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5

2005.05.17

한나라당 反朴 세력 “어쩌나”

박 대표 위상 추락시켜야 하지만 차기 주자 위해 당권도 강화해야 ‘엇갈린 과제’ 속앓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5-11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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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反朴 세력 “어쩌나”

    4월3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당사 상황실에서 재보선 개표 방송을 보다 한나라당이 압승을 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4월14일 한나라당 혁신위원회(위원장 홍준표 의원) 위원들과의 만찬을 앞둔 박근혜 대표는 ‘작정’을 한 듯했다. 평소 박 대표의 술자리는 15명 내외의 흑기사들이 돌아가면서 지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마치 시위를 하듯 이들을 뿌리치고 폭탄주를 직접 제조, 한 잔을 마셨다. 참석한 인사들에게도 폭탄주를 만들어 권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폭탄주의 효력이었을까. 이날 반(反)박 진영의 핵심 홍준표 혁신위원장은 “박 대표는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며 다소 가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거머쥐었던 송곳은 주머니 속 깊숙이 찔러넣었다. 박 대표도 발톱을 숨기고 혁신위의 노고를 치하하는 가식으로 화답했다. 그 직후 껄끄럽던 두 인사의 화해론이 당내를 관통했다. 그러나 불과 2주일 후 이 화해론은 산산조각이 났다.

    “강하면서 모성 넘치는 새 이미지 구축”

    4월28일 국회 본청 의원식당에서 열린 혁신위 전체회의장. 4·30 재보궐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홍 위원장은 주머니 속에 숨겼던 송곳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현재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대신 의결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상 박 대표가 최고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단일성 지도체제인 현 체제를 흔드는 매우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홍 위원장은 이에 앞서 7월 조기전당대회 개최 및 박 대표 재신임 연계 시사, 책임당원제 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었다.

    지켜보던 박 대표의 숨겨진 발톱은 4·30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드러났다. 박 대표는 5월3일 “삼수의 실패는 없다”고 단언했다. 대표의 위상을 흔드는 데 대한 우회적 반박이자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고조시키는 고도의 계산에 따른 발언이었다. 때를 같이해 측근들의 지원포도 가동됐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4·30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박 대표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강(强)하면서도 모성이 넘치는 박근혜’ 컨셉트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를 “박정희의 강성과 육영수의 모성을 접목한 새로운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보수의 대연대’라는 새로운 전략 전술도 틀을 잡아가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이회창 전 총재를 비롯해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심대평 충남도지사 등 이른바 보수의 가치에 동의하는 세력들이 2007년을 전후해 결집, 정권 창출에 앞장서자는 것이 대연대론의 이론적 배경. 굳이 자신으로의 단일화 등과 같은 좁은 정치에서 벗어나겠다는 자신감도 묻어 있다. 박 대표는 5월 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러시아 방문도 준비 중이다. 대북특사는 이미 공개적으로 제안, 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쌓겠다는 복안을 노출했다.

    박 대표는 이런 새로운 이미지를 들고 당내를 유영하는 필패론에 맞설 계획이다. 박 대표 측은 이 필패론을 조직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세력으로 몇몇 인사들을 거론한다. 그 가운데 일부 인사가 혁신위에 포진해 있다고 믿는다. 7월 조기전당대회론이나 책임당원제 등과 관련 불필요한 갈등을 겪은 것도 혁신위의 ‘반박근혜’ 분위기 때문으로 평가한다. 4월28일 혁신위는 지도체제에 대한 변화를 시도, 이런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反朴 세력 “어쩌나”

    3월10일 국회 기자실에서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홍준표 위원장이 당 혁신 어젠더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28일 혁신위 전체회의는 지도체제에 대한 변화를 유도, 당 대표의 위상을 추락시키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당의장 총재 등과 같은 제왕적 대표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방안도 동시에 거론됐다.

    이날 혁신위원들은 여성위원장, 청년위원장 등 초선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상임운영위원회의를 폐지하고, 9명의 최고위원으로 구성되는 최고위원회의를 부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9명은 전당대회를 통해 뽑힌 선출직 5명과 당연직 2명(원내대표·정책위의장), 임명직 2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임명직 2명은 대표가 임명한다. 또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등이 실질적으로 당 대표와 동선이 같을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신설될 최고위원회의에서의 대표의 영향력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反朴’ 혁신위원들 목소리에 힘 빠져

    3총장제의 도입도 당 대표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혁신위는 사무총장 외에 홍보총장·전략기획총장 등을 신설, 업무영역을 갈랐다. 혁신위 한 관계자는 홍보와 전략 부분은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어떤 형태로든 보강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혁신위는 유명무실한 당원대표자회의와 운영위원회를 폐지하고 전국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혁신위원들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지위와 구실에 대해서도 새로운 원칙을 설정할 계획이다. 혁신위원들은 원내대표를 실질적으로 당 대표 밑에 두자는 것이 논의의 주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당 대표 명칭을 총재 또는 당의장 등으로 바꾸자는 안도 거론됐다. 모두가 당 대표의 권위와 힘을 강화하려는 흔적이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전 제왕적 총재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만 했다. 당 일각에서는 총재의 당 운영 방식이 민주적이라면 일사분란한 당의 운영과 효율적 업무를 위해 강력한 당 총재의 등장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대표 측은 혁신위와 당 일각을 관통하는 이런 흐름을 주목한다. 한편으로는 지도체제 개편 등을 통해 박 대표의 위상을 흔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 대표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이중적 동선에는 “조기전당대회를 추진하다 실패한 반박 진영 인사들이 박 대표의 위상을 약화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대표에게 힘을 집중시키려는 이중적 흐름을 연출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실체도 없는 사람을 위해 박 대표의 발 밑을 파헤치고 있다는 반응이다.

    박 대표 측은 4·30 선거 후 이런 흐름에 개의치 않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박 대표의 브랜드 파워가 그만큼 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당 혁신위의 결과물에 따라 격론이 불거질 조짐도 보인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여차하면 ‘거사’를 할 태세로 박 대표를 주시한다. 당내 비주류들 가운데 어차피 갈 길을 달리 정한 인사들의 이판사판식 저항도 조만간 고개를 들 것 같다. 그들은 4·30 재보선을 통해 박 대표의 힘을 보았지만, 그것이 정권 재창출의 지름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박 대표가 여전히 2% 모자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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