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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도덕적 해이’ 누가 말려줘!

경영 부실 책임 퇴진 박종식 회장 6월 컴백 … 공적자금 수혈받고도 잘못된 경영 행태 등 구태 계속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수협 ‘도덕적 해이’ 누가 말려줘!

수협 ‘도덕적 해이’ 누가 말려줘!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2000년 부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셨죠?”(이철우 의원)

“네.”(수협 박종식 회장)

“그런데 빚이 100억원이 넘습니까?”(이의원)

“100억원은 안 됩니다.”(박회장)

10월19일 국회의사당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 수협중앙회(이하 수협) 국정감사에서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이철우 의원(열린우리당)은 박종식 회장의 개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으로 질의를 시작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수협 회장을 지내다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박회장은 올 6월 회장으로 컴백했다.



박회장의 컴백으로 알 수 있듯 공적자금 투입 이후에도 수협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다. 역대 회장들과 관련해 연거푸 터져나온 의혹들과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방만한 수협의 경영 행태 때문이다.

수협이 구조적으로 부실해지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 15대, 16대 이방호 회장(현 한나라당 의원) 시절부터라는 게 수협 안팎의 평가다. 이 전 회장 시절에 뿌려진 부실의 씨앗은 17대, 18대 박종식 회장 재임 기간에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95년 156억원이던 당기 순손실이 97년 397억원, 98년 3283억원, 99년 1337억원, 2000년 6167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이에 따라 수협은 2000년 1조1580억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수혈받는다.

물론 수협 내에서는 박회장보다 전임 회장들의 부실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전임 회장 시절의 부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외환위기 이후 투명경영 원칙이 강조되면서 한꺼번에 드러나게 됐다는 것. 수협 관계자는 “어쨌든 공적자금이 투입돼 수협의 생명이 연장된 것은 박회장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부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공적자금 투입 초기 수협은 성공한 구조조정 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10월14일 임명된 강무현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차관(전 국립수산과학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 시절 수산정책국장을 맡아 수협 개혁을 주도한 인사. 그는 재정경제부 등을 설득, 수협에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질식사하기 직전이었던 수협을 살려내 당시 노무현 장관의 신임을 얻었다. 노대통령은 수협 개혁을 장관 시절의 치적으로 여긴다고 한다.

수협은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으면서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약정서에 서명했다. 경영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합리화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 공적자금 투입 이후 수협의 손익 구조는 어느 정도 개선되기는 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으로서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평범한 금융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계속되는 모럴해저드로 인해 속으로는 또다시 곪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게 나온다.

수협의 모럴해저드는 거푸 터져나온 지도부의 비리 의혹에서 출발한다. 직선제가 도입된 90년 이후 5명의 수협중앙회장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이로 인해 수협 직원들의 사기는 크게 저하돼 있다. 일부 회원조합 임직원들의 비리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상임감사 선거 비리, 회원조합 부정 비리 등이 잇따르고 있다. 올 초 상임이사 A씨가 불미스런 사건으로 물러난 뒤 5월 차석홍 전 회장이 비리 의혹으로 사퇴했고, 6월 컴백한 박회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다시 제기되기에 이른 것. 박회장은 과거 회장 재임 시절 문제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수협 ‘도덕적 해이’ 누가 말려줘!

수협의 자회사인 노량진 수산시장의 풍경.

정치 논리로 1조1580억원 투입 … 거푸 터져나온 지도부 비리 의혹

박회장은 또 2000년 물러나면서 퇴직금에 대한 압류나 감액 없이 1억1600여만원을 모두 수령해 갔다. 수협 직원들은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담당자가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고 손실금액을 배상하도록 돼 있다. 2001년 이후 현재까지 71명의 직원(69건)이 1인당 평균 4500만원씩 모두 31억9974만원을 배상했다. 그런데 박회장은 단 한 푼도 물어내지 않은 채 수협을 떠나버린 것이다. 박회장은 이후 열린우리당 수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은 “수협 부실과 방만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회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수협 수장들의 모럴해저드는 회장선거 방식에서 기인한다. 직선으로 뽑힌 각 조합장들이 모여 투표로 회장을 선출하는 구조는 수협 안에 여러 파벌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회장이 바뀔 때마다 임직원에 대한 ‘인사 태풍’이 불어닥쳤다.

게다가 수협은 ‘부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신용사업에서 번 돈을 다른 사업에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신용·경제·지도 부문이 따로 떨어진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인 것. 이렇다 보니 사업 부문간 알력이 끊이지 않아 협력은 고사하고 갈등만 빚고 있다는 게 수협 안팎의 평가다. 투서와 비리 고발이 난무하는 것도 부문 갈등, 파벌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모럴해저드는 고위직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검찰이 박회장의 부정대출 지시 의혹과 관련해 조사한 S토건 20억원 대출사건의 경우를 보자. 이 대출 건에 책임 있는 전직 수협 간부들에 대한 수협의 대처는 ‘느슨하기만’ 하다. S토건 대출 당시 여신심사위원장을 지낸 이모씨(65)와 여신지원부장을 지낸 또 다른 이모씨(61)는 2003년 12월4일 법원으로부터 수협중앙회에 각각 7억원씩 변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수협은 거의 1년째 이들에게서 단 한 푼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수협의 채권관리부 관계자는 “둘 다 재산이 한 푼도 없어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하면서 “10년간 이들 명의의 재산을 찾지 못하면 영영 못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협 ‘도덕적 해이’ 누가 말려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한 직원이 얼음을 옮기고 있다.

신용·경제·지도 ‘한 지붕 세 가족’ 파벌로 나뉘어 갈등

과연 그럴까. ‘주간동아’ 취재 결과, 여신심사위원장을 지낸 이씨의 경우 재산을 빼돌린 흔적이 발견됐다. 현재 이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 주상복합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데, 이 오피스텔의 소유자는 결혼 후 경남 진해에 살고 있는 그의 딸로 돼 있다. 그의 딸은 2001년 6월 이 오피스텔을 매입했는데, 바로 한 달 전 이씨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자신 소유의 단독주택을 팔았다.

공교롭게도 이씨가 집을 처분한 때는 공적자금 투입을 전후해 금융감독원이 수협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시점과 일치한다. 변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재산을 숨겼을 경우 사해행위취소청구소송을 통해 되찾아올 수 있지만 앞서의 수협 관계자는 “이씨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자 “기억하기 싫은 일이다.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수협 퇴직자 단체인 수협동우회 내 골프모임 ‘수초회’에 가입해 각종 골프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럴해저드는 자회사와 회원조합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지적이다(상자기사 참조). 최근에는 수협 자회사인 노량진수산㈜의 한 팀장이 얼음판매 대금을 횡령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수협 자체 감사 결과 규정을 위반한 관련자도 공적자금 투입 이후 2002년 57건에서 2003년 60건, 2004년 7월 80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직원들의 부조리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계도가 어렵다”고 말했다.

수협 ‘도덕적 해이’ 누가 말려줘!

수협은 공적자금 투입을 계기로 대대적인 내부혁신 운동에 나섰다. 2001년 4월 열린 재도약 수협은행 선포식.

수협은 2001년 7월부터 이른바 ‘신수협 운동’을 벌여왔다. ‘수협의 경영 이념인 어업인과 회원조합 본위 경영’ 및 ‘협동 체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모든 업무를 기초에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행 3년이 넘은 지금도 실적 평가기준 등 세부 추진 방안이 마련된 것은 거의 없다. 신수협 운동을 놓고 구호성 행정의 전형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협은 공적자금 투입 이후에도 인건비 상승률이 높고, 상여금 지급 수준 또한 상당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여금의 경우 1000%(상여금 600%, 보건단련비 400%)에 달하는 것은 물론, 본봉에 직급수당 직무수당뿐만 아니라 일부 기타 수당을 합친 금액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이는 본봉과 직무수당, 직급수당만으로 연간 700%의 상여금을 지급하는 농협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건비 상승률 높고 상여금 지급 수준도 상당

수협은 또 2002년 이후 임직원의 급여를 꾸준히 올려왔다. 특히 회장의 경우는 공적자금 투입 이듬해 8752만원에서 1억9560만원으로 1억808만원을 늘렸고, 대표이사와 감사의 총급여도 7232만원에서 1억5600만원으로 116% 인상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어도 이러한 수준의 급여 인상과 상여금 지급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임원들의 퇴직금 기준도 ‘허리띠 졸라매기’와는 거리가 멀다. 수협 신용사업 부문 대표이사의 퇴직금 지급률은 연봉의 50%에 달한다. 4년을 일하면 퇴직금으로 2년치 연봉을 챙겨가는 셈이다. 이는 업계 최고 수준. 3억5000만원의 연봉을 받는 산업은행 총재의 경우 매년 연봉의 10%가 퇴직금으로 적립된다.

게다가 대표이사는 지난해 1억300만원, 올해 7700만원의 성과급까지 받았다. 성과급에서 손실이 날 경우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퇴직금 비율을 높였다는 게 수협 측의 해명이다. 그러나 성과급의 기준이 되는 일부 실적 항목의 목표치는 지난해 성과보다 오히려 낮은 경우도 있었다.

요컨대 노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여길 정도로 의욕적으로 시작된 ‘수협 개혁’은 회장들의 연이은 비리 의혹과 임직원들의 계속된 모럴해저드로 ‘절반의 성공’도 어렵게 됐다는 평가다.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수협의 행태를 보니 답답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수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수협중앙회장과 일선 조합장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협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고 했다. 해수부의 이런 태도는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았다가 뒤늦게 외양간이 무너질 것 같다’고 법석을 떠는 격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주간동아 459호 (p18~21)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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