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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진석을 선택한 친박의 노림수

대(代) 이은 원조친박 원내대표 세우고 다음은 당권 장악?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정진석을 선택한 친박의 노림수

정진석을 선택한 친박의 노림수

5월 3일 20대 국회 새누리당 첫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각각 선출된 정진석 당선인(왼쪽), 김광림 의원이 꽃다발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나(경원) 후보의 현장 연설이 너무 약했다. 10표에서 15표 정도는 후보자들의 정견 발표를 듣고 즉석에서 판단하는데….”

“결선투표도 없이 단박에 결정된 걸 보면 친박(친박근혜)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증거 아니겠나. 선거가 그렇게 끝난 지 한 달도 안 돼 저렇게 세력의 힘을 과시하는 걸 보면 (새누리당) 쇄신과 혁신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5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출과정을 지켜보던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대(代) 이은 원조친박?

한 비박계 인사는 “정진석 원내대표를 범친박계로 알고 있는데, 사실 정 원내대표야말로 대(代)를 이은 원조친박”이라고 했다. 정 원내대표의 선친인 고(故) 정석모 전 의원이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내무부 차관을 지내고 두 차례 충남도지사를 역임한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



그는 “정 원내대표가 이명박(MB)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것도 따지고 보면 ‘친박 배려 차원’이었다”며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한 이후 리더십 위기에 처한 MB가 당의 지원을 등에 업고자 꺼내든 카드가 정진석 정무수석이었다”면서 “당시 여당 내에서 야당 노릇을 하던 박 대통령과의 사이에서 가교가 돼달라는 뜻으로 정진석 정무수석을 임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5월 3일 오후 119명이 표결에 참석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결과는 정진석-김광림 후보 조가 69표를 얻어 단박에 과반 득표로 당선이 확정됐다. 나경원-김재경 후보조는 43표, 유기준-이명수 후보조는 7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 친박계 핵심 인사가 사실상 ‘보이지 않는 손’ 노릇을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특히 정진석-김광림 조가 편성되는 데 친박계 핵심 인사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 다음은 새누리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요약, 정리한 것.

▼ 정진석 원내대표가 선출된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출은 단순히 원내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20대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당이 앞으로 어떤 진로를 걸을 것인지를 국민에게 선보이는 첫 시험무대였다. 그런데 결과는 국민이 심판한 친박계가 여전히 새누리당 대주주라는 점만 재확인케 했다. 특히 결선투표조차 없이 정진석 원내대표가 선출된 것을 보면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 편성 때부터 친박계가 움직였다는 의구심이 짙다.”



정진석을 선택한 친박의 노림수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4·13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유승민 의원이 4월 19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을 찾아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새누리당이 이번 20대 총선에서 전 지역을 석권한 유일한 지역이 경북이다. 경북 출신 러닝메이트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어느 정도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경북 안동 출신 김광림 의원은 원내대표에 나서려는 후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러닝메이트 후보였다. 그런데 김 의원은 여러 후보로부터 동시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아 난처해지자 정책위의장 출마를 고사했다. 그러다 친박 핵심 인사의 권유로 정 원내대표와 손을 잡았다는 얘기가 있다.”

▼ 전당대회에서도 친박 후보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나.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에 대한 국민 여론을 한동안 지켜본 뒤 결정하지 않겠나. 그런데 총선 이후 지금까지 모습으로 봐서는 곧바로 당권 장악 수순에 들어갈 개연성이 높다.”



탈계파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

정진석을 선택한 친박의 노림수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45개 중앙 언론사 편집국장과 보도국장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새누리당 원내대표 후보 등록 직전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은 유기준 후보에게 ‘출마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 후보는 “더는 친박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출마를 강행했다. 결국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기준-이명수 후보조는 7표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탈계파를 선언한 유기준 후보를 친박계가 철저히 외면한 결과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결과는 친박계의 건재 과시는 물론, 계파 이탈자에게 분명한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경고 메시지가 담겼다”며 “대통령 임기가 1년 10개월가량 남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각자도생하겠다고 뿔뿔이 흩어지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친박계 내부에 형성돼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달라졌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총선 공천 파동 여파로 탈당한 인사들, 특히 새누리당의 심장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생환한 유승민, 주호영 의원의 복당 여부다. 그러나 친박계 지원을 받은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섬으로써 이들의 복당 시기는 새누리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많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무소속 의원을 모두 받아들여도 원내 과반이 안 되는 상황에서 친박계가 새누리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을 조기에 복당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더욱이 총선 이후에도 여전히 ‘배신의 정치’를 입에 올리는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친박계가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선 공천 직전 새누리당에서는 ‘유승민 있는 200석보다 유승민 없는 150석이 더 낫다’는 얘기까지 회자됐다. 친박계가 배신의 정치 응징을 공천 철칙처럼 여긴 데는 내부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뜻도 있었겠지만, 대통령선거가 다가올수록 ‘포스트 박근혜’로 향하려는 시선과 관심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결국 20대 총선은 친박계가 공천을 주도한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이 났다. 국민의 심판에도 친박계는 정진석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 삼아 당내 세력 우위를 바탕으로 다시 정치 전면에 섰다. 친박 천하가 한동안 지속될 새누리당 등 여권에서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이들에게 춘래불사춘의 시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용서하되 신뢰할 수는 없다?‘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한 인간이 살다 가는 기간은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한 점은 영원히 남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도 있듯이 이 점 하나를 잘 찍느냐 잘못 찍느냐에 따라 영원히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직후인 1998년 펴낸 에세이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부일)에 나오는 글귀 가운데 일부다. 책 앞날개에는 저자 약력을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박 대통령이 펴낸 에세이집에는 이 글귀가 저자 소개를 대신하고 있다.

책 내용 가운데는 박 대통령의 인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잘못은 용서받기도 하고 가끔은 이해나 동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용서나 동정도 자기 스스로가 분발하여 변해 보려고 하는 시도만은 못하다. 자기를 속이고 배신한 사람을 용서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를 믿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과 같이 용서가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문제인 것이다.’(92쪽)

‘가는 사람은 가게 두고, 오는 사람은 맞이한다. 지금 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왔던 사람이고 지금 오는 사람도 언젠가는 갈 사람이다.

정진석을 선택한 친박의 노림수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펴낸 에세이집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그것이 사별이라는 형태를 취했든 배신이라는 너울을 썼든 간에 이제는 인연이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다.’(127쪽)

‘몰상식한 행동, 배은망덕, 소신 없는 짓들을 하고도 전혀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인간들의 작디작은 그릇됨이 불쌍하다. 작은 보시기가 결코 사기그릇이 될 수 없듯이 잔머리는 굴릴 수 있어도 큰 지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인간됨이 불쌍하다. 저들도 스스로 그리 못나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그들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바, 나는 결코 그렇게 불쌍한 인생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다.’(157쪽)

총선 전 ‘배신의 정치 심판’을 국민에게 주문했던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참패라는 총선 결과를 받아든 이후에도 여전히 ‘배신의 정치와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이유가 박 대통령이 펴낸 책 속에 잘 담겨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이에게 과연 박 대통령 재임 중 봄볕이 스며들 수 있을 것인가.





주간동아 2016.05.11 1037호 (p20~21)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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