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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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수사권’ 국정원-검찰 파워게임

국정원 단독입법 예고 검찰서 제동 … “공안권력 주도권 장악 시도” 인권단체도 비판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1-25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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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수사권’ 국정원-검찰 파워게임
    테러방지법안 입안과정에 국가정보원과 관련 부처 간 ‘파워게임’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특히 국정원 고위간부들의 ‘3대 게이트’ 연루와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축소ㆍ은폐 사실이 잇따라 불거져 가뜩이나 양 기관에 대한 쇄신여론이 비등한 상황이어서 각각 정보와 수사를 독점한 두 기관 간에 법제정을 둘러싸고 미묘한 난기류가 형성됐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더한다.

    ‘마찰’의 핵심요인은 테러수사권의 국정원 귀속문제. 실제 국정원이 대(對) 테러 업무 권한을 움켜쥐기 위해 ‘무리수’를 둔 ‘징후’가 적지 않다.

    국정원이 지난 11월12일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단독 입법예고한 ‘(가칭) 테러방지법 제정(안)’은 전문 33개조와 부칙 5개조로 된 법안. 테러대응대책 협의기관인 ‘국가 대테러대책회의’(의장 국무총리)를 주관하는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을 국정원장이 맡고, 국내외 대 테러 정보수집, 작성, 기획·조정, 수사 등 테러 관련 업무를 총괄할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에 둔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또 국가정보원법 제2조를 개정해 테러수사권을 부여하고 관련 법규도 개정해 대테러센터의 권한을 보장한다는 것. 이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직접 테러수사권을 갖겠다는 의미다.

    이런 국정원의 ‘독주’에 즉각 반응을 보인 기관은 법무부. 법안 기안자인 국정원이 수사권까지 거머쥘 경우 검찰 수사권과 충돌을 빚을 가능성을 우려한 법무부는 11월15~16일 언론을 통해 국정원이 관계부처와의 협의 없이 입법예고부터 했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어차피 기소는 검찰이 할 텐데 국정원이 굳이 수사권을 갖겠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검찰의 견제는 사실상 지난 10월부터 시작됐다. 한 검찰 관계자의 귀띔이다. “지난 10월31일 국무조정실 기획심의관 주재로 관계부처 실무협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이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한 채 너무 촉박하게 법 제정을 서두른다는 몇몇 부처 관계자들의 불평이 잇따랐다. ‘대 테러 업무도 일종의 공안업무인데 대검이 제외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법안내용도 문제거니와 입법과정도 지나치게 졸속이다’는 요지의 발언까지 터져나왔다. 대다수 참석자들이 이에 공감했다.”



    테러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므로 통합ㆍ조정권이 부여된 테러방지 상설기구인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기보다는 관계기관들이 각자 고유기능을 수행하면서 전문 수사기관인 검찰이 테러수사를 담당하는 게 검찰청법이나 정보수집업무에 비중을 둔 국가정보원법의 입법취지에도 맞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국정원은 또 법안작성 이전에 사이버테러 관련 업무까지 맡을 계획도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사이버테러 관련 내용을 법안에 넣을 것인지 검토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가 기존 정보통신기반보호법으로도 충분하다며 난색을 표했고, 아직 사이버테러의 개념 정립조차 제대로 안 된 상태여서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수사권 장악’ 징후는 또 있다. 국정원은 입법예고기간 마지막 날인 11월21일에 임박해 홈페이지에 아무런 공지도 없이 이미 입법예고한 법안을 일부 손질한 새 법안을 갑작스레 올렸다. 전문 29개조와 부칙 2개조로 구성된 새 법안에선 묘하게도 11월2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5개 인권·사회단체가 개최한 ‘국가정보원의 테러방지법안 국회상정 저지를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자의적 법 해석에 따라 인권침해 소지가 많다고 집중비판된 참고인 구인·유치조항과 구속기간 연장조항이 삭제되고 불고지죄 조항도 완화된 것. 특히 논란을 빚은 테러수사권 규정도 삭제됐고, 공교롭게도 당초 법안에선 국정원·군·경찰 등 9개 부처 합동으로 대테러센터를 구성한다고 한 내용을 새 법안에선 검찰을 새로 추가해 10개 부처로 수정·명시했다.

    그럼에도 인권단체들은 “국정원이 공안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고 비판한다. 테러수사권 명문규정을 삭제해 표면적으론 국정원이 2선으로 후퇴한 듯 보이지만, 대신 법안 곳곳에 국정원의 과도한 수사권을 용인하는 조항들을 분산해 놓았다는 것. 또 입법예고기간을 일반 법률(20일 이상)의 절반인 10일로 끝내고 공청회조차 열지 않은 것은 대 테러 대책의 시급성을 빙자해 국정원의 권한 강화를 꾀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것이다. 내년의 월드컵을 의식한 대 테러 대책이라면 검·경찰 조직과 기존 법체계로도 충분하며, 오히려 테러방지법안이 ‘테러’만큼 심각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긴급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울산대 이계수 교수(행정법)는 “현행법하에서도 국정원은 이미 광범한 테러정보활동을 펴고 있는데 새롭게 테러방지법안을 통해 관련기관들을 지휘하려 한다”며 “특히 테러사태시 동원하는 군병력에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권한을 부여한 것은 헌법이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부정한 것으로 공권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사무국장(34)도 “국정원이 새 법안을 낸 것은 여론을 의식해 가시적인 문제조항을 수정하는 ‘눈가림’으로써 인권침해 시비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인권단체들은 그 근거로 긴급토론회장에 국정원 관계자가 참석했음을 든다.

    반면 국정원측은 “입법 예고기간엔 얼마든지 법안내용을 손질할 수 있지 않느냐. 새 법안을 홈페이지에 올린 시점은 11월19일쯤이다. 아마 인권단체들이 법안 변경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 같다”고 답했다. 국정원측은 또 입법예고기간 만료일인 11월21일까지 법안에 대한 단체 및 개인 의견을 물은 결과 관련부처 의견서는 접수됐으나 인권단체들은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한 번 바뀐 법안은 한 차례 더 내용이 수정될 전망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수사권 문제를 비롯한 두 번째 법안의 문제점들에 대해 국정원측에 강력히 의견을 개진했고, 11월22일 열린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도 같은 문제들이 논의돼 곧 세 번째 법안이 나올 예정이란 것. 법무부 한 관계자는 “최근 수사권 관련 조항의 추가 수정문제를 국정원과 협의했다”고 말했다.

    11월23일 “세 번째 법안의 윤곽은 어떠하냐”는 ‘주간동아’의 물음에 국정원의 한 실무자는 “국정원이 독자적인 테러사건 수사를 하지 않고 검찰이 사법경찰관으로 지명한 국정원 직원들이 검사 지휘 아래 수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의 기안자가 된 것은 국무총리실이 대 테러 업무를 오래 담당해 온 국정원에 법안 마련을 맡긴 때문일 뿐 국정원 권한 강화를 위해 일찌감치 ‘밑그림’을 그려왔다는 인권단체들의 의혹 제기는 어불성설”이라 답했다.

    이와 관련, 국무조정실 기획심의관실 관계자는 “법안은 다음 주(11월26일~12월1일) 중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상정된다. 법안 통과는 12월8일까지인 정기국회 회기 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세 번째 법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법안은 항상 수정될 수 있다”며 함구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진통’은 이어질 전망이다. 67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조직인 ‘국정원의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은 11월22일 국가인권위원장과 국회의원들에게 ‘테러방지법 제정(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의견서’를 전달한 데 이어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테러방지법안 국회 통과 저지투쟁을 공식선언했다.

    테러방지법안은 9·11 미국 테러사태 직후인 9월25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테러대책 강구를 위해 지시한 사항. 내년 5월 개최될 월드컵 행사를 앞두고 제정 시기가 촉박한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권한 남용으로 국정을 어지럽힌다는 쓴소리를 들어온 국정원과 타 부처 간 최종 의견조율이 어떤 모습의 법안으로 나타날지 더욱 주목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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