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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랑 놀지 마” 대북제재 외교의 명암

대통령 성과 만들기에 급급…제3세계는 ‘립서비스’만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북한이랑 놀지 마” 대북제재 외교의 명암

“북한이랑 놀지 마”  대북제재 외교의 명암

박근혜 대통령이 5월 29일 우간다 엔테베의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이 끝난 뒤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왼쪽)과 정상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동아일보]

“근래 들어 외교부와 국가정보원 해외파트에 주어진 최우선순위 목표는 제3세계 국가와 북한의 커넥션을 차단하는 일이다. 규모나 성격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금액이 적은 거래라도 일단 상대국으로부터 끊겠다는 의사 표시를 받아내기만 하면 성공으로 간주된다. 무기거래 등 음성적 교류라면 더 좋지만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교역도 대상이다. 내부적으로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오는 부서에 평가 가중치를 두고 있을 정도다.”

6월 초순 정부 고위당국자가 전한 이러한 설명은 대북제재 국면이 본격화한 이후 박근혜 정부의 정책 주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5월 이후 이어진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의 ‘제3세계 공들이기’가 그것. 이러한 분위기는 박 대통령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동선만 확인해도 가늠할 수 있다. 5월 초 이란, 5월 말 우간다, 케냐,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해당 국가 정상들을 두루 만난 박 대통령과 6월 초 쿠바를 찾은 윤 장관의 동선은 고스란히 ‘여전히 북한과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와 겹친다.



쏟아지는 홍보, 이어지는 박한 평가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북한과는 어울리지 마라.’ 한 제3국 외교관이 박근혜 정부 ‘제재외교’의 본질을 정리하며 남긴 말이다. 압도적 경제력을 자랑하는 한국이 그 같은 메시지를 전하면 흔들리지 않을 나라는 없다는 것. 이 외교관은 그러면서 이를 냉전시기 서독이 구사했던 ‘할슈타인원칙’에 비유했다. 1955년, 동독과 국교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공세적 외교원칙을 천명한 서독은 이후 경계선상에 있던 제3세계 국가들이 동독과 관계를 끊도록 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비동맹 진영을 상대로 한 동서독 외교전쟁의 서막이었다.

할슈타인원칙은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외교당국의 주요 방침이기도 했다. 남북관계 분위기에 따라 흔들리긴 했지만, 정권 정통성이 취약하던 전두환 정부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상당한 외교력을 쏟아부은 배경에도 ‘북한에 대한 외교적 우위 확보’라는 명분이 있었다. 낯선 나라의 독재자가 서울을 방문해 엄청난 환대를 받는 풍경이 반복적으로 연출됐던 이유다. 이러한 분위기는 남북한이 기본합의서 등을 통해 특수 관계임을 선포한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제3국 외교관들 사이에서 최근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두고 냉정한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은 단순히 ‘냉전시기 외교의 부활’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무기수출 커넥션을 끊거나 외화 수입을 차단할 수 있다면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문제는 한국 정부의 최근 움직임이 너무 급박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특히 그 과정에서 한국 외교부가 ‘건수 만들기’에 급급해 보인다는 취지다. 요컨대 방향뿐 아니라 효율도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들이 꼽는 대표적 사례는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앞두고 갑작스레 발표된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사업이다. 총 10대의 특수차량이 아프리카를 누비며 지역 주민의 건강검진, 현지 식사와 한식 제공, 케이팝(K-pop) 뮤직비디오 등 한국을 알리는 콘텐츠 방영 등을 진행한다는 게 그 골자다. 한 유럽 국가 외교관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타개하도록 돕는 일과는 무관한 사업으로, 누가 봐도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며 박한 평가를 남겼다. “어느 나라 외교당국이든 권력자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힘을 싣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맛’에 맞춘 듯한 이러한 사업은 중견국가 한국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성과에 대한 해외의 평가 역시 엇갈린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당시 발표된 각국의 ‘대북관계 청산’ 메시지만 봐도 그렇다는 것. 6월 17일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안드레아 버거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제3세계 국가를 찾은 직후 북한 외교당국자들도 해당 지역을 찾아 새로운 정치·안보 합의를 체결했다”며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한국 언론은 한·이란 정상회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지만, 정작 이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남긴 말은 “원칙적으로 모든 핵개발에 반대한다”는 극히 원론적 내용에 불과하다는 것.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를 오랫동안 비판해온 이란이 대북제재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는 평도 이어진다.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에티오피아 역시 “과거에도 그래왔듯 앞으로도 한반도 비핵화를 돕는 일을 지속하겠다”는 게 전부일 뿐, 공식적인 대북 금수조치 등은 공개된 바 없다. 그나마 구체적이었던 것은 경찰 병력 연수와 관련해 평양과 교류해왔던 우간다가 이 사업을 접기로 했다는 소식이지만, 정작 실체는 ‘연수기간이 끝난 뒤에는 사업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 당분간 사업 중지 같은 제스처는 가능하겠지만, 우간다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이유는 없다고 버거 선임연구원은 잘라 말한다. 한국의 경제력을 의식하는 이들 국가는 ‘건수 채우기’에 급급한 한국 정부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 할 뿐, 장기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과연 약속을 지킬까

“북한이랑 놀지 마”  대북제재 외교의 명암

제7차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6월 5일 쿠바 아바나 컨벤션궁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수교 및 양자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결국 문제는 투입된 자원 대비 성과다. 최고지도자와 외교당국 수장의 현지 방문은 한 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외교자원 가운데 최고급에 속한다. 반면 아프리카·중남미 제3세계 국가는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 북한 문제가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외교력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상황은 분명 북한 핵 문제가 우리에게 지우는 불필요한 부담이다. 그러나 그 부담에 과연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기대할 수 있는 효과에 맞게 자원을 배분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쟁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이 같은 설명은 5월 이후 관계부처의 홍보자료를 가득 메웠던 ‘제재 외교’의 민낯을 꽤나 신랄하게 보여준다. 이들 국가와 북한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를 끊게 만든다고 해서 북한이 치명적 압박을 느낄 리는 없다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현재처럼 ‘성과 만들어내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정부가 목표로 삼는 대북제재 완결성 강화 역시 실현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확한 명세는 올해 연말 국회 예산결산 과정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세부사항이 공개돼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이들 제3세계 국가에 다양한 종류의 지원을 약속했음은 당국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과연 이들 나라는 한국 국민이 믿는 만큼 단호하게 북한과의 관계를 청산할까, 아니면 적당한 립서비스만 남긴 채 뒤로는 북한과의 관계도 유지하려 할까. “대통령을 빛낼 성과만 찾는 참모들의 의지에 실무부처의 관료주의가 결합했을 때 남는 답은 뻔하지 않겠나.” 한 주변국 외교관의 뼈아픈 촌평이다.  







주간동아 2016.06.29 1044호 (p18~19)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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