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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기자의 세상 속으로

의원회관에 울려 퍼지는 ‘네 박자’

  • 조용준 기자

의원회관에 울려 퍼지는 ‘네 박자’

의원회관에 울려 퍼지는 ‘네 박자’
해마다 9월 정기국회 시즌이 되면 국회 의원회관이나 맞은편 도서관 등은 연말까지 하루 걸러 꼴로 북새통을 이룬다. 의원들의 후원회 때문이다.

금배지의 무게는 철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무게가 제일 무거워지는 정기국회 시즌에, 경비가 적게 드는 국회로 후원회가 몰리다 보니 어떤 날은 하루 두세 명의 의원이 후원회를 여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 오후 국회 안은 온통 난장판이다. 대형 관광버스가 여기저기 불법주차를 하고, 떼지어 몰려다니는 지역구민의 소란은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한다. 이런 일들이 정치 발전만 담보한다면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후원회가 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의원회관 로비에 뷔페 음식이 차려진다.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음식 먹는 과정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여흥 시간을 때우는 가수들의 노래로 절정을 향한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른 뒤의 의원회관은 난장(亂場) 그 자체다.

언제부터인가 의원의 후원회에는 가수가 나와 노래부르는 것이 빠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버스 타고 도시락 까먹으면서 후원회 구경 오는 사람들이 주로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보니 가수들은 트롯 가수 일색이다. 요즘 민주당 의원 후원회에 빠지지 않는 가수는 송대관씨다. 민주당 의원 후원회 날에는 영락없이 송씨의 ‘네 박자’나 ‘차표 한 장’ 등이 울려 퍼진다. 지난 12월13일 열린 김옥두 의원의 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의원회관에서 설운도씨가 한창 떴다. 이 때문에 정권과 트롯 가수는 흥망성쇠를 같이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의원의 후원회에 여흥 프로그램이 웬말이냐, 후원회가 이처럼 ‘딴따라 판’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그러니까 정치도 삼류, 유권자도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뭐가 어떠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원회 문화’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 후원회에서 나오는 축사나 치사를 들으면 하나같이, 그 사람이 없으면 나라가 망할 지경의 찬사 일색이다. 대통령감이 그렇게 많은데 나라는 왜 이 모양인지…. 요즘 한나라당 의원들의 후원회는 한술 더 떠 차기 정부의 무슨 장관감이라는 덕담이 단골 메뉴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청중은 자기들끼리 칭찬하면서 우쭐거리거나 말거나 도통 관심이 없다. 뷔페로 저녁 한 끼 때우고, 인기 많은 트롯 가수 얼굴 한번 보거나, 흥나면 막춤이라도 한바탕 추고 버스에 올라 집에 가면 그만이다. 어디에 도로를 깔았네, 예산을 얼마나 따냈네, 신문 지면에 얼마나 났네 하는, 자화자찬으로 도배된 의정보고서는 읽히기도 전에 쓰레기로 전락하기 일쑤다. 마치 제왕의 초상화처럼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한 후원회 포스터의 각종 구호가 낯뜨겁지 않은가.

금배지들의 ‘후원회 문화’는 분명 소비적 허례허식에 함몰돼 있다. 그래서 위기의식마저 없다.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최근 열린 민주당 김원기 고문의 후원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의 의정보고서는 어디를 보아도 ‘예산을 얼마나 땄네, 신문에 얼마나 났네’가 없었다. 대신 ‘함께 생각해 보는 우리 정치의 개혁과제: 진단과 대안’에 대한 외부 필자의 글 몇 편만 덩그라니 실려 있었다. 본행사에서도 여흥 프로그램은 노래 잘하는 후원회원이자 지역구민의 노래와 거문고·아쟁 등 국악 연주로 끝냈다. 처음에는 이마저도 없애려 했지만 너무 급격한 감이 없지 않아 마지못해 넣었다는 설명이다. 식사 시간도 30분 정도로 짧게 끝냈다. 후원회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새기게 하는 행사였다.

김원기 의원실의 김찬호 보좌관은 “몇몇 의원실에 우리 후원회 문화를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취지는 좋다면서도 모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후원회 바꾸기 운동은 계속할 참이다”고 말한다.

너무 작은 얘기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정과 개혁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주간동아 2001.12.27 315호 (p74~74)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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