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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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돈이냐 空돈이냐”

장관들 판공비 지난해 평균 2억원… 전별금, 명세 불투명한 현금사용 등 ‘도덕적 해이’ 심각

  • 입력2005-06-07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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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公돈이냐 空돈이냐”
    정부 18개 부처와 장관들의 업무추진비(일명 판공비) 명세가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에 의해 최초로 공개됐다. 시민단체들이 1998년부터 추진해 온 자치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 공개 운동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상자기사 참조). 이를 계기로 업무추진비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반 움직임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농림부 등 ‘권력형 부처’들은 “집계가 어렵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용 명세의 구체적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문수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정부 18개 부처의 2001년 기관운영비 중 일반업무비는 31억900여만원으로 2000년(22억9500여만원)에 비해 35.5% 증액됐다. 환경부와 기획예산처를 제외한 전 부처의 일반업무비가 늘어났다.

    1999년과 비교해 2001년 일반업무비 증가율이 100%를 넘는 곳은 △외교통상부(674%) △국방부(293%) △교육부(110%) △과학기술부(122%) △정보통신부(1415%) △환경부(177%) 등 여섯 곳. 이들 부처는 증가 이유에 대해 “현실에 맞지 않게 운용되던 것을 현실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시원히 납득하기는 어렵다. 무려 1415%가 증가한 정보통신부는 “그동안 우정사업비 등에서 갖다 썼다가 2001년부터 기관운영비로 책정한 것”을 증가 이유로 들고 있다. 교육부는 “부총리 격상을 예상하고 늘렸다”는 설명이다.

    “公돈이냐 空돈이냐”
    1999년 판공비를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은 재경부 장관(4억7500여만원)이었고 노동부(4억1200여만원) 기획예산처(3억8000여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적게 사용한 사람은 과학기술부 장관(5800여만원). 18개 부처는 1년간 업무추진비로 평균 5억원, 장관들은 평균 2억원 정도의 판공비를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표’ 참조).

    기획예산처가 펴낸 ‘2001년도 예산안 편성지침 및 기준’에 따르면 ‘업무추진비’의 정의는 네 가지다. △일반업무비 : 외빈초청 해외출장 정례회의 행사 등에 들어가는 경비와 체육대회 종무식 등 공식적인 업무추진에 들어가는 경비, 동호회 및 연구모임 지원경비 △특정업무비 : 특정업무 추진을 위하여 조직 단위 또는 인원 수에 따라 일정액을 지급하는 경비, 기관 운영을 위해 직급(책)에 따라 지급하는 경비 △직급보조비 : 공무원의 직책 수행을 위해 정액으로 지급하는 경비 △정원가산금 : 기관 운영을 위해 정원에 따라 지급되는 경비 등. 그러나 쓰임새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실제로는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되는 현실이다.



    각 부처의 업무추진비 사용 명세를 살펴볼 때 ‘도덕적 해이’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우선 기획예산처가 중앙 부처에 내린 지침이 아무런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2000년 세출예산집행지침’에는 “기관장이 직접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일반업무비의 20% 범위 내에서 현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18개 부처 장관 중 이 지침을 지킨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장 심한 부처는 노동부로 1999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쓴 장관 업무추진비의 39.3%를 현금으로 지출했다.

    업무추진비의 현금 사용은 그 쓰임새를 증빙자료로 확인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특히 ‘장관실 운영비’나 ‘특별판공비’ 명목으로 매월 200만∼300만원을 장관에게 직접 전달하는 부처의 경우 더더욱 정확한 사용 명세를 알기 어렵다. 김문수 의원측은 “재경부나 법무부 문화부 등은 장관이 현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정확한 명세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관들은 또 기획예산처가 규정한 ‘접대경비 지급기준’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규정대로라면 1인당 회의경비 3만원, 연회비 3만원, 선물비 8만원 등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 마련’을 위해 2000년 7월6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무총리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만남에서는 ‘밥값’으로 40만5350원이 지출됐다. 1인당 1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통일부(박재규)의 경우 2000년 1월에서 8월까지 총 382명이 참가한 77건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들어간 돈은 2700여만원, 1인당 평균 7만1000원으로 규정을 두 배 이상 초과했다. 정보통신부 장관(안병엽)의 경우 올 3월 중국대사 접견용 공예품 구입에 18만원을 쓰기도 했다.

    다른 실-국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정보통신부의 경우 일반업무추진비 예산은 600여만원(1999년), 1300여만원(2000년)에서 내년에는 무려 9100여만원으로 늘어났다. 언뜻 봐도 한 부처의 일반업무추진비가 600만원이나 1300만원 정도라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실-국별 예산에서 끌어다 쓰는 경우가 있다”고 실토했다.

    용도와는 관계없는 곳에 업무추진비를 지출한 경우도 여럿 눈에 띄었다. 남궁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15만원, 오찬시 담배 구입에 1만4000원 등의 업무추진비를 지출했다. 이항규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특정업무추진비로 차관보의 전별금 50만원을 준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퇴직이나 전근할 때 전별금이나 촌지를 받는 것은 국무총리가 지시한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에 위배되는 일이다. 게다가 그 돈이 업무추진비에서 나왔다면 더 문제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음대로 선심을 썼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때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어떤 때는 부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판공비로 해결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판공비의 자세한 쓰임새는 장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직접 처리하는 것은 총무 담당직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관들의 업무추진비는 해마다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문제된 적은 없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특별히 문제될 만한 법규 위반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것보다는 업무추진비에 대한 철저한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한 고위공직자는 “과거에는 청와대와 안기부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지원해 준 적도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사용명세가 투명하다. 엉뚱한 곳에 쓰면 직원들한테 불신받는 분위기여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함부로 쓸 수가 없다. 판공비를 마음대로 쓰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한 전직장관은 “일방적으로 장관들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 분위기가 업무추진비를 많이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측면도 있다. 어딜 가도 빈손으로 가면 뒤에서 욕하는 것이 현실 아니냐”고 말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시민감시국장은 “법적으로 업무추진비의 사용명세를 밝히도록 제도화해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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