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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섬과 사람들 | 신안 홍도

파도가 온몸으로 빚은 ‘바위의 향연’

파도가 온몸으로 빚은 ‘바위의 향연’

파도가 온몸으로 빚은 ‘바위의 향연’
섬여행을 하기에는 역시 다도해(多島海)가 으뜸이다. 홍도를 떠나 목포항으로 나오는 배에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접시 물처럼 잔잔한 바다, 그 이름처럼 많은 섬들….

홍도에서 머무는 2박 3일 동안의 날씨는 퍽 쾌청했다. 여태껏 다녀본 수십 차례의 섬 여행 중에서 가장 완벽한 날씨였다. 그러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하나같이 선경(仙境)이다. 우뚝 솟은 해벽(海壁)의 질감이 멀리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가파른 벼랑에서 해풍(海風)에 하늘거리는 원추리꽃의 때깔은 어디서나 선연하다. 게다가 시야가 사방으로 탁 트인 덕택인지, 몸과 마음은 공중에 떠 있는 듯 가뿐하다. 가랑잎처럼 떠 있는 작은 섬 홍도에 붙은 ‘다도해의 진주’ ‘서남해의 해금강’이라는 수사가 허투루 지어진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그런 절경 속에선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폭염(暴炎)과 곳곳마다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조차도 기꺼웠다.

목포항에서 홍도까지의 거리는 약 115km. 목포항을 떠난 쾌속선이 도초도·비금도와 흑산도를 거쳐 홍도에 도착하려면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8월 초의 홍도 1구 선착장은 배에서 내리는 사람과 배를 타려는 사람의 행렬이 뒤엉겨 장터마냥 북새통을 이루었다. 허나 눈이 부시도록 맑고 깨끗한 날씨 덕택에 기분은 상쾌하다. 녹음 짙은 섬의 윗부분은 구름 속에 반쯤 잠겼는데도 바다 가까이의 아랫부분은 따가운 햇살 아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해상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섬에 당도하는 대로 홍도 2구로 곧장 가려던 처음의 계획을 취소하고 유람선에 올라탔다.

풍치 좋은 곳에는 으레 ‘팔경’(八景)이 있게 마련이다. 단양팔경·관매팔경·관동팔경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면적이 6.87km2, 해안선 길이가 20.8km에 지나지 않는 홍도엔 홍도 33경이 있다. 바위가 많은 남해 금산의 33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이다. 관광객을 가득 실은 유람선이 선착장을 떠나자마자 만물상 부부탑 독립문바위 슬픈여바위 도승바위 남문바위 원숭이바위 주전자바위 등이 연달아 나타난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에 눈길과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2시간 가량의 유람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더욱이 수직으로 솟은 바위를 쳐다보느라 고개가 뻣뻣해질 즈음이면 수평으로 편안히 바라보이는 석화굴 실금리굴 홍어굴 등의 해식동굴(海蝕洞窟)이 이따금씩 나타난다.

파도가 온몸으로 빚은 ‘바위의 향연’
유람선 선장과 안내원의 배려도 퍽 세심하고 노련하다. 그토록 많은 바위에 얽힌 전설들을 동화처럼 재미나게 풀어내는가 하면, 뱃멀미에 속이 울렁거린다 싶으면 관광객들을 탑섬 군함바위 등에 상륙시켜 가벼운 산책을 즐기도록 한다. 또한 ‘사진빨’이 좋은 남문바위나 독립문바위 부근에서는 유달리 오래 머무르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0호)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그래서 마을 고샅길말고는 걸어다닐 만한 길이 별로 없다. 물론 섬의 최고봉인 깃대봉(367m)에도 올라갈 수 없다. 홍도 1구와 2구 사이를 이어주는 산길도 폐쇄함에 따라 이젠 바닷길만이 유일한 통로다. 그러므로 홍도 여행에서는 ‘해상일주 유람코스’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일정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도 1구 선착장에 도착하는 즉시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바퀴 돌아본 뒤 서둘러 뭍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갯마을 특유의 한가로운 정취가 살아 있는 홍도 2구 마을과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 중 하나인 홍도등대를 가보지 않은 홍도여행은 반쪽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홍도의 북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2구 마을은 소도시의 도심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1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구 주민은 대부분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 여관 노래방 기념품 상점 등을 운영해 생계를 꾸리지만, 2구 주민은 거개 바다를 논밭 삼은 어민들이다. 물론 이 마을에도 상점과 여관이 몇 있다. 그러나 피서철말고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 얼마 안 되는 여관의 객실이 가득 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덕택에 마을 정취는 한결 오붓하고 토박이들의 인정도 넉넉해 보인다. 게다가 선착장 지척에는 수심이 얕고 적당한 크기의 자갈이 깔린 간이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에는 아이들과 함께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아주 좋다. 이곳 선착장과 방파제는 입질 좋은 바다 낚시터기도 하다. 장대로 만든 얼치기 낚싯대만 드리워도 손바닥만한 우럭이 곧잘 걸린다. 그리고 높은섬 띠섬 독립문바위 등이 점점이 떠 있는 앞 바다의 풍광 또한 서럽도록 아름답다.

2구 마을에서 홍도등대까지는 두 갈래의 조붓한 오솔길이 나 있다. 하나는 마을 위쪽의 산허리를 돌아가는 산길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와 밭둑을 타고 가는 산책로다. 어느 길로도 약 20분 가량만 느긋하게 걸어가면 등대에 닿는다. 1913년에 처음 불을 밝혔다는 홍도등대는 이슬람 사원처럼 둥근 지붕을 이고 있는 등대 자체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스런 바다의 전망이 일품이다. 특히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몰은 그지없이 장엄하고도 화려하다. 낙조 드리운 하늘과 하늘빛을 그대로 담은 바다는 온통 선연한 핏빛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해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광경이다.

머나먼 다도해의 작은 섬, 그곳의 인적 드문 등대 위에서 천지사방을 불사를 듯한 해넘이를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 그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마구 다듬이질을 한다. 아! ‘그 섬에 가고 싶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88~89)

  • < 여행칼럼니스트 www.travelmaker.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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