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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부는 밉지만 스타트업은 살려야”

‘최순실 게이트’ 유탄에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 삭감… 모처럼 불붙은 창업 붐 꺼질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정부는 밉지만 스타트업은 살려야”

“정부는 밉지만 스타트업은 살려야”

[박해윤 기자]

“높은 경쟁률을 뚫고 8월에 입주했는데, 앞으로 서울시 예산이 끊기면 이곳에서도 나가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합니다. 회사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참인데,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해 일이 손에 안 잡혀요.”

11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혁신센터) 인큐베이팅센터에서 만난 의류스타트업 대표 김모 씨의 말이다. 인큐베이팅센터는 정부가 예비 스타트업에게 제공하는 입주공간으로, 이곳에 들어온 업체는 혁신센터를 통해 사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2014년 9월 출범한 혁신센터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대기업이 상호 협력해 스타트업의 활로를 모색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전국 17개 지역에 18곳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기존 창업지원 사업과 겹치고 대기업이 정부에 등 떠밀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원금을 낸다는 점에서 혁신센터의 ‘지속성’을 의심받았다. 지방 한 혁신센터 관계자는 “혁신센터를 처음 만들 때부터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 혁신센터가 계속 남아 있겠느냐’고 우려하면서도 정권에 밉보이기 싫어 기업들이 경쟁하듯 지원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혁신센터가 최순실, 차은택 등 ‘비선(秘線) 실세’들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혁신센터는 졸지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 또한 줄줄이 삭감되는 등 ‘존폐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서울시는 내년도 혁신센터 지원 예산 20억 원을 전액 편성 철회했으며, 전남도의회도 운영 지원비 10억 원을, 대전시의회는 15억 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 밖에 경기도의회는 15억 원의 절반인 7억5000만 원을 줄였고 대구, 광주, 울산 등 나머지 지자체는 정부의 내년도 예산 반영 상황을 봐가며 최종 규모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나마 정부 예산은 당초 예상과 달리 올해보다 8% 정도 감소하는 수준에서 조정됐다. 스타트업 관계자 상당수는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애먼 스타트업이 피해를 볼까 두렵다”고 입을 모은다.





스타트업 이미지 실추에 전전긍긍

창업전문가들이 혁신센터의 존속을 주장하는 것은 최근 일고 있는 벤처붐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2000년 벤처붐 이후 꺼진 창업 불씨가 최근 들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벤처투자는 2조858억 원으로 벤처붐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모태펀드와 공동출자해 해외 벤처캐피털(VC)이 운용하는 외자유치펀드가 국내 중소기업에 투자한 금액(720억 원)을 합산하면 벤처투자 규모는 2조1578억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센터 폐지 논란은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창업 생태계와 지역 유망 스타트업의 발현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3개월 전 서울혁신센터에 입주했다는 블루투스 스피커 스타트업 ‘이디연’의 이연택 대표는 “그동안 혁신센터를 통해 투자 유치를 비롯해 법률자문, 직원 채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고, 해외 수출과 관련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제 그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는 밉지만 스타트업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이다. 5월 경기혁신센터에 입주한 핀테크 보안인증 솔루션 개발업체 ‘KTB솔루션’의 김태봉 대표도 내년도 혁신센터 예산 삭감 소식에 애가 탄다. 경기혁신센터는 전국 혁신센터에 입주한 업체의 해외 진출을 담당하는 만큼 김 대표도 이곳에 들어온 뒤 해외 출장 때마다 항공료·숙박료·전시 부스 설치비 등을 지원받아 성장했다. 김 대표는 “정치 문제로 엉뚱하게 스타트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 예산 삭감폭이 더 커진다면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스타트업 관계자 상당수는 이번 최순실 사태로 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이 한꺼번에 매도되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입주했음에도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대기업 특혜 관련 내용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혁신센터와 최순실을 한 몸으로 보고, 이곳에 입주한 벤처기업도 어떤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러다 기업 이미지마저 실추될까 걱정된다”고 푸념했다.



청년창업사업 주도권 되찾으려는 서울시

“정부는 밉지만 스타트업은 살려야”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삭감되는 등 센터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위)[박해윤 기자].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내부. 입주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이번 정부 임기가 끝나면 혁신센터가 폐지되거나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각 혁신센터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분주한 모습이다. 대부분은 예산이 깎였지만 운영비와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더라도 입주기업들이 그대로 기업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정효진 서울혁신센터 팀장은 “혁신센터가 없어지면 지금 한창 시동이 걸린 스타트업이 구심점을 잃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지식이 융합된 신산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이 틈을 타 그동안 중앙부처에 빼앗겼던 청년창업사업 주도권을 다시 되찾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월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 스파크플러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서울혁신센터 입주 기업은 자체 평가 후 서울시 창업지원시설로 수용할 계획이다. 혁신센터는 대기업과 기관 주도의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형적인 지원 기관인 만큼 정권이 교체되면 가장 먼저 수술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서울시의 이 같은 ‘처방’이 달갑지 않은 눈치다. 과거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원구 소재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했다 최근 서울혁신센터로 옮겼다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서울시 지원 자체가 크게 의미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투자 유치와 관련해서도 지명도가 낮은 업체를 연결해주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혁신센터에서 진행하는 설명회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혁신센터가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관치’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만큼 진정한 스타트업 지원군으로 활약하려면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창업은 1~2년 안에 성공하기 어려운데 정부와 대기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센터 직원들도 창업지원보다 보고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혁신센터가 제대로 된 창업 생태계를 주도해나가려면 가장 먼저 ‘관치’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6.12.14 1067호 (p58~59)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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