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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편견 타파 ‘거꾸로 읽는 동화’

여성 편견 타파 ‘거꾸로 읽는 동화’

여성 편견 타파 ‘거꾸로 읽는 동화’

못생긴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슈렉3’.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1805~1875)은 19세기 당시의 유럽 구전문학을 바탕으로 ‘벌거벗은 임금님’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엄지 아가씨’ 등 불후의 동화를 남겼다. 하지만 백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의 동화들은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같은 동화들과 한 다발이 되어 ‘반(反)페미니즘 동화’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여성은 남성과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인어공주여야 하고, 행복은 ‘미모순’, 계모는 항상 악녀, 여성이 적극적으로 욕망을 표시하면 마녀라는 등의 편견과 남성 중심주의적 가치관이 물씬 배어 있다는 비판을 듣게 된 것이다.

서구문학계는 1970년대부터 안데르센, 그림 형제, 샤를 페로의 동화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패러디하는 ‘거꾸로 읽는 동화(fractured fairy tales)’를 통해 외모지상주의와 남성의존주의에 물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던 기존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예쁜 여자와 꽃미남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낭만적 거짓을 거꾸로 읽는 애니메이션 ‘슈렉’처럼 기존의 동화를 페미니즘 관점으로 ‘리라이팅(rewriting)’한다는 것이다.

씩씩한 막내딸 결혼 ‘미녀와 야수’ 180도 비틀기

가령 미국의 저명한 여성학자 바버라 워커의 ‘흑설공주 이야기’(원제 ‘Feminist fairy tales’·뜨인돌)에 나오는 ‘못난이와 야수’는 원작 ‘미녀와 야수’를 180도 비틀어버린다. 한 부자 상인이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을 두었는데 막내딸만 제외하고는 모두 미남 미녀였다. 하지만 막내딸은 마음씨도 착하고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지 않는 씩씩한 여성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야수의 정원에서 황금장미를 도둑질한 벌로 딸 한 명을 야수에게 시집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막내딸은 자진해서 시집을 간다. 더욱 놀라운 건 그녀가 야수의 외모가 아니라 기사도 정신, 고운 마음씨에 반해 둘이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는 점이다. 못난이와 야수는 비록 못난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잘난 외모가 주는 자기도취나 오만함 따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사랑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바버라 워커는 원작동화 낯설게 하기를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원작 ‘개구리 왕자’를 비튼 ‘개구리 공주’는 동양의 장자(莊子)식 역발상을 보여준다. 연못가에서 낚시하는 왕자를 사모하게 된 개구리가 어여쁜 공주로 변신해 꿈에 그리던 왕자와 결혼하지만, (인간의) 왕정생활이 맞지 않아 결국 다시 개구리로 변신한다는 이야기다. 새는 새답게 살아야 하는데 바닷새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새장에 가둬 고이(?) 기르다 결국 죽게 한 노나라 임금의 우화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의 단순함을 질타한 장자의 ‘지락(至樂)’ 편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막내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처럼 뭍에 사는 아쿠암 왕자를 사랑하는 인어공주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지 않고도 결혼에 성공해 세상에서 가장 수영 잘하는 딸을 낳기까지 하는 해피 엔딩이다. 아쿠암 왕자와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던 에스투리아 공주 또한 사랑하기에 평범한 인간 스클레피오와 야반도주까지 하는, 다시 말해 사랑과 인생은 왕(아버지-남자)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알라딘과 신기한 요술램프’에서는 알라딘이 여자로 성전환을 해, 공주와 함께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오리지널 알라딘과는 달리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부의 재분배’를 지시해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전쟁·계층·계급도 없는 이상향을 건설한다.

‘벌거벗은 여왕님’은 중국의 마지막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부자가 되고 싶은 자매는 착한 사람‘만’ 보이고 악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요술비단을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팔고 다녔다. 여왕은 정직한 신하와 그렇지 못한 신하를 가려내기 위해 그들을 궁전으로 부른다. 대신들이 앞다투어 비단이 잘 보인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여왕이 행차하는데 한 꼬마가 간도 크게 ‘여왕이 벌거벗었다’고 외쳤다. 아이의 어머니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오히려 여왕이 이번 일을 통해 진실이 없는 나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면서 나라를 개혁한다. 원작 ‘벌거벗은 (남자) 임금님’보다 훨씬 매력적인 (여자) 왕인 셈인데, ‘동안·얼짱·몸짱 열풍’에 미녀도 추녀도 괴로운 한국의 외모지상주의 세태를 꼬집는 동화로도 읽힌다.

바버라 워커의 창작동화인 ‘퀘스타 공주’는 마법에 걸려 몇백 년 동안 잠자면서 왕자의 키스 세례나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가 아니라, 오디세우스나 한비야처럼 진정한 자아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당찬 여성이다. 퀘스타 공주는 전쟁광인 아버지가 추진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기 싫어 입센의 노라처럼 가출을 하고 착한 어부와 결혼한다. 하지만 염치없이 뇌물을 바치라는 세금징수원에게는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면서 아내에게 화풀이하는 어부 남편과도 과감히 이혼을 감행한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어 시민혁명을 일으킨 그는 호전적인 기사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그들의 성과 토지를 빼앗는 대신 정직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주는 등 여자의 몸으로 나라를 훌륭하게 통치한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종속물이거나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모양처가 아니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여성 스스로가 실천하자는 메시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사랑과 인생 진정한 주인 일깨워

거꾸로 읽는 동화로는 또 캐나다 동화작가 로버트 먼치의 ‘종이봉지 공주’(비룡소)가 정평이 나 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멋진 성에서 살며, 결혼을 약속한 잘생긴 왕자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몹쓸 용이 나타나 공주의 터전을 불사르고 신랑감 왕자마저 빼앗아가 버린다. 공주는 입을 옷이 없어 종이봉지를 입고(그래서 종이봉지 공주다) 왕자를 구출한다. 그런데 왕자는 공주의 초라한 옷차림에 데면데면하게 군다. 결과는 공주가 ‘겉만 번지르르한’ 왕자를 냅다 차버린다.

미국 동화작가 엘렌 잭슨의 ‘신데룰라’(보물창고)도 ‘발상전환의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주인공 신데룰라는 신데렐라의 옆집에 사는 못생긴 소녀다. 하지만 신데렐라와는 성격이 딴판이다. 독립적이고 긍정적이다. 신데렐라가 울며 요정에게 행운을 하소연할 때, 신데룰라는 아르바이트를 해 신나게 돈을 번다.

어느 날 임금님이 무도회를 열자 신데렐라는 요정의 후원 덕분에 멋진 드레스와 유리구두를 얻지만, 신데룰라는 ‘알바’를 해 푼푼이 모은 돈으로 산 드레스와 불편한 납작구두를 신고 호박마차 대신 버스를 타고 무도회에 참석한다. 신데룰라는 셀프 음료수를 마시면서 소탈하고 진솔한 루퍼트 왕자와 춤을 추며 놀고, 신데렐라는 오리지널 귀족풍 랜돌프 왕자와 ‘시간을 죽이다’ 어느덧 자정이 되었다. 신데룰라는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신데렐라는 마법이 풀리기 전 귀가하기 위해 서두르다 신발 한 짝씩을 놓고 간다. 이후 랜돌프 왕자와 루퍼트 왕자는 각자의 이상형인 신발 주인을 찾아 전국을 헤매다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그런데 따분하고 무료한 궁중생활에 지쳐가는 신데렐라와 달리 재활용 공장장인 신데룰라는 오두막에서 텃밭을 가꾸며 유머러스한 랜돌프 왕자와 오순도순 살아간다. 과연 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구전문학과 동화에 담긴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사랑과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은 지구의 절반인 이 세상의 딸들이 ‘손수’ 선택할 여백의 미학이 아닐까.



주간동아 2007.11.20 611호 (p94~95)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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