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2

2005.11.29

한국과 거리 먼 미국의 대북 인식

북한 체제 상당한 변화 감지 못해 … 국무부 전문가들은 北핵·인권 문제에만 초점

  • 보스턴=선대인/ 통신원(하버드 케네디스쿨 재학)

    입력2005-11-23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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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거리 먼 미국의 대북 인식

    베이징에 모인 6자 회담 대표. 미국 조야는 6자 회담 결과에 대해 비관적이다.

    북한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순간 워싱턴 정가에서 신뢰를 잃는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발언이다. 미 외교문제 전문가들 사이에 자리 잡은 북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11월9일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열린 ‘북핵 딜레마’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 학교 안보전문가 애시턴 카터 교수의 시각도 마찬가지. 그의 발언 가운데 일부를 옮겨보자.

    “내가 지금 부시 행정부에 있다면 현재 상황을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어떤 조치(action)를 고려했을 것이다. 내가 (1994년 미 국방부 차관보로서) 클린턴 행정부에 있었을 때 북한 정권의 몰락을 촉진할 방안도 살펴봤다. 나는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북한은 미국 안보 위협하는 눈엣가시”로만 여겨

    북한은 협상대상 가운데 가장 비이성적(the most maddening) 나라다. 그들은 늘 속임수를 쓰고, 협상에서 진저리 나도록 제로섬 게임을 추구해왔다. 그들은 지난 6년 동안 핵으로 난장판을 만들고도 아무런 국제적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웠기 때문에 나는 6자 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우리는 좀더 강압적인 조치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6자 회담이 실패로 판명 날 때까지는 이 같은 강압적 조치는 실행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 거리 먼 미국의 대북 인식

    애시턴 카터 교수.

    비교적 온건 성향의 학자임에도 카터 교수의 대북 인식과 처방은 국내의 감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미국에 북한은 자국과 세계의 평화 및 안보를 위협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뿐이다.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는 외교 관련 정보는 미국 내 전문가 그룹이나 언론에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인식에서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셈이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나 교류 등에 관한 의미는 폄하되기 일쑤고,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개혁개방 노선을 걸을 가능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대신 우리로서는 생각도 하기 힘든 대북 공격이 이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정책 선택지로 공공연히 언급되기도 한다.

    대북 의료지원 단체인 유진벨재단 직원으로 최근 3년 동안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한 케네디스쿨 학생 새뮤얼(23)은 “북한 체제 내부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 같은 변화 모습을 알고 있는 미국 내 전문가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 국무부의 한반도 담당자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밀려 마지못해 업무를 맡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른바 전문가들도 북한을 핵 문제나 인권탄압의 측면에서만 바라볼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같은 상황 인식으로는 미국 내에서 북핵 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이 같은 미국의 접근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최근 케네디스쿨 주최 ‘포럼’에 참석, “지구상의 안보 위협은 많은 경우 빈곤 때문에 생겨난다”며 “미국에서 9·11테러로 수천 명이 숨졌지만, 지난 5년 동안 아프리카 각국에서 900만여명이 내전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군사비의 1%만 국제원조에 쓴다면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며 “빈곤이라는 근본원인을 제쳐두고 핵 문제나 테러리즘과 같은 현상만을 다루는 안보 체제는 허구적”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의 악행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미국의 북핵 접근법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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