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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꽃단장하고 서커스 구경 가네

수산리 고분벽화

꽃단장하고 서커스 구경 가네

꽃단장하고 서커스 구경 가네

수산리 고분벽화, 5세기 후반 무렵.

고구려 귀족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서커스를 보러 갑니다. 중국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인들은 옷을 차려입고 밤이면 남녀가 모여서 다양한 볼거리와 음악을 즐겼다고 합니다. 벽화는 당시 고구려인의 품격 있는 의상과 세련된 화장, 수준 높은 여가문화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북한 남포특급시 부근에 있는 수산리 고분벽화는 내부에 기둥, 들보 등을 그려 넣어 무덤 주인이 살아서 거주하던 집처럼 치장했습니다. 상단부엔 큰 연꽃 문양을 그려 넣고 하단부에 인물들을 배치했습니다. 왼쪽에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고 오른쪽으로 관람객들이 신분 순서대로 배치돼 있어 엄격한 고대 신분제 사회를 실감케 합니다. 특히 곡예사 3명과 하인 2명, 양산을 받쳐 든 시종들은 실제보다 훨씬 작게 묘사했습니다. 반대로 가장 크게 그려진 남녀는 당연히 이 무덤의 주인(묘주) 부부지요. 묘주는 긴 팔자수염에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풍성하게 퍼진 관복을 입은 채 후덕하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뒤에는 소맷부리를 살짝 걷어 올린 남자 시종이 양산을 들고 있는데, 양산대가 너무 길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자칫 묘주의 모자를 건드릴 것만 같습니다. 양산은 중심 깃대가 ㄴ자로 꺾인 특이한 형태입니다.
시종 뒤에 늠름한 청년이 따라가고 있는데 묘주의 아들로 보입니다. 묘주의 부인 바로 앞에 아들을 배치한 것을 통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부인도 여자 시종이 받쳐 든 양산 아래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 있습니다. 작게 그려진 여자 시종들의 옷차림을 보면 모두 품이 넉넉한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소녀만 허리를 꽉 졸라맸군요. 여자 시종 뒤로 귀부인 3명이 따라갑니다. 일가친척이나 이 집안 며느리가 아닐까요. 이들도 아름답게 화장하고 우아하게 차려입었습니다.
다시 그림 왼쪽에 그려진 곡예사들을 보러 가죠. 곡예사 3명이 각각 다른 묘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긴 나무다리를 번갈아 들어 올리며 춤을 추거나 회전하는 묘기, 허공에 떠 있는 짧은 나무봉 3개와 원형고리 5개를 교대로 던져 올리고 받는 일종의 저글링 묘기, 큰 바퀴를 던져 올려 잡는 묘기입니다.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의상 디자인입니다. 우리 민족의 복식생활에 관한 최초 기록은 부여에 대한 것입니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부여인은 흰옷 입기를 좋아했으며, 소매가 크고 넓은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고분벽화 속 여인들은 긴 주름치마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묘주의 부인은 넓은 면의 색동 주름치마를, 나머지 여인들은 좁은 면의 흰색 주름치마를 입었습니다. 허리에서 시작돼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흘러내린 주름치마는 품격 있고 화사한 저고리와 어울려 고구려 여인들의 패션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런 스타일의 주름치마가 일본 다카마쓰(高松塚) 고분벽화에도 등장한 것으로 미뤄 당시 크게 유행했던 패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등장인물들의 연지, 곤지 화장도 눈에 띕니다. 연지는 서남아시아에서 생겨난 풍속으로 중국 서북지방과 몽골 고원지대를 거쳐 4~5세기쯤 고구려에 전해졌습니다. 이후 연지는, 재료로 쓰인 홍화씨 종자와 더불어 고구려 승려 담징 등에 의해 610년 무렵 일본에 전해져 일본 화장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여인들은 모두 입술과 이마, 볼을 붉은 연지와 곤지로 장식했습니다. 이는 지역이나 신분계층에 관계없이 고구려 여성 대부분이 붉은색 연지를 선호했음을 보여줍니다. 남성들도 붉은 입술화장을 했습니다. 1500년 전 고구려 여성들은 얼굴에 분화장을 하고, 입술과 볼에 연지를 찍고, 눈썹도 그리고, 눈꺼풀에 색조화장을 할 만큼 외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주간동아 2016.02.03 1024호 (p119~119)

  •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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