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9

2005.11.08

중국 경제 숨고르기 시작?

11차 5개년 규획안 ‘조화로운 발전’ 표방 … ‘성장 속 균형 지향’ 새로운 실험 결과 주목

  • 베이징=김수한/ 통신원 xiuhan@naver.com

    입력2005-11-02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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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경제 숨고르기 시작?

    상하이의 화려한 야경과 도시 빈민가의 비참한 모습은 현재 중국 빈부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10월11일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6기 5중전회) 결과를 놓고 중국 내외 언론들은 “기존 성장 일변도의 중국 발전전략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중국 경제가 정말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인가?

    후진타오는 집권 2주년이 된 2005년 3월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넘겨받음으로써 당·정·군을 완전히 장악해 명실상부한 13억 중국인의 대표가 됐다. 16기 5중전회는 그 후 후진타오가 처음 주재한 중국공산당 전체회의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특히 핵심 의제였던 ‘제11차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5개년 규획안[(11차 5개년 규획, 16기 5중전회에서는 기존의 계획(計劃)이란 명칭을 청사진이라는 뜻의 규획(規劃)으로 바꿔 소프트하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안임을 강조하고 있다’에 현 지도부의 국정이념을 어떻게 담아내는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빈부격차 심화 발전의 걸림돌

    과거 마오쩌둥 시기의 계획경제 체제 아래서 매 회기 5개년 규획안은 전체 국가경제의 목표와 그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지침이었다. 이는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이 본격화된 뒤에도 경제 및 사회 발전의 중장기 로드맵으로서 기능해왔다. 그러나 과도기라는 특수성은 중앙정부의 선도적 구실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번 11차 5개년 규획안 역시 향후 중국을 가늠할 수 있는 중장기 국가 전략인 것이다. 이 규획안은 내년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회의에서 승인을 받아 시행된다.

    사스 여파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권력을 넘겨받았던 후진타오-원자바오 지도부. 집권 초창기에는 중국인들이 이들을 제4세대 지도부로 명명했으나, 이제는 ‘신(新)1기 지도집단’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후진타오 정부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권력을 공고히 해가면서 그들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음을 설명해준다. 후진타오 정부는 집권 이후 지속해온 국가 전략에 대한 논의들과 검증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 발전관’과 이에 기초한 ‘조화로운 사회 건설(和協社會)’이라는 국가발전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지난 25여년간의 개혁개방 정책 시행으로 중국은 세계 인구의 4분의 1, 무역총량 세계 4위, 연평균 성장률 8.8%, 2008년 올림픽 유치라는 가시적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도농(都農) 간, 그리고 내륙과 연해 지역 간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며, 이는 개인 간의 빈부격차 확대로 표출되고 있다. 빈부격차 심화는 시장화의 진전이라는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정부가 정책적·의도적으로 이를 용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의 개발 전략에는 ‘평등주의(均富論)’가 내재해 있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발전 전략에는 ‘선부론(先富論)’이라는 불평등주의가 포함돼 있다. “먼저 부자가 되는 사람 또는 지역이 생겨야만 뒤처진 사람들과 지역들도 따라온다”는 것. 물질적 인센티브를 강조한 이런 경향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시장경제 궤도에 올라선 장쩌민 체제에서도 계속됐다.

    현재 중국의 빈부격차는 각종 사회문제의 직접적 요인이 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소득 분포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52에 달해 위험 수치인 0.4를 훌쩍 넘어섰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중국 400대 부호들의 재산은 무려 6000억 위안(약 78조원)으로, 이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6%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상위 10위 부자의 재산을 합친 것만으로도 GDP의 1%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이런 상황을 총체적 균형 상실의 문제로 규정하고,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후진타오 정권의 ‘조화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국정 목표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중국 정부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금까지 정책 기조로 삼아온 덩샤오핑의 ‘선부론’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선부론’을 대체할 대전제로 ‘균부론(均富論)’을 제시하고 있다. 즉, 앞으로 중국의 정책은 경제성장의 파이를 어떻게 균등하게 나누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개혁보’는 이를 “살찐 데서 빼내어 마른 데에 보탠다(抽肥補瘦)”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인용해 소개한 바 있다.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있을까

    10월18일 전문이 공개된 11차 5개년 규획안은 예상대로 사회보장제도 개선, 빈곤인구 감축, 소득 및 생활수준 제고 등을 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빈부격차 해소 등 사회적 안정 문제를 중요한 기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후진타오 정부가 선택할 정책은 ‘균부’가 아닌 ‘공동부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차 5개년 규획안은 여전히 빠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규획안은 1인당 GDP를 2010년까지 2000년의 2배인 2000달러로 증가시킬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다.

    11차 5개년 규획안의 초안 작업에 참가한 저명한 중국 경제학자인 린이푸(林毅夫) 베이징대학 교수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현 중국 정부의 해법은 “부자의 몫을 떼어 가난한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총량 확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성장 일변도 정책 방향이 ‘과학적 발전관’에 기초한 ‘조화로운 사회 건설’로 조정된 것은 중국 내외에서 불거져나오는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병목으로 인식, 문제의 해법으로 여전히 ‘파이 키우기’에 기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6기 5중전회를 통해 ‘선부론’ 노선에서 ‘공동부유’ 노선으로 혁명적인 전환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공공정책 전문가는 “중국 정치의 맥락을 이해한다면, 경제정책에서 어떤 획기적 전환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새로운 정책을 기존 정책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록 후진타오 정부가 이전 세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개혁개방 원칙을 견지하는 속에서 공산당 주도의 중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똑같은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는 탈이념의 시대에 중국공산당 일당 집권을 정당화해주는 도구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전문가인 골든 화이트는 공산당 주도의 중국 시장경제를 “질주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 감히 내릴 수 없는(騎虎難下·Riding the Tiger) 형국”으로 묘사한 바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해 고속성장에 목맬 수밖에 없는 중국의 딜레마를 잘 설명해준다. 성장과 균형을 지향하는 후진타오 정부의 실험,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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