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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엉뚱한 요구 “왜 이러나”

무산 가능성 큰 ‘SK 임시주총’ 고집 … 경영진 압박용인가 주가 끌어올리기인가 ‘의견 분분’

소버린, 엉뚱한 요구 “왜 이러나”

소버린, 엉뚱한 요구 “왜 이러나”

3월12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 정기주주총회에서 소버린 측이 발언하고 있다.

정말 모르겠다. 되지도 않을 일을 왜 하나.”(시민단체 ‘참여연대’ 관계자)

“진의를 알 수 없다. 공개적으로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는 애널리스트들이 오히려 용감하다는 생각마저 든다.”(정유·화학 전문 모 애널리스트)

SK㈜의 2대 주주 소버린자산운용이 정기주주총회를 4개월여 앞두고 느닷없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한 데 대한 반응들이다. 소버린은 SK 주식 14.99%를 보유하고 있다.

소버린이 내세운 이유는 이렇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혐의로 기소된 이사는 형 선고 확정 때까지 직무수행을 정지하고, 형 선고가 확정되면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넣어야 한다는 것. 이런 식이라면 지난해 분식회계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중인 최태원 회장은 즉시 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최회장을 직접 겨냥한 것이 분명한 소버린의 임시주총 요구는 결론적으로 무산될 공산이 크다. 현재 SK 이사회는 최회장 등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모두 소버린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소버린이 추천한 남대우 사외이사마저 “그간 이사회는 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강화 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실적도 좋다. 소버린이 왜 저러는지 어리둥절할 따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임시주총 요구가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버린은 법원의 허가를 얻어 주총을 소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구 자체의 법적 정당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형 선고가 확정되면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내용은 이미 올 3월 정기주총에서 부결된 사안이어서 ‘3년 이내에는 주총에 동일 안건을 상정할 수 없다’는 요건에 위배된다. ‘기소된 경우 직무수행 정지’ 조항도 형 확정 전에는 무죄로 본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설사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때는 이미 내년 3월 정기주총을 코앞에 둔 시점이 된다.

일부에선 ‘최회장 흔들기 일환’ 시각도

또 소버린이 정말 기업가치 제고에만 관심이 있다면 정관 개정은 내년 정기주총 때 다뤄도 될 일이다. 마침 내년은 최회장의 3년 이사 임기가 만료돼 재신임을 받아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관계자가 “임시주총 요구는 모종의 목적을 위한 소버린의 ‘쇼’인 셈”이라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버린의 속내는 무엇일까. △경영진을 압박해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규모 확대를 이끌어낸다 △주식시장에서 SK 문제를 다시 이슈화하고 영향력을 확인한다 △주가를 끌어올려 SK의 경영권 방어 여건을 불리하게 몰고 간다 △주주 성향 파악을 통해 내년 주총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등이 이제껏 나온 해석들이다. 실제로 소버린의 임시주총 요구로 SK 주가는 크게 올랐다. 주식시장의 전반적 저조에도 나흘 연속 상승해 10월27일 사상 최초로 6만원을 돌파한 것. 소버린의 ‘도발’이 계속되는 한 연말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리라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이에 대해 정유·화학산업 부문의 한 유명 애널리스트는 “소버린은 장기 투자 세력이다. 러시아 등 신흥개발도상국이나 자본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는 국가의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 주식을 대량 매집한 뒤, 오랜 작업을 통해 주가가 목표치에 도달하면 비로소 이익을 실현해왔다. 따라서 단기 주가 상승이나 배당수익 증대 등을 노렸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주주 성향 파악설’이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임시주총을 개최하면 주주 명부를 폐쇄하게 된다. 현행법상 주주는 누구든 그 회사의 주주 명부를 열람·등사할 수 있으므로 소버린은 최회장 측 우호지분 구성 등을 미리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임시주총이 무산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유명 애널리스트는 “결국 지속적인 ‘최회장 흔들기’의 일환이라 보면 된다. ‘기업인의 도덕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이 현 경영진의 유일한 견제 세력이며 주주 이익 극대화의 진정한 대변자임을 재확인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일 뿐, 실제 목표는 다른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이익 극대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버린은 현 SK 주가를 6만원으로 상정할 때 이미 1조1300여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이미 충분한 수익을 거둔 만큼 경영권에 욕심 낼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장부상의 이익을 실제 이익으로 치환해 생각한 결과다. 객관적으로 볼 때 소버린이 가장 안정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길은 경영권 쟁취 또는 SK로부터 ‘적정 시가로 보유 주식 전량을 사들이겠다’는 ‘항복 선언’을 받아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주식을 내다팔 경우 SK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소버린의 이익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SK가 소버린 보유 물량을 모두 인수하는 것은 현 상태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최회장 측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회사 자산으로 블록 딜(대규모 수량을 한꺼번에 매매하는 것)이나 그린 메일(경영권을 담보로 보유 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되파는 행위)을 시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버린이 경영권을 가져가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다.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 주식을 모두 팔고, 해외 유전 개발 등 리스크가 큰 투자를 포기하며, 주주 배당 위주의 정책을 폄으로써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 여기 더해 SK 경영권을 원하는 세력이 있을 경우 지분에 대한 대가는 물론 30~70%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획득 가능하다.

SK 관계자는 “그런 만큼 소버린으로서는 최회장 퇴출에 노력을 집중하고, 설사 그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시달리다 못한 SK 경영진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거래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버린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떨까. SK 주주들로서는 소버린의 등장으로 지속적인 M&A 재료가 생겨 상당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모 애널리스트도 “SK 경영진의 긴장도가 높아져 투명경영 추진 등 회사가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소버린은 지난해 3~4월 SK 주식을 집중 매집하면서 “우리는 헤지 펀드가 아니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는 가치투자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의 상황을 돌아볼 때 소버린은 헤지펀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증권가의 일반적 분석이다. 소버린은 아일랜드 출신의 챈들러 형제가 운영하는 펀드로, SK 주식 매집에 조세 회피지역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소재 페이퍼 컴퍼니 크레스트증권을 동원했다.

물론 헤지펀드의 일반적 정의 중 하나가 ‘단기 이익을 노린다’는 것인 만큼 장기 투자를 주로 해온 소버린을 헤지펀드라 단정짓기는 힘들다. 내세운 명분 또한 SK 경영의 투명성 확보이며 일정 부분 성과도 거두어 참여연대조차 공식적으로는 분명한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참여연대 측이 소버린에 대한 ‘호의와 기대’를 접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참여연대 측 “소버린 정체 확인할 길 없다”

올 봄 주총을 앞두고 참여연대 관계자는 챈들러 형제가 머물고 있는 모나코로 날아가 “최회장이 등기이사에서는 물러나되 지배구조 개선을 전제로 경영권은 인정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소버린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참여연대 측은 “소버린은 투명경영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물리친 채 표 대결에 나서 결국 패했다. 현재로서는 그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가치투자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더라도 주주들로서는 “누구든 주주 이익 극대화에 나서주면 그만”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소버린을 포함해 주주의 61.18%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상황을 즐기는 모양새다. 그러나 회사의 본질 경쟁력 향상을 통한 안정적 고수익 달성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SK가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할 경우 회사의 본원 가치 창출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창현 명지대 교수(무역학)는 “SK가 우리나라의 유일한 해외 유전 개발업체이자, 국내 세력이 경영권을 갖고 있는 마지막 정유산업체라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미국만 해도 1988년 제정된 엑손-플로리오 법을 통해 에너지 컴퓨터 반도체 방위산업 등 중요 업종의 경영권을 방어해주고 있다. 국익 보호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04.11.11 459호 (p42~43)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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