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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위작’의 세계

돈 욕심에, 학습 위해, 골탕먹이려…

  • 최광진 미술평론가·전 화랑협회 감정위원

요지경 ‘위작’의 세계

요지경 ‘위작’의 세계

1980년대 후반 위작 논란에 휩싸였던 ‘미인도’를 가리키며 본인이 모르는 그림도 있냐고 반문했던 천경자 화백.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미술품 위작만큼 드라마틱하고 예술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만일 피카소 고흐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위조해 성공하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돈을 벌 수 있다.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도 몇십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미술은 독창적인 양식을 창조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사람의 것을 모방하기는 타 장르보다 수월한 편이다. 스포츠에서 타이거 우즈 같은 골프선수를 흉내내거나 음악에서 파바로티를 따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분야에서 모방은 훈련의 한 방법이고 대가들을 따라하는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미술은 대가들의 작품을 따라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조형예술임에도 그 가치가 창조성과 철학적인 사유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술품 위작은 작가의 정신과 혼이 없는 손기술의 산물이지만 일시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고,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것보다 우아하고 문화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위작자들을 유혹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고, 걸려도 처벌이 강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매력적인(?) 직업이 사회에서 근절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미술의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는 위작은 미술품을 돈으로 간주하면서부터 시작됐고, 오늘날 미술품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 위작사건이 화제가 됐다. 이중섭의 아들까지 개입됐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아들이라고 감기에 걸리지 말란 법 있는가. 바이러스는 저절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해 대처하는 것이다.

진품과 위작 사이



일반적으로 작가가 그렸으면 진품이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베꼈으면 위작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천당과 지옥을 획일적으로 나눌 수 없듯, 순수한 진품과 완전한 위작 사이에는 다양한 층과 차원이 존재한다.

위작은 모사에서 비롯된다. 작가들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에 도달하기 전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먼저 예술적 부모가 있어야 하고, 성장해 부모에게서 분가해야 한다. 부모가 없거나 분가를 못하면 대가 반열에 오를 수 없다. 학습기에는 대부분 스승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스승의 작품을 베끼는 것은 미술교육의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특히 동양화는 스승에게 체본을 받고 모사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학습기의 모작들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1960년까지 모작들이 국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심사위원들도 모작임을 알면서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이처럼 스승의 작품과 흡사한 모작은 스승이 죽은 후 위작자들에 의해 스승의 작품으로 둔갑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요지경 ‘위작’의 세계

천 화백의 ‘테베기행’(1984).
왼쪽이 진품이고 오른쪽은 가짜다.

그동안 소정 변관식의 대표작으로 알려졌던 ‘내금강 옥류천’도는 소정의 제자 조순자 씨가 소정의 지도를 받아 1963년 국전에서 입선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소정이 1976년 사망하자 누군가에 의해 ‘順子’라는 사인이 잘린 채 이듬해 ‘계간미술’에 실렸다. 그리고 곧 국내 유명 컬렉터 손에 들어갔고, 미술사가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발굴해 1985년 ‘청전과 소정전’에 출품했다. 그는 전시 도록에서 이 작품을 소정의 대표작이라 치켜세웠고, 이 작품은 1987년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근대회화 백년’전의 도록 표지에까지 실리는 영예(?)를 얻었다. 그 후 평론가와 학자들에 의해 소정의 대표작으로 둔갑돼 수많은 책과 논문에 실렸지만 조씨의 국전 입선작임이 밝혀지면서 미술계를 당혹하게 했다. 물론 소정 선생이 어느 정도 그려줬는가 하는 점이 쟁점으로 남아 있지만, 소정의 진품으로 볼 수는 없는 경우다.

진품을 능가하는 위작

요지경 ‘위작’의 세계

소정 변관식의 대표작으로 알려졌던 ‘내금강 옥류천’은 제자 조순자 씨의 작품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학습을 위한 모작이 변질되는 경우와 달리 처음부터 장사를 위한 위작은 좀더 악질적인 바이러스다. 서양에서도 위작은 깊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시민계급이 형성되고 개인의 문화 욕구가 높아지는 19세기 이후부터다. 현대 들어 미술시장이 형성되고 미술품이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자 위작을 사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가급에 해당하는 다빈치 렘브란트 세잔 고흐 등은 위작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고, 모딜리아니 코로 로댕 달리 샤갈 말레비치 등의 작품도 위작이 많다.

위작자들의 수준과 급수도 천차만별이다. 제1급 위작자들은 진품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전문가들을 골탕먹이기도 한다. 서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위작자는 네덜란드 화가 메헤렌이다. 그는 고전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을 좋아해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비평가의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을 혹평했던 베르메르 전문가인 에이브러햄 브레디위스 박사를 골탕먹이기 위해 그는 위작을 그렸다. 그는 17세기에 만들어진 캔버스를 구하고 베르메르가 사용했다는 붓과 같은 것을 사용해 4년 동안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이용, 300년이 지난 것처럼 보이게 그림을 굳혔다. 그리고 불에 구워 균열을 만들고 갈라진 틈에 검은 잉크를 채워 넣는 수법으로 ‘엠마우스에서의 만찬’을 제작했다. 그런 뒤 그 작품을 브레디위스 박사에게 보내 진품감정서를 받아냈고, 네덜란드 예술협회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그 그림을 사들였다.

본래의 의도와 달리 경제적으로 재미를 본 메헤렌은 그 후 몇 점의 위작을 더 그려 유통시켰다. 그중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조한 ‘간음한 여인과 함께 있는 그리스도’는 여러 사람을 거쳐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에 들어갔고, 이 그림이 연합군에 의해 발견되자 메헤렌은 나치에 국보급 미술품을 팔아넘긴 죄명으로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위기에 몰리자 그는 그 작품이 자신이 그린 가짜라고 고백했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3개월간 가택연금을 받으며 그는 ‘신전에서 설교하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을 제작해 자신의 위작 실력을 입증한 끝에 매국노에서 나치까지 속인 사기꾼으로 남게 되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요지경 ‘위작’의 세계

변시지 화백이 진품임을 확인한 작품(오른쪽 위).
아래는 위작이다.

국내 작가들의 위작 실태

국내에서는 이중섭 박수근 김기창 이상범 천경자 같은 인기 작가들이 위작자의 표적이다. 그 밖에 돈이 될 만한 작가들은 모두 위작이 있다고 보면 되고, 특히 그리기 쉬운 작품들이 선호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중섭과 박수근은 작품이 비싸서 그렇지 위작하기 만만한 작가들은 아니다. 이중섭은 골격미와 필력이 좋아 속도와 강약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박수근도 두꺼운 질감과 아스라한 선맛이 쉽지 않은 작가지만, 한탕주의에 물든 위작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화에서 위작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는 운보 김기창과 청전 이상범이다. 소정 변관식의 경우는 작품성은 있어도 적묵법을 따라하기 쉽지 않고, 성공해도 그림이 지나치게 어두워 인기가 없다. 그에 비하면 청전은 그림에 흥이 있어 따라하기도 재미있고 비교적 잘 팔리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특히 권춘식 씨가 위조한 청전의 작품은 전문가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지금도 주요 화집에 실려 있다. 운보는 그리기 쉽고 인기가 많은 1980년대 ‘바보산수’ 계열이 특히 위작이 많다.

천경자의 경우 최근 작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위작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미묘한 채색을 따라하기가 쉽지 않아 위작은 스케치나 간단한 그림이 많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미인도’는 작가가 위작이라고 해서 한동안 파문이 일었는데, 이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권씨가 교도소에서 인터뷰할 때 천경자의 ‘미인도’를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했지만 현대미술관의 것과 크기가 달라 사실이 아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위작 사건은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결론나지 않고 권위자의 안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향후에는 이우환의 작품에 도전하는 위작자가 많이 나올 것 같다. 그림이 간단한 데 비해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양심을 파는 근사위작

한편 위작은 아니지만 일부 주문량이 많은 인기 작가들은 공장처럼 시스템을 갖추고 직원을 채용해 작품을 대량생산하기도 한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화가인 루벤스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화실을 공장처럼 운영했다. 루벤스가 구상한 것을 대강 그려놓으면 제자들이 채색하고 그가 마무리하는 식으로 제작됐다. 요즘도 일부 인기 작가들이 주문량을 해결하기 위해 조수들을 이용하고, 심지어 전적으로 조수가 완성하기도 한다. 이것은 위작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순수성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 작가가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자기 작품을 보고 그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작가의 정신과 영혼이 탈각된 껍데기라는 점에서 근사위작이다. 이 같은 경우는 요즘도 비일비재하고 컬렉터들이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근사위작은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다. 피카소는 “다른 사람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자신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고 말하며 이를 경계했다.

21세기 문화시대의 생존력은 창의성과 독창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각 분야에서 문제 되고 있는 저작권과 짝퉁, 위작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항할 만한 백신 개발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과 데이터베이스(DB) 구축, 감정방법의 개선, 학술적 토론문화 정착 등은 위작 방지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610호 (p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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