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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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라이벌 국회서도 ‘박빙 승부’

연세대 12, 고려대 11명…한나라당은 ‘독수리들’이 당직 독점

  • 입력2005-07-06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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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의 라이벌 국회서도 ‘박빙 승부’
    최근 국회 사무총장(장관급)과 도서관장(차관급) 인사는 정치권, 그 중에서도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 인사들에게 작은 화제가 되었다. 신임 김병오 사무총장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신임 최문휴 도서관장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국회 사무처 고위직을 각기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문휴관장은 한나라당 총재특보 출신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사. 최관장이 이만섭 국회의장의 연세대 정외과 후배라는 사실이 ‘뒤늦은’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 정외과는 이번 16대 국회에서 개교이래 가장 많은 의원을 배출해 단연 두각을 나타낸 학과. 더구나 전통적 라이벌인 고려대 정외과보다 더 많은 금배지를 낳는 ‘약진’을 보였다. 연세대 정외과 출신이 12명인데 반해 고려대 정외과 출신은 11명으로 지난 수십년 동안의 ‘수적 열세’를 뒤집은 것.

    국회 연세대 동문회의 실무간사를 맡고 있는 양선모 비서관(유재건 의원실)은 “16대 국회의원 중 전체 동문 수로 보면 아직 고려대에 한참 밀리지만 우리 정외과가 고려대 정외과를 처음으로 눌렀고, 국회의장부터 동문”이라며 “이제 국회에서도 연세대 정외과 파워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6대 국회의 각 대학별 국회의원 수는 서울대 104명, 고려대 35명, 연세대 17명, 성균관대 13명, 경희대 9명, 한양대 9명, 중앙대 7명, 동국대 5명 등. 연세대 17명 가운데 정외과 출신만 12명이니 단일 학과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올린 셈이다. 지난 15대 국회는 서울대 118명, 고려대 37명, 연세대와 중앙대 각 12명, 경희-동국-부산대가 각 8명 등이었다.

    그렇다면 국회내 최강 파워를 자랑하던 고려대 정외과는 이번 선거에서 왜 이처럼 저조한 성적밖에 내지 못했던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고려대 정외과를 대표하던 4·19 세대의 간판주자들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등으로 줄줄이 고배를 마셨기 때문. 민주당에서 조홍규 박정훈, 한나라당에서 이세기 김중위, 자민련에서 김범명 등 현역들이 아예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선거에서 패배했다.



    고려대 정외과 출신 의원들이 한나라당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커다란 특징. 민주당은 김덕규(61학번) 조한천(61학번) 원유철(82학번) 의원뿐이고 나머지 8명은 한나라당이거나 자민련(1명)이다. 이들은 이강두(55학번) 박명환(57학번) 박세환(59학번) 박원홍(60학번) 김호일(63학번) 이원창(67학번) 권오을(76학번) 정진석(79학번) 의원 등. 고려대 동문 전체 의원 가운데 막내격인 민주당 원유철의원은 처음에는 철학과로 들어갔으나 나중에 ‘뜻한 바 있어’ 복수 전공으로 정외과 졸업을 ‘획득’한 경우다.

    이같은 면면들의 교체에서 알 수 있듯 고려대 정외과 출신 의원 하면 저항심 강하고 강경 투쟁을 선도하던 민주투사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는 시절도 이제 막을 내린 셈이다. 여당 민주당에는 법학과 출신(7명·임채정 김충조 이상수 조성준 정세균 최용규 문석호)이 오히려 더 많아졌다.

    이제 4선으로 고려대 정외과 출신 최다선 의원이 된 김덕규의원은 “지난 14대 국회에서는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을 모두 우리 정외과 출신이 차지해 당 3역회의가 열릴 때마다 원내총무들로부터 ‘동문회하느냐’ ‘동문끼리 잘해봐라’ 하는 부러움 섞인 질시를 받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어느덧 그런 전성기가 지난 듯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의원 말처럼 14대 국회에서는 신한국당 사무총장 문정수, 정책위의장 이세기, 민주당 사무총장 김병오, 정책위의장 김덕규 등 주요 당직을 ‘동문 잔치’로 끝냈던 시절이 있었다. 김의원은 “이로 인해 그해 고려대 정외과 수능시험 합격점이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연세대 정외과 출신 의원의 최대 특징은 4당에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 민주당에 김운용(49학번) 이만섭(50학번) 김원기(55학번) 유재건(56학번), 한나라당에 김동욱(56학번) 조웅규(56학번) 정창화(58학번) 맹형규(65학번) 권철현(66학번), 자민련에 조부영(56학번) 안대륜(61학번), 민국당에 한승수(55학번) 의원이 있다.

    이중 호남 출신인 김원기의원이 눈에 띈다. 당시 호남 출신 수재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대 아니면 고려대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 이와 관련, 국회 연세대 동문 양선모간사는 “지난 45년부터 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세대 정외과의 인기가 서울대보다 더 높았던 적이 있다. 전직 모 총리도 연세대 정외과에 떨어지고 서울대에 들어간 경우가 있다”며 “김의원도 아마 그런 차원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연세대 정외과 출신들은 고려대 출신보다 아무래도 ‘끈끈한 결속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 연세대 정외과 출신 의원을 보좌하는 한 보좌관은 “연세대 출신 의원들은 서로 만나도 ‘어이’ 하고 손짓 한 번 하는 것으로 밋밋하게 인사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별도 모임도 별로 갖지 않는 듯하다”고 말한다. ‘나홀로 개성’을 중요시하는 학풍이 의정 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

    반면 고려대 출신들은 이와 천양지차. 김덕규의원은 “교우끼리의 끈끈한 정이 공유되기 때문에 정파간 대결이 극한 대치로 흘러간다고 해도 우리끼리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막걸리 마시며 격론을 벌이던 시절의 정을 면면하게 이어간다”고 말한다. 고려대 출신들이 주요 당직을 맡게 되면 여야간 대화 채널도 훨씬 깊어지고 여야 관계도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게 김의원의 ‘은근한’ 주장. 고려대 출신의 한 보좌관도 “이번에 비록 아깝게 석패했지만 허인회씨 등 고려대 출신 젊은 정치인들도 뭉쳐다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며 “잘 뭉치는 점에서 고려대를 따를 학교가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학풍과 성향은 흔히 동문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패거리 문화나 집단 이기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교 출신들의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국회의 연세대 출신들 또한 요즘은 “우리도 한번 고려대처럼…” 하는 식의 ‘패권주의 기류’를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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