의 증언에 따른다면 직원들이 솔벤트를 흡입하며 근무하는 셈이다. A씨는 “최근에야 이 통을 4분의 3 정도 덮는 뚜껑이 생겼다. 하지만 4분의 1은 여전히 열린 상태라 (휘발된 솔벤트) 흡입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환경안전팀 관계자는 “솔벤트를 많이 사용하는 공정에서는 방독면과 고무 재질 장갑을 착용하지만, 소량 사용하는 공정에서는 그렇지 않다”면서 “집에서도 본드를 사용할 때 방독면을 안 쓰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솔벤트를 뚜껑 없는 통에 담아 쓰는 것은 또 다른 타이어 제조업체인 넥센타이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회사 노동조합 및 안전환경팀 관계자 모두 “반드시 빨간색 솔벤트 전용 밀폐용기에 담아 사용해야 하며, 솔벤트 사용이 지정된 공정이 아닌 곳에서는 사용을 금한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 공장이 있는 넥센타이어가 이처럼 솔벤트 안전에 엄격한 이유는 10년 전 인근 LG전자부품 공장에서 솔벤트 집단중독이 발생했기 때문. 당시 LG가 사용한 솔벤트는 2-브로모프로페인(2-Bromopropane)이 주성분인 ‘솔벤트5200’으로, 현재 타이어회사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이 화학물질이 생식기능 및 골수기능 장해를 일으키는 것으로 규명돼 근로자 23명이 솔벤트에 의한 유기용제 중독증으로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넥센타이어 관계자는 “비록 종류는 다르지만 솔벤트에 대한 경각심이 크기 때문에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타이어 측은 최근 들어 뇌·심혈관계 이상으로 사망하는 근로자 수가 급증했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 10년간 당사에서 발생한 뇌·심혈관계 이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1000명당 0.3명으로, 전국 뇌·심혈관계 질환 평균 사망자 수(1000명당 1명)보다도 적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는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림대 주영수 교수(산업의학 전문의)는 “근로자는 건강집단이기 때문에 전국 평균보다 적은 게 당연하다. 그래서 이를 일컫는 ‘건강근로자 효과(Health Care Effect)’라는 용어까지 있다”면서 “한국타이어의 주장은 군인집단에서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이 낮다고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솔벤트 흡입 … 과거 누적 영향도 조사해야

한국타이어가 무벤젠 솔벤트로 바꾼 것은 2001년경. 솔벤트에 소량 함유된 벤젠으로 인한 백혈병 등 직업병 발생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모 타이어공장에서 18년간 솔벤트 운반 작업을 한 44세 근로자가 벤젠으로 인해 골수이상증식증후군에 걸려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현재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사망 근로자들의 역학조사에서 과거 누적된 솔벤트의 영향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1980년에서 95년 사이에 입사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벤젠 함유 솔벤트’를 사용한 전력이 있다. 한편 주영수 교수는 “사망한 두 명의 20대 연구소 직원의 경우 급성 심근경색의 원인을 단순 과로와 스트레스라고 보기엔 사망자의 나이가 너무 젊고 건강상태가 양호했다”면서 “회사에 예기치 못한 유해 환경이 있었으리라 추측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역학조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역학조사에 앞서 한국타이어 측이 작업현장 ‘훼손’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1월12일 ‘주간동아’는 상반된 솔벤트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하나는 회사 측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로, “(솔벤트의) 실제 사용장소 및 용기에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의거한) 취급 시 주의사항이 부착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건은 내부 e메일 사본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일부터 MSDS를 부착한 솔벤트통을 사용할 것 △그 이전 통은 사용 금지할 것 △주위를 청소해 군더더기 및 은분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할 것 △상기 내용대로 청소를 실시해 14~16일까지 역학조사 및 감사에서 지적받는 일 없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 등.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는 “일부 작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건이며, MSDS 설명 스티커가 떨어져나간 통을 교체하려 했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 노동계 관계자는 “한국타이어가 역학조사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부터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경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0억원대의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타이어도 종종 사회공헌 우수기업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CSR의 기본이자 출발점은 기부나 사회환원이 아니라 ‘안전한 환경에서 근로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안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과연 한국타이어는 업계 국내 1위, 세계 7위라는 위상에 걸맞은 ‘기본’에 충실했는가. 유례없는 근로자 사망사태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주간동아 612호 (p30~31)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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