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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케냐 ① 마사이족

문명 앞에 창 내려놓은 ‘초원의 전사’

  •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 magenta@kornet.net

문명 앞에 창 내려놓은 ‘초원의 전사’

문명 앞에 창 내려놓은 ‘초원의 전사’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 깡마른 체구에 붉은 천을 두르고 긴 창을 든 흑인들이 몸을 낮추고 매서운 눈초리로 무언가의 뒤를 열심히 쫓고 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초원의 왕, 사자. 길게 늘어진 귓불과 목의 치장이 유난히 돋보이는 이들은 맨손으로 사자를 잡는 용맹성으로 널리 알려진 마사이족이다. 이들 마사이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케냐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무대이기도 했던 케냐. 영화 속에서 횡으로 열을 지어 맨발로 평원을 달리던 마사이족을 만나기 위해 나는 케냐의 마사이마라 초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윌슨 공항에서 30인승 비행기로 대초원에 펼쳐진 마사이마라 사파리 캠프 중 하나인 ‘시나라’로 이동했다. 희뿌연 날씨를 제치고 다른 두 군데의 캠프를 거친 후 시나라 캠프 인근 비행장에 내렸다. 말이 비행장이지 잘 닦인 활주로는커녕 비행기 바퀴자국만 어지럽게 널린 맨땅이었다.

시나라 캠프의 풍경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확 트인 대초원에 풀로 엮어 만든 집으로 이루어진 캠프에는 전기가 들어와, 호롱불 모양의 램프가 있고 더운물도 나오는 시설이 우리의 별 3개 호텔에 버금가게 꾸며져 있었다. 하루 세 끼 식사도 호텔 수준이다.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를 거친 탓과 서부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관광 대국이기 때문인 듯싶다.

문명 앞에 창 내려놓은 ‘초원의 전사’
내가 마사이족을 처음 만난 곳은 캠프 메인 식당 앞 마사이족 전통 공연장에서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는 9시 반경, 20여명의 마사이족이 특유의 붉은 천을 두르고 창과 방패를 들고 괴성을 지르며 공연을 벌였다. 훤칠한 키에 빼빼 마른 체형의 이들은 인근 촌락의 마사이족으로 이 캠프를 찾은 관광객을 위해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30여분간 진행된 이 공연은 마사이족의 무용담을 담은 것으로, 재빠르게 움직이고 연신 하늘로 뛰어오르는 춤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공연을 끝내고 퇴장하자, 이틀 전부터 이곳 식당에서 공연을 봐왔다는 20대 초반쯤의 수다스러운 영국 아가씨들이 ‘원더풀’을 외치며 마사이족에게 몰려갔다. 뚱뚱한 몸매에 주근깨가 얼굴에 가득한 그녀들은 온몸을 흔들며 마사이족 춤을 흉내냈고, 다시 한번 뛰어보라고 요구하거나 기념사진을 찍느라 그들의 팔을 세차게 흔들어댔다. 본국에 돌아가 하나라도 더 자랑할 이야깃거리를 만들고픈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때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던 용맹한 마사이마라 초원의 주인에게 단 몇 실링을 쥐어주며 이런저런 포즈와 행동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마사이족의 얼굴에서 모멸감과 그렇게 전락해 버린 전사의 처량함도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나를 담당한 운전사 겸 안내원과 사파리를 떠났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입구까지 20여분을 달려갈 즈음 소 떼를 몰고 나오는 마사이 소년을 보았다. 촌락에서는 밥 짓는 냄새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어릴 적 우리의 시골과 비슷한 이 풍경이 전날의 씁쓸함을 조금 사라지게 했고 아직도 유목을 하면서 생활하는 마사이족이 있다는 생각에 흐뭇함마저 들었다.

국립공원 입구. 한눈에 봐도 엉성하게 만든 민예품을 차창 안으로 내밀고 몇 케냐실링을 외치며 “달러로 계산하면 더 싸다”고 유창한 영어로 말하는 마사이 여인을 보면서 관광객을 접대하는 마사이족이 아닌, 옛날처럼 평범하게 삶을 꾸리고 있는 그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마사이족 전통 촌락으로 혼자라도 가고 싶다며 운전사 겸 안내원에게 말했더니, 그는 그럴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얼마간의 돈만 내면 마사이족 촌락에 갔다 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참 편리해서 좋다는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던 마사이족의 모습이 깨어져버려 더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호기심에 그 행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돈 받고 관광객에게 개방한 촌락이지만 그 모습은 석기시대를 연상시킬 만큼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문명 앞에 창 내려놓은 ‘초원의 전사’
마사이 촌락은 한마디로 표현해 ‘소똥의 마을’이라 할 수 있었다. 소를 가장 큰 재산으로 여기는 탓에 생활의 많은 부분이 소와 연결되어 있다. 소를 키우고 그것을 주식으로 살며, 소똥을 짓이겨 집을 짓고 소똥을 연료로 하다 보니 그들의 거주지에서는 소와 소똥 냄새가 자욱했다. 토담집은 높이 2m 내외로 둥글게 짓고, 원형 경기장처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터가 촌락 가운데 있었다. 집 출입구는 초원으로부터 침입하는 동물을 막기 위해 유난히 비좁게 만들어놓아 어른은 들고날 때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집 안을 구경하고 나오니 조금 전에는 평범한 복장을 했던 한 마사이족이 귀고리며 팔찌 따위로 치장하고 서 있었다. 귓구멍을 여러 개 뚫어 장신구를 하여 귓구멍을 늘어뜨리고 깃털로 얼굴 주위를 장식해 마치 추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듯했다. 핏빛보다 진한 색의 줄무늬 망토를 걸치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10여분간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은 마치 철저하게 잘 짜여진 극본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연극배우를 보는 것 같았다.

문명 앞에 창 내려놓은 ‘초원의 전사’
마사이족의 가장 큰 소망은 소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고 이를 돌볼 일손, 즉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원시부족처럼 일부다처를 고수한다. 이들에게 섹스는 쾌락의 대상이라기보다 아이를 낳기 위한 생산 활동이었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소년 소녀들의 할례나 성인식, 전사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 등은 마사이족이 이 초원에서 용맹을 떨치는 밑거름이 돼왔다.

원래 마사이족은 동아프리카 일대에서 1년 내내 무리 지어 소를 키우는 유목민이었다.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 정착하여 살기보다는 초원을 누비며 살기를 원하는 민족이다. 소를 그들의 독점물로 여기는 신화에 근거하여, ‘부당하게’ 소를 소유한 다른 종족으로부터 약탈하는 일조차 ‘의무’로 생각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사이족은 여타 아프리카 원주민과 끝없는 투쟁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초원을 누비며 소를 키우고 사자 사냥을 하는 마사이족의 모습은 이제 그림 또는 기록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마사이족의 후예들에게도 문명의 이기는 찾아왔고 이 민족 특유의 붉은 천을 두르기보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찾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 탓에 오늘날 마사이족은 UN의 원주민 보호대상에 올라 있을 만큼 극히 적은 수만이 옛 전통을 고수하며 살고 있다.

사파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유유자적하게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사이족 부자에게서 그나마 우리가 꿈꾸고 생각했던 옛날 용사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어 위안이 되었다.





주간동아 317호 (p88~89)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 magenta@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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