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4

2001.10.04

“사모님, 족집게 과외 한번 시키시죠”

불법 부추기는 ‘과외중개사’ 활개 … 부유층 상대로 고액과외 알선 소개비 챙겨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2-28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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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님, 족집게 과외 한번 시키시죠”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주부 김모씨(48)는 최근 낯선 여자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전화 내용인 즉 “족집게 선생이 있으니 아들에게 과외를 시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생면부지의 여자였지만 김씨는 전화를 끊지 못했다. 상대방 여자가 강남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고3)의 이름과 성적까지 정확하게 꿰는데다, 아이의 친구와 학부형 사례까지 들먹거렸기 때문.

    “친구 ××군은 모 선생님에게 과외해서 사탐(사회탐구) 영역 성적이 엄청나게 올랐는데 왜 쭛쭛이는 과외를 하지 않죠. 당장 과외를 시키지 않으면 쭛쭛이는 낙오될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들이 모두 유명학원 강사고 족집게로 소문난 분들입니다. 현직 선생님도 가능한데….”

    솔깃한 그녀는 한 달 과외비가 100 만 원이라는 말에 놀라 “그냥 됐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저희는 학원 소속 직원이 아니라 전문대행사 직원이고 학부형에게 소개비를 전혀 받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30만~500만 원선까지 금액별로 선생님을 준비했습니다. 맞춤형 과외도 있고요. 꼭 연락주세요.” 김씨는 그제서야 그들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과외 전문 소개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밤늦게까지 이런 전화를 받는 학부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지역과 분당·일산 신도시 등에 사는 학부모 중에는 이런 전화에 익숙해 익명의 여자와 흥정하는 부모까지 있을 정도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녀의 이름과 성적까지 정확하게 알고 전화를 걸어오는 이 여자들이 바로 시중 학원가에서 ‘과외중개사’라는 사람이다. 일명 ‘컨택’(contact) 또는 ‘교육원 선생님’이라고도 알려진 이들은 자신들을 과외수업(이하 과외)의 수요자(학생)와 공급자(과외선생)를 가장 적정한 가격으로 연결해 주는 ‘전문중개사’라고 표현한다.



    “사모님, 족집게 과외 한번 시키시죠”
    과외를 정부가 공식 허용한 터라 과외 중개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이를 전문적으로 한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비난 받는 까닭은 수가 너무 많아 자칫 과외시장의 과열을 부추기고, 현행법상 과외가 금지된 미신고 과외 선생이나 현직 선생님의 불법 과외를 종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달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돈(중개비)을 벌면서도 세금 내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은 과외중개업이 가진 불법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서울지역에만 2000여 명, ‘교육원’은 100여 개 정도 있어요. 혼자 하는 프린랜서에서 교육원 소속, 학원 소속까지 형태도 다양합니다. 돈이 된다고 하니까, 학원도 그만두고 중개업만 하는 원장님도 많습니다.”

    서울지역 프리랜서 과외중개사 이모씨(30)는 이미 과외중개업계도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 이후 과외가 양성화하면서 중개업자들이 대폭 늘었다는 것.

    이씨는 대학 졸업 후 불법과외를 하다 지난해 과외중개가 더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5월 모 학원에 취직해 학원 강사와 학원생들의 과외를 연결시켜 준 이씨는 석 달 후인 지난해 8월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한 후 프리랜서 과외중개사로 독립했다. 독립 후 그녀가 중개 일로 벌어들인 수입은 월 평균 1000만 원 정도. 100만 원짜리 고액 과외 10건만 성사시키면 그 정도의 수입이 들어왔다. 보통 과외 시작 첫 달 선생이 받는 과외비를 중개사가 소개비로 챙기는 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에 자기 몫을 받는 데 별 어려움도 없었다. 친구 중에서 현직에 있는 교사들을 모두 고액 과외선생으로 동원했고, 학원에서 근무한 시절 알아둔 강사와 대학교 게시판 광고로 모집한 대학생이나 시간강사(대학원생)도 그녀의 과외선생 리스트에 올라 있다. 물론 모두 미신고 과외선생으로, 교육청에 적발되면 과태료 감이고 현직 교사는 파면 대상이지만 이씨에게 법적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과외가 불법인 시절에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중개사가 한 달치 과외비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그만둘 때까지 한 달 과외비의 20~30%를 계속 받았다고 합니다. 심한 곳은 절반이나 떼어가 대학생 과외선생들이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고발한 적도 있다는군요. 그러나 이제 그런 곳은 없어요. 우리는 전문직입니다.”

    지난해부터 2년째 프리랜서 중개사로 뛴 김모씨(27)는 최근 오히려 과외중개사 30여 명을 아래에 두고 ‘체계적’으로 중개하는 ‘B교육원’에 들어갔다. 프리랜서 중개사 수가 폭증하면서 대학 입시제도 변화와 학생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는 이 업계에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본급을 정하고, 과외 성사 건수에 대해 수당을 주는 곳도 있지만 김씨가 속한 곳은 교육원측이 건당 소개비의 20%를 가져간다. 대신 교육원측은 중개사들에게 최신 입시정보나 과외업계의 추세, 과목별 과외선생에 대한 정보, 학부형에 대한 정보 등 과외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사무실을 포함한 제반 시설을 제공한다.

    비록 수입은 절반쯤(월 평균 400만 원)으로 줄었지만 불법 과외선생 확보에 대한 책임을 원장이 지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하지만 이 교육원도 교육청에 학원 등록을 하거나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증을 내지 않는 무등록 업체기는 다른 업자와 마찬가지. 원장은 물론, 직원 또한 단 한푼의 세금이나 의료보험료도 내지 않는다.

    “사모님, 족집게 과외 한번 시키시죠”
    그렇다면 교육원측과 프리랜서 과외 중개사들은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아내며 그 많은 과외선생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구하는 걸까. 답은 의의로 간단하다. 초·중등학교 졸업 시즌이 끝나면 이들 업자는 무가지에 ‘앨범 구함, 1만 원 사례’라는 광고를 내거나, 각 학원의 학원생 또는 학원장에게 돈을 주고 앨범을 산다. 앨범 뒷면에 실린 졸업생 연락처를 얻기 위해서다. 일단 한 학교의 학생을 연결하면 중개사들은 학생과 친분이 있는 학생의 집부터 전화를 걸어 학부모의 애간장을 녹인다. 주로 친구를 비교하며 과외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빚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렇게 해서 다른 학생을 연결하면 또 그 학생에게서 다른 친구에 대한 성적과 성격 등 신상정보를 캐낸 뒤 그 학생의 어머니에게 친구의 집을 소개시켜 줄 것을 종용한다.

    과외선생 구하기도 이들 중개사에겐 그렇게 어렵지 않다. 과외시장은 아직도 수요보다는 공급 쪽이 넘치기 때문. 학원 원장 출신인 서울시 강남구 A교육원 원장인 하모씨는 “현직 교사라도 100만 원 이상 고액을 제시하면 대부분 응한다. 모 교사는 워낙 ‘콜’이 많아 새벽에도 수업할 정도다. 잘 나가는 학원 강사도 널렸고, 대학생들은 대학 근처에 방을 붙이면 3시간 안에 모집이 끝난다”고 설명한다. 특히 일부 프리랜서 중개사들은 학부모에겐 적당히 둘러대고, 과외가 성사되면 그때부터 선생 모집에 나서는 ‘얌체족’도 있다는 게 하원장의 귀띔. 그는 “심지어 프리랜서 그룹 중 중저가 과외인 대학생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중개사들이 모여 일류 대학 앞에 2~3개씩 사무실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교육 질서를 혼란시키고 사교육비를 폭증시키는 주범이 바로 과외중개사라는 비판인데도, 현행법상 이들을 처벌할 근거는 전혀 없다. 서울시 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정재헌씨는 “현행 학원법에는 과외 교사와 학습자와의 관계만 규정할 뿐 이를 중개하는 사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세법상의 처벌만 가능할 뿐이다”고 말한다. 과외 허용에 따라 파생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교육 당국의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과외금지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만 원망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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