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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설 민심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현장에서 본 전국 민심 … “정치인 하는 일이 뭔데, 꼴도 보기 싫어”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그만 싸우고 먹고살게 해달라.”

지난해 추석 때 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치권에 던진 쓴소리다.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아우성이 전국을 뒤흔들었고, 이런 여론에 정치인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5개월이 지난 설 민심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주간동아’가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 전국의 설 민심을 살펴본 결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무모한 정쟁이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고, 그런 정치인들 꼴 보기 싫다며 TV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1월 26일 승객들이 대전역을 빠져나오고 있다.

대전 충청 ㅣ “행정수도 믿을 놈 하나 없슈”

이기진/ 동아일보 사회부 대전 주재 기자 doyoce@donga.com

“열린우리당은 기만하지, 한나라당은 뒤통수치지, 자민련은 도대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슈….”



1월27일 대전역에서 만난 택시운전기사 박민석씨(47)는 “지역 민심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대전과 충청 지역의 장기불황은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이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으로 생각했던 신행정수도 건설도 무산되자 극도의 허탈감과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대전과 충남 지역은 성난 민심이 수시로 표출된다. 25일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 면소재지. ‘행정중심도시 웬 말이냐. 정부 여당 각성하라’ ‘논밭 팔아 거지 됐네. 행정수도 즉각 추진’이라고 적힌 현수막 10여장이 곳곳에서 겨울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이 자리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후보지 결정을 환영하는 현수막으로 가득 채워졌던 곳.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된 데 이어 정부 여당의 후속대책조차 미흡하다고 판단한 주민들의 민심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석 달 전만 해도 ‘귀하신 나랏님(청와대)’이 고향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에 꿈이 부풀었던 이들이 맞는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방송에 나오는 설 풍경은 마치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모두가 행정수도 건설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다. 행정수도는 대전과 충남의 알파요, 오메가다. 이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대안 없이 민심 안정은 불가능하다.

“뭐유, 행정중심도시유? 그게 뭐 빌어먹는 거유. 이제 믿을 놈은 하나도 없슈.”

1월 말 연기군 남면 소재지 한 식당에서 만난 촌로는 대뜸 정부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놓는다. 여당이 행정수도 건설 무산 이후 후속대책으로 검토하고 있는 행정중심도시안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다.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국방부 등 주요 기관은 제외하고 경기 과천시 등에 있는 일부 행정기관만 옮기겠다는 이 안은 사실 열린우리당의 대(對)국민 설득 및 대야 협상안. 따라서 ‘원안 추진’을 줄곧 주장해왔던 충남북도와 대전시를 비롯해 각 시민사회단체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이마저 여당이 차일피일 미루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겹치는 2007년부터 보상과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민들은 허탈감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나랏님’에 대한 욕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수도를 옮긴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몸과 마음’을 다 줬지. 하지만 한 번 속지 두 번 속는지 두고 보자. 머리띠를 둘러야지.”(연기군 조치원읍 50대 주민)”

배신에 대한 분노는 생각보다 골이 깊다. 이런 정서는 향후 정부가 내놓을 각종 대책과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소지가 많다. 이미 그 징후는 보인다.

“정부의 최근 태도를 보면 이벤트 정권 같다. 한 가지 아이템(신행정수도 건설)으로 재미(2003년 대통령 선거)를 보고, 또 다른 꺼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다.”(신행정수도지속추진위원회 관계자)

한나라당도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다. 행정수도 좌절 이후 대전과 충남 민심은 한나라당을 ‘오적’으로 선정, 강한 불신을 표했다. 당황한 한나라당은 다기능복합도시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역 민심은 “‘차와 포를 뗀 빛 좋은 개살구”라며 시큰둥하다. 분노는 때로 스스로를 ‘찌르는’ 부메랑으로 온다.

“충청도가 또 한번 멍청도 되는 거쥬.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해봐유. 세종로가 수십 번은 막혔을걸유.”(50대 대전시민)

기대가 실망으로, 다시 분노로 바뀌며 그 공간 한 부분에 자학의 감정이 개입한 탓이다. 신행정수도 지속 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 한 관계자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을 이렇게 짓밟았으니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4월30일로 예정된 연기 공주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주시하라’고 경고한다. 우리당에 대한 “역풍이 불 것”이란 전망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대한 엄중 경고이기도 하다. 팽팽한 긴장감은 설이 설 자리를 빼앗는다.

“조상께 차례 지내고, 자식놈 얼굴 보고, 손주한테 세뱃돈 주고… 1년 동안 기다리던 명절 아닌가. 그런데 도통 신명이 나질 않아….”(대전 유성구 송촌동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1월 26일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새만금중단획책 전북죽이기 규탄 범도민 총궐기대회' 모습.

전북 ㅣ “새만금 조속 완공하랑게”

김광오/ 동아일보 사회부 전주 주재 기자 kokim@donga.com

1월26일 오후 2시. 전북 전주시 중앙동 전북도청 앞 광장. 새만금 사업 지속 추진을 요구하는 도민 1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새만금 중단 획책 전북 죽이기 규탄 범도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대회 참석자들은 “1조7000억원을 투입한 새만금 사업이 서울행정법원의 조정권고안으로 또다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며 “당초 계획대로 조속히 완공하라”고 주장했다.

요즘 전북은 새만금에 ‘모든’ 것을 걸었다. 새만금을 지키려는 도민들의 결의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민족 명절인 설을 맞았지만 새만금에 쏠린 눈길을 좀체 되돌리지 않는다. 전북도 한 관계자는 “사실 새만금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물경기도 말이 아니다. 전주의 가장 큰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4)는 “설 대목이지만 대목을 느끼는 상인은 거의 없다”며 “이보다 더 나빠질 수야 없지 않겠느냐”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그래도 지난해 전주시에서 재래시장 리모델링 사업으로 간판도 바꿔달고 지붕도 갈아씌워 심리적으로나마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춥고 배고픈 현실이 주는 부담감을 떨치기는 쉽지 않은 눈치다. 과거 전주의 중심 상권이었던 중앙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모씨(52·여)는 “가게를 내놓은 지 1년이 지났어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다”며 “앞으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소매 영업은 힘들어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씨는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친척들이 모여 정치나 사회 문제는 거의 화제에 올리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전주를 벗어난 지역 군소도시나 농촌지역에도 이런 여론이 상륙한 지 오래다. 밭 1400평에 대파를 재배한 전북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오형철씨(51)는 산지 가격이 지난해의 30% 선인 200평당 50만여원에 불과해 내다 팔지도, 폐기하지도 못하고 있다. 설 대목을 겨냥해 1년 내내 대파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가격 폭락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해 가을 김장철을 앞두고 무와 배추 값이 폭락해 곳곳에서 멀쩡한 무 배추를 트랙터로 갈아엎은 데 이어, 올 들어서는 대파와 양파 가격이 폭락해 대파 주산지인 부안에서는 요즘 대파를 갈아엎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북도는 설을 앞두고 대파 가격 안정을 위해 올해 도내 대파 재배물량의 9.6%를 수매해 폐기할 예정이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북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이 몰고 온 후유증이다.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 사업 조정권고안을 발표, 전북의 민심에 찬물을 끼얹던 1월17일 문화관광부는 전남에 무려 37조원이 투입될 해양관광레저단지를 조성한다는 이른바 ‘J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연일 ‘광주와 노무현, 참여정부의 남다른 연을 입에 올리지만 정작 이웃한 전북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수사를 동원한 적이 없다. 신행정수도 무산에 따른 충청 민심을 달래는 정부의 태도도 전북으로서는 차별의 전주곡으로 들릴 여지가 많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갖가지 민심 수습안이 부럽다는 지적도 터져나온다. 행사 참석자들은 “전북도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새만금 사업이 중단 위기를 맞았어도 정부나 대통령은 전북에 대해 단 한마디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고 있다”고 성토한 이유도 이런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반발 심리가 출발점이다.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1월 26일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새만금중단획책 전북죽이기 규탄 범도민 총궐기대회' 모습.

전남이나 충남에 비해 전북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은 갈수록 커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민심을 읽은 강현욱 도지사와 정길진 도의회 의장, 송기태 전주상공회의소장 등은 26일 행사에서 전방위로 정부를 질타했다. 특히 강 지사는 지사직을 거는 정면승부수를 던졌다. 이런 흐름은 이미 1월17일부터 싹텄다.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 등 관계자 3명이 21일 전북을 찾아 전북도와 상공회의소, 지방 언론사 관계자를 만나 지역 여론을 듣기도 했다. 그들에게 전해진 민심은 “새만금 사업을 중단할 경우 도민들의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에서는 중앙 정치권에서 활동 중인 지역 출신 정치인들에 대해 기대감이 높다. 참여정부 출범 후 전북 출신 정치인들의 전진배치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1월23일 중앙 언론은 일제히 ‘국회수뇌부 전북천하 시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이 같은 흐름을 구체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국회의 3대 핵심 포스트인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를 모두 전북 출신이 맡고 있다. 지역구는 서울 중랑을이지만 전북 무주 출신인 김덕규 국회부의장을 포함하면 그야말로 국회는 ‘전북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러나 전북의 현실은 이런 외형적 화려함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점이 낙후된 전북 발전의 밑거름으로 활용되는 발전적 피드백이 형성돼야 함에도 현실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새만금 찾기에 나선 전북은 따뜻한 설을 맞을 여유가 없다.

광주 전남 ㅣ “자부심 반 소외감 반 애증알아?”

김의양/ 광주CBS 기자 key6104@hanmail.net

광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에서 20년째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이모씨(58). 그의 하루는 피폐해진 광주 경제와 민심의 한 자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루 손님 10명을 받기도 힘들다. 전체 점포의 30% 이상이 문을 닫았다. 문을 연 가게도 개점·휴업 사태를 맞고 있다.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이씨가 느끼는 실물경기는 사실 최악이다. 시장 상인들과 늘 하는 말이 “IMF 때도 이렇지 않았다”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시장 상인들은 이번 설 쇠는 일이 무엇보다 고민이다. 설 경기는 애초 포기한 지 오래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하는지, 내일에 대한 계획을 짤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설을 찾아 고향을 찾은 자식들의 팍팍한 삶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것도 부모로서 못할 짓이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설이 부담스럽고 낯설다. 서모씨(62·양동시장 포목점)는 “팍팍한 살림살이가 그 잘난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화풀이를 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삶의 질 향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실물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가 줄을 이었지만 정부가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4대 개혁 입법이나 과거사 청산이 그렇게 급한 일인가. 정치권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나는 요즘 TV 뉴스도 보지 않는다.” 그의 화풀이는 요즘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장사가 안 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광주는 민주와 인권, 문화와 예술의 본고장이다. 광주 시민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산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점도 자부심의 일부로 존재한다. 그 자부심이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 대통령이 지역 출신 인재들을 두루 발탁해 탕평의지를 보이고, 40여년 구악을 일소하며 개혁을 부르짖을 때 남들보다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참여정부와 광주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거리감은 갈수록 커졌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권력 핵심 인사에서 지역 출신 인사들이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분당을 추진하는 과정에 광주의 민심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탄핵 역풍으로 총선은 우리당을 선택했지만 그 이후 광주·전남 지역은 노 대통령과 우리당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광주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지난해 말 불거진 대규모 수능부정 사건을 소화하기도 힘든 상태인데 또다시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의 직원 채용비리 사건이 터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삶의 활기를 잃은 지역 민심은 심한 자괴감에 빠져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사면초가에 빠진 지역 민심은 그래도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에 대해 한 가닥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삼성전자 백색가전 생산라인이 광주로 이전했고, 기아자동차는 스포티지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광산업을 중심으로 한 첨단기업 유치와 대기업 콜센터도 잇따라 개소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이 장기 침체로 허약해진 광주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 이해찬 총리가 “KTX 호남선의 경제성에 회의감이 든다”고 문제를 제기, 지역 민심을 자극했을 때에도 더욱 큰 틀의 민생대책에 기대하며 감정을 추스렸다. 설을 맞는 광주의 민심은 중앙 정치권에 대한 애증(愛憎) 교차 바로 그것이다.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동대구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운전기사.

대구 경북 ㅣ “밉상이라고 해도 너무한데이”

이권효/ 동아일보 사회부 대구 주재 기자 boriam@donga.com

‘현 정권에서 대구와 경북은 계속 찬밥 신세가 될 것이다. 폐쇄성을 버리고 개방적인 태도를 키워야 미래가 있다.’

대구·경북 지역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금껏 ‘방황하는’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는 상당 부분 참여정부에서 정치적·지역적·정책적 차별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대구·경북 특유의 지역적 폐쇄성을 빨리 극복하는 것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태권도공원 경주유치추진위원회는 최근 서울 행정법원에 “태권도공원 부지를 전북 무주로 선정한 문화관광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추진위 측은 “이 소송은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입김에 의해 국책사업이 결정되는 잘못을 시정한다”는 태도다. 추진위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경주대 황정환 교수는 “정부가 특정 지역을 이미 선정해놓고 경주 등은 들러리로 세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국책사업이 이처럼 비합리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 지역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서 호남권과 충청권에 비해 ‘밀린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태권도공원을 비롯해 공공기관 유치, 동해권 개발, 연구개발 특구 지정 등 굵직한 사안에서 이른바 TK는 ‘은근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수도 위헌 결정 이후 정부 정책의 큰 틀이 ‘충청권 달래기’에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꽤 있다. 경북도의 한 국장급 간부는 “정부 정책이 흘러가는 전반적인 과정을 보면 충청권만 달래면 다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정부 정책이 이런 식으로 가면 지방분권이나 균형발전이니 하는 것은 모두 빈말 아니냐”고 했다.

또 대구시의 한 간부는 “예산 문제나 지역 현안을 설명하기 위해 중앙부처를 방문해보면 대구·경북에 대한 썰렁한 느낌이 와 닿는다”며 “현 정권이 대선 때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은 데 비해 그렇지 않다고 보는 대구·경북이 ‘예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최근 대구 출신의 우리당 이강철 집행위원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 임명된 것은 지역에 적잖은 기대감을 주고 있다. TK 지역에서 우리당 지역구 의원이 한 명도 없는 마당에 이 수석은 TK와 정부를 연결하는 ‘고리’ 구실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당 대구시당 이재용 위원장은 “이 수석은 그동안 TK를 위해 열심히 뛰었고 성과도 거뒀지만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지역적 한계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며 “이수석 임명을 계기로 지역의 여야가 힘을 모으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한나라당도 긍정적이다. 대구시지부 김외철 사무부처장은 “지역 처지에서 볼 때 이 수석의 임명은 여야를 떠나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이 수석이 지역에 애착이 강한 만큼 앞으로의 할 일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대구 최고의 번화가 동성로.

하지만 이 같은 ‘정치적’ 시각도 이젠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과거 박정희 정권 이래 정권과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해온 관행 탓인지 지역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사회 각 분야의 자생력이 취약하다는 진단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앙정부 탓만 한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연구원 홍철 원장은 대구·경북 지역에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의 지원보다 ‘지역적 개방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산업적 차원에서 대구의 문제는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를 구태여 정치적으로 연관지을 필요가 있겠느냐”며 “‘준비된 자가 얻는다’는 말처럼 정부 지원을 기다리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로 지원을 따내려는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천대 총장을 역임한 홍 원장은 인구가 비슷한 대구와 인천을 비교해보면 대구가 폐쇄적이고 침체됐다는 느낌”이라며 “정권이나 정부의 지원 문제와는 별개로 시민과 기업, 자치단체 등 지역 구성원들의 개방성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구대 홍덕률 교수(사회학)도 “TK 지역이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억울해하기보다는 생각을 바꾸는 태도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더라도 지역 차원의 기획력과 설득력 같은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게 점점 더 중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거시적 이야기와 달리 보통 주민들의 느낌은 훨씬 구체적이고 미시적이다. 그 실체는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기자가 최근 대구와 포항, 구미에서 택시를 타고 다녀본 느낌도 이와 비슷했다. 말을 붙이기가 무섭게 체념과 푸념이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구에서 17년째 택시 운전을 하는 50대 기사는 “다른 지역이라고 경제 사정이 별반 나을 것도 없겠지만 요즘은 진짜 힘들다”며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는 탓인지 대체로 움츠려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살기 팍팍 한숨 저절로 명절은 무슨 명절”

부산 자갈치시장 전경.

부산 경남 ㅣ “여당도 야당도 다 싫다카이”

이주환/ 부산일보 정치부 기자 jhwan@busanilbo.com

열린우리당에 대한 부산 민심은 원래 비판적이다. 이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우리당이 18석 중 겨우 1석만 챙긴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참여정부에 대해 ‘부산 정권’인 만큼 일부 기대감이 있는 것이 감지되기도 하나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소외감, 설을 앞둔 대목 경기침체 등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1월27일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60대의 김모씨(여)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대뜸 “김대중(DJ) 전 대통령 때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나은 게 없다”며 “경기가 이래 가지고 대목을 치러내겠느냐”고 쏘아붙였다. 같은 날 서면에서 만난 문모씨(44·식당업)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러 가지 정책이 나왔지만 부산 경제가 나아지는 느낌은 전혀 없다”며 “설을 앞둔 요즘 매상이 2~3년 전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이다. 정부가 부산 경제를 알기는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부산 민심이 악화된 데는 행정수도 이전 추진도 한몫했다. 생산직 근로자인 김병학씨(46·부산 남구 감만동)는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행정수도 이전이나 충청 민심 달래기 이야기만 나왔지, 부산에 뭐 해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행정수도 이전 논란 속에 오히려 부산은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경기도 충청도만 발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얼마 전 각종 매체에 보도된 부산항의 수출입 물량이 인천국제공항에 뒤졌다는 통계는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부산발전연구원 황준동 연구원은 “부산 시민들은 그래도 국내 수출입화물은 대부분 부산항을 통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인천국제공항에 뒤졌다는 뉴스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악화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도 있었다. 1월12일 부산을 방문한 이해찬 총리가 “미국 하얄리아부대 부지 무상 양여는 불가하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이 총리의 발언은 곧바로 하얄리아부대가 있는 부산진구 주민들은 물론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시민단체 회원들과 부산진구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등은 곧바로 이 총리의 무상양여 불가 방침 발언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결의대회장에서는 “오만불손한 총리를 몰아내자” “우리당을 안 찍어서 평택과 차별대우한다”는 등의 험악한(?) 말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일부에서 감지된다. 이는 참여정부가 부산 정권이고,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부산사단’이 정권 핵심부에 포진해 있는 만큼 이들이 부산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부산시청의 한 간부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퇴임 후 부산에 와 살 생각인 것으로 안다”며 “그럼 부산이 망하도록 내버려두겠느냐”고 말했다.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고, 성공적으로 행사가 치러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부산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란 점도 시민들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세도 약화되는 분위기다. 우리당에 대한 비판이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선다기보다는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평화시장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는 한 40대 남자는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압도적으로 찍어줬는데 부산 국회의원들은 자기들끼리 편 갈라 싸우기만 하고, 부산 챙기는 데는 입만 내민다”며 “우리당도 싫고 한나라당도 싫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6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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