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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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많아진 까닭은 ‘공’ 때문?

美 과학자 “합성섬유 함유량 늘어 반발력 증가”

  • < 이 식 / 이학박사·과학 칼럼니스트 > honeysik@yahoo.com

    입력2005-01-05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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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런 많아진 까닭은 ‘공’ 때문?
    지난 5일 미국 메이저리그의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가 역대 최단 경기인 57경기 만에 30홈런의 고지에 도달했다. 이로써 마크 맥과이어가 세운 홈런 기록이 또다시 깨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던 로저 매리스의 기록을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깨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승엽이 54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는 등 야구 경기에서는 최근 들어 부쩍 홈런이 양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한두 명의 걸출한 슬러거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다. 통계를 보면 전체 선수들의 평균적인 홈런 수가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경기당 홈런 수는 1980년의 1.47에서 1990년에는 1.58, 2000년에는 2.34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홈런의 수가 급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팀 수와 경기 수가 늘어나면서 좋은 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점과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늘이는 점 등도 이유가 될 것이다. ‘명예의 전당’의 에릭 엔더스는 “몇 십 년 전이었다면 번트를 대거나 도루를 할 선수들이 최근에는 펜스를 겨냥한다”면서 최근 메이저리그의 흐름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반발력이 커진 공에 있다는 지적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야구는 가장 보수적인 운동종목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대부분의 종목에서 선보인 첨단 신기술에 접할 수 있었다. 바큇살이 없는 자전거, 마찰을 줄이는 전신 수영복, 첨단 소재의 이용으로 가볍고 강해진 테니스 라켓 등등… . 이에 반해 야구는 100년이 넘도록 소가죽에 싸여 있는 공과 나무 배트를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공의 반발력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구공을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홈런 많아진 까닭은 ‘공’ 때문?
    야구공을 만드는 방법은 예상외로 복잡하다. 먼저 공의 중심부에는 검정색 고무와 붉은색 고무로 두 번을 감싼 압축 코르크가 있다. 이를 모직 실타래로 세 번, 면으로 된 실타래로 한 번 감는다. 실이 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위에 고무코팅을 한 후 마지막으로 소가죽을 덧대면 야구공이 완성된다. 소가죽은 정확하게 108번 꿰매어야 한다. 1872년 이래로 야구공은 늘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공의 크기도 언제나 일정했다. 그런데 어째서 공의 반발력이 커졌다는 것일까.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교의 데니스 힐리아드 교수는 1963, 1970, 1989, 1995, 2000년의 경기에 각각 쓰인 야구공을 분해해 보았다. 야구공 중심부의 코르크를 4.6m 높이에 떨어뜨렸더니 1995년과 2000년에 생산한 볼에서 꺼낸 코르크가 다른 것보다 약 30% 정도 더 높이 튀어올랐다. 같은 대학의 섬유과학자 린다 웰터스는 야구공에 들어 있는 실타래가 반발력을 변화시킨 원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야구공에 들어가는 실타래는 보통 폐기된 카펫에서 추출해 사용한다. 과거에는 카펫의 재질이 대부분 모직이었으나 요즘은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가 섞인다. 울은 쉽게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실의 장력이 줄고 결과적으로 야구공의 반발력도 줄어든다. 하지만 합성섬유의 함유량이 늘어난 최근 공의(메이저리그의 경우 합성섬유의 양이 15%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는 있다) 반발력이 과거보다 증가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야구중계를 보다 보면 해설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오늘은 습도가 높기 때문에 커브가 잘 들어갈 것 같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등판한 콜로라도의 홈구장은 고도가 높아서 홈런이 잘 나오고….” 이처럼 야구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경기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의 야구연구센터에서 1999년과 2000년에 생산한 야구공 144개를 분석한 결과, 1999년에 생산한 볼이 2000년 제품보다 약간 더 반발력이 좋았다(0,25 %). 미세해 보이는 수치지만 120m 날아가는 공에서 이 차이는 약 30cm를 좌우한다. 즉 펜스 앞에서 외야수의 수비에 잡히느냐 홈런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셈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야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학자들이 야구에 대해 전문가적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야구공을 분해하는 기상천외한 실험을 진행한 힐리아드 교수의 본업은 범죄심리학자다. 또 일리노이 대학교의 입자물리학자인 알란 나탄은 미국 물리학회지에 ‘야구공과 배트의 충돌의 동력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배트에 공을 맞추는 가장 효과적인 포인트를 연구하였다. 복잡해 보이는 수식과 그림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인 물리학일 뿐입니다. 운동량 보존과 에너지 보존이라는 물리학의 법칙은 어떠한 종류의 충돌에도 적용됩니다.”

    홈런 많아진 까닭은 ‘공’ 때문?
    학자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50년대부터 물리학자들은 풍동(wind tunnel)에서 커브 볼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야구공이 휘는 원리나 야구 배트와 관련한 연구는 비행기 날개의 설계, 충격에 강한 교량의 설계 등과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의 스티븐 제이 굴드 교수는 생물학적 진화의 연구를 위해 야구통계를 연구하기도 한다. 굴드는 4할대 타자가 사라진 것은 선수 개인의 능력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선수들 간 재능의 차이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실제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애리조나 대학교의 테리 바힐 교수는 야구선수의 체중, 신장, 배트 스피드, 팔의 장력 등으로 각각의 선수에게 가장 적합한 배트의 무게를 결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러한 연구가 선수들의 기록 향상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일리노이 공대의 포터 존슨 교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물리학에는 풀리지 않은 2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통일장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공기 중에서 야구공의 운동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과학자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이런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의 실제 야구솜씨는 별로 뛰어나지 못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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